"미(美) 7000억달러 구제금융 효과볼 것… "
그러나 위기의 끝은 아니다"
'美 최고 이코노미스트' 선정 손성원 캘리포니아 주립대 석좌교수
대공황 가능성 없지만 경기 침체 1~2년 갈 수도
부실채권 처리에 1조 달러… 美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
월가 '탐욕' 반성해야… 시장 경제 후퇴해선 안돼
미국발(發) 금융 태풍을 둘러싸고 온갖 불길한 분석들이 교차하고 있다. '100년 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그린스펀 전 미국 연준 의장)이라는 말도 있고 심지어 '자본주의의 종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정작 분석을 쏟아내는 전문가들의 신뢰야말로 땅에 떨어졌다. 유가가 20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도, 서브프라임사태가 한 고비를 넘겼다는 장담도 미국이 몸살을 앓아도 신흥시장은 걱정 없다는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이론'도 모두 틀렸다.
하지만 이 사람이라면 믿어볼 만한 트랙 레코드(실적)를 갖고 있다. 손성원 캘리포니아 주립대 석좌교수의 말이 월가(街)를 비롯한 국제금융가에서 묵직한 권위를 갖는 것은 글로벌 경제흐름을 짚어내는 그의 진단이 높은 적중률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에서 다섯번째로 큰 웰스파고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냈고, 2005년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해 미국 경제를 가장 정확하게 전망한 이코노미스트(경제분석가)로 선정됐다. 2001년 블룸버그 통신은 그를 미국 5대 경제분석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19일 자정께, 미국 LA에 사는 그에게 전화를 돌렸다. 인터뷰 직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전례 없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고, 미국과 유럽 주가는 급등세를 보였다.
과연 금융시장에 신뢰가 회복될 수 있을까? 손 교수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위기의 끝은 아니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 조치가 급한 불을 끄는 임시변통 식이었다면, 이번 조치는 근본적(fundamental)이고 포괄적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번 조치로 시장의 두려움을 없애는 한편, (금융시장 정상화에 필요한) 시간을 벌 수 있게 됐습니다."
손 교수는 이번 사태를 30년 금융인 생활을 하면서 처음 겪어본 메가톤급 쇼크라고 했다.
"현 상황은 1980년대 저축대부조합 파산 사태와 가장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저축대부조합만 문제가 된 것이지 금융의 다른 분야는 괜찮았습니다. 지금은 모든 금융 분야에 파급되고 있어요. 심지어 은행들조차 서로 못 믿어서 돈을 안빌려 주려고 하니까요."
―혹시 1930년대 대공황 같은 최악의 사태가 오는 것은 아닐까요?
"그 정도는 아닙니다. 대공황 당시엔 미국 정부가 돈줄을 조이고 금리와 세금을 올리는 등 정책 실수를 저질렀어요. 일본도 1990년대 경기 후퇴 때 비슷한 잘못을 했죠. 하지만 이번에 미국 정부는 적어도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것은 막고 있어요."
하지만 그는"(금융 불안이) 1~2년 갈 수도 있다. 이게 위기의 끝은 분명 아니다"고 단언했다.
―미국 경제는 일본형 장기침체로 갈까요, 아니면 짧은 구조조정 후 V자형으로 급속 회복되는 한국의 IMF사태형 커브를 그릴까요?
"그 중간쯤일 겁니다. 일본의 경우 정책 대응을 잘못하고, 타이밍도 실기(失機)했지만 미국은 해야 할 조치를 신속하게 취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한국처럼 V자형 회복도 아닐 겁니다. 아시아 외환위기의 경우 아시아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탄탄했던 반면 지금은 세계 시장이 한쪽이 흔들리면 거미줄처럼 다 흔들리고 있어요."
―금융위기가 미국과 세계 실물경제의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우려됩니다만.
"금융은 경제에 산소와도 같은 것입니다. 월가도 문제지만 중소기업들이 자금을 융통 못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미국의 자동차 '빅3'(GM·포드·크라이슬러)마저 자금 융통이 안돼 정부에 대출 보증을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이번 조치로 금융시장이 안정되면 실물경제도 살아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70~80%나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
지금 미국 경제는 응급실 환자 같다. 경련이 잦아지는가 싶으면 다시금 더 큰 경련이 찾아오곤 한다.
―금융위기가 왜 이렇게 장기화되고 있습니까?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한가지는 미국 집값이 계속 내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6년 최고치에 비해 18% 내려왔고, 앞으로도 계속 내려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더구나 앞으로는 상업용 부동산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금융시장에 신뢰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돈이 부족한 것은 아닌데, 돈이 돌지가 않아요. 은행들도 서로 못 믿어서 돈을 안 빌려줄 정도니까요. 미국 정부 조치는 이렇게 막힌 파이프 라인을 뚫으려는 것이죠."
미국 정부는 이번 사태 수습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돈을 쏟아 붓고 있다. 아마도 다른 나라였다면 통화가치가 폭락하고 외환위기가 났을 것이다.
―미국의 돈줄은 무제한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공짜 점심'이란 없지요. 이번 조치로 금융시장의 신뢰는 회복됐지만, 이번엔 미국 정부의 신뢰가 의심 받을 수 있습니다."
손교수에 따르면 앞으로 미국 정부가 구상하는 부실채권 처리엔 1조 달러가 들 것으로 추정되고, 국채(國債)를 발행해 재원을 조달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안 그래도 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의 재정상태가 이탈리아나 일본과 비슷한 수준까지 악화된다. 미국의 신용등급은 내려갈 것이고, 이자 부담이 늘어날 것이다.
"지난 주말 미국의 긴급 조치에 투자자들이 흥분했지만, 이런 (재정악화) 수치를 보게 되면 깜짝 놀라게 될 겁니다."
앞으로 중국이나 일본, 중동의 해외 투자자들이 계속 미국 국채를 사줄 것인가 하는 것도 장담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는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미국은 금리를 올려야 할 것이라고 손교수는 전망했다.
―하지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요즘의 수수께끼 같은 상황은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아무리 미국 금융에 문제가 많다고 해도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런 위기 때 그래도 가장 안전한 곳이 미국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세계의 돈이 한국이나 중동에서 빠져 나와 미국 국채를 사지요. 결국 요즘 미국 정부는 해외에서 들어온 자금을 받아서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하는 데 쓰는 셈입니다. 아이러니지요. 물론 그렇게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겠죠."
◆"월가는 '탐욕'을 반성해야"
10년 전 한국이 외환위기를 당했을 때 미국 중심의 IMF는 부실 금융회사를 정리하라고 강요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이 금융기관 구제에 나서고 있어 기준이 다르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국의 잣대는 고무줄인가요.
"일관성이 없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다 이유가 있습니다. 구제금융을 하는 것은 그런 회사들이 예뻐서가 아니라 세계 금융과 경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으니까 그대로 놔두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대마불사(大馬不死·too big to fail)'라는 얘기입니다."
그는 월가의 주역 중 한 사람이었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가는 지금 그는 어떤 반성문을 쓰고 있을까?
"반성해야죠. 월가의 문제는 탐욕(greed)이었습니다. 월가의 CEO들이 돈을 3000만 달러, 5000만 달러 이렇게 벌고도 그 다음해엔 더 벌겠다면서 안 되는 일도 막 하려고 했어요. 미국도 상업은행에 대해서는 정부가 규율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투자은행에는 이런 규율이 거의 없었어요. 리먼브러더스 같은 곳은 자본금이 자산의 3% 밖에 안됐어요. 또 자산 구성도 부동산 대출에 너무 몰려 있었습니다."
―지금은 월가의 방식에 비판이 쏟아지는데, 변호한다면?
"새로운 상품, 새로운 아이디어는 시장경제에서 나옵니다. 경제를 운용하는 데 가장 좋은 인센티브는 돈입니다. 돈 때문에 사고(事故)도 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시장경제를 후퇴해선 안 됩니다. 정부가 너무 관리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는 월가에 대한 규율을 강화해야 하겠지만 규율만 정하고 뒤로 서 있는 게 옳은 태도입니다."
손성원 교수는
한국에서 고교(광주일고)까지 나온 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를 졸업하고 피츠버그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을 거쳐 웰스파고은행에 약 30년간 몸담으면서 수석이코노미스트와 수석부행장을 역임했다. 2005년부터 3년간 미국 LA한미은행 행장을 거쳤다. 64세.
▲상업은행(commercial bank): 각종 예금과 대출을 취급하고, 수표나 어음을 발행해 결제 수단을 제공하는 일반적인 은행. 한국의 국민은행이나 미국 씨티은행이 이에 해당한다.
▲투자은행(investment bank): 투자와 관련된 각종 지원·서비스 업무를 하는 은행. 주식이나 채권을 인수, 판매함으로써 기업에 장기 자금을 공급하며, M&A 자문, 투자 자문, 파생금융상품 매매 서비스도 제공한다. 미국의 골드만삭스나 얼마 전 파산보호신청을 한 리먼브러더스가 여기 해당한다.
인터뷰=이지훈 위클리비즈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