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1일 독일 남부 상공에서는 러시아의 TU-154 여객기와 미국의 DHL 화물기가 충돌, 여객기 탑승자 69명과 화물기 승무원 2명 등 71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의 원인이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 지역의 관제를 맡고 있는 스위스관제탑의 업무상 잘못과 항공기의 공중충돌방지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항공기가 공중에서 충돌 위험 없이 안전하게 비행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공간에 2대 이상의 항공기가 비행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항공기가 서로 떨어져 비행해야 하는 최소 거리인 관제간격이 설정되어 있다. 관제간격은 지상의 항행 지원 시설의 정밀도, 항공기에 장착된 항법계기와 조종사의 기량이 통합된 항법의 정도, 그리고 관제관의 판단이나 조치에 필요한 여유 등을 종합해서 결정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세계민간항공기구(ICAO : 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f Organization)의 지역별 합의 등에 의해 표준이 설정되어 있어 이것을 사용하고 있다.
고도에 따라 수직간격에 차이
관제간격은 지역과 항공기의 종류, 관제시설 등 다양한 변수에 따라 차이를 가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항공기 간의 간격을 별다른 변동 없이 적용할 수 있는 구역은 이륙 직후 순항고도에 들어선 후 착륙 직전까지의 항로상이다. 이 구간 동안에 2만9천피트(8천840미터) 이하의 고도에서는 수직간격 1천피트(305미터)를 유지하고 그 이상의 고도에서는 2천피트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서는 2만9천피트 이상의 고도에서도 1천피트 간격으로 적용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상의 자동차가 면 위를 달리는 것이라고 하면, 항공기는 공간을 비행한다. 항공기가 확보하고 있는 항로상의 안전간격은 흡사 광대한 공간에 터널이 여러개 쌓여 있는 모습과도 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횡(橫)간격은 상황에 따라 너무나 다양한 변수가 있게 되지만 비행경로 간의 거리가 18킬로미터 이상, 고속 비행이 이루어지는 고고도에서는 32킬로미터 이상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종(縱)간격 또한 일정한 규정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대개 동일 경로를 동일 고도로 비행할 경우에는 10분 이상의 시간적 차이를 가지게 된다.
항공기의 관제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진다면 항공기가 공중에서 충돌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게 되지만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면 항공기가 위험거리까지 서로 근접하거나 최악의 경우 충돌하는 상황까지도 발생하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공중충돌방지시스템(TCAS : Traffic Alert Collision & Avoidance System)이다.
오늘날 항공기의 안전운항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장치인 공중충돌방지시스템은 항공기 간 근접비행사고(Near Miss)는 물론 공중충돌까지 방지하기 위해 항공기 주변상황에 대한 감시기능을 수행하고, 항공기간 상호접근시 가상 충돌시점 30~60초 전에 조종사에게 경고하여 대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안전장치다. 이 장치는 1956년 그랜드캐년 상공에서 두 여객기 충돌 발생사건을 계기로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후 1970년 TCAS를 개발, 평가를 실시하였으며 1980년 말 TCAS-II의 표준운영절차 및 지침을 제정하여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20만 달러쯤 되는 최첨단 안전장치
공중충돌방지시스템은 상대 항공기와의 시간적 거리를 기준으로 두 개의 구역을 설정한다. 절대적인 거리가 아니라 두 항공기가 충돌할 때까지의 이론적 시간을 계산하여 구역(Area)을 정한다.
주의구역(Caution Area)은 상대 항공기가 계속 접근할 때 약 20~48초 후에 다른 항공기에 충돌할 위험이 있는 지역을 말한다. 경계구역(Warning Area)은 두 항공기 사이가 주의구역보다 더 가까워 약 15~35초 후에는 두 항공기가 충돌할 수 있는 지역을 말한다. 주의구역에서 TCAS는 두 항공기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양쪽 항공기에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게끔 지시를 내린다. 이를 ‘항공교통 정보(Traffic Advisory)’ 라고 하는데, 만약 상대편 항공기가 주의구역에 들어오면 조종실 내에 있는 계기판에 노란색 다이아몬드 모양이 나타나면서 ‘트래픽, 트래픽’하는 경고음이 나오게 된다.
한편 상대편 항공기가 경고구역 안쪽으로 들어오면 TCAS 컴퓨터는 이에 대응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를 ‘조치지시(Resolution Advisory)’라고 하는데 조종실 내 계기판의 다이아몬드 모양이 붉은색으로 바뀌면서 필요한 조작을 알리는 음성이 나온다. 이때 나오는 음성은 구체적인 회피방법을 알려주는 것으로 ‘Climb(상승)’ 혹은 ‘Descent(강하)’라는 명령을 반복하면서 조종사에게 항공기 수직속도를 바꿀 것을 요구하게 된다. 이 경고음을 청취한 조종사는 수직속도계를 보면서 충돌방지를 위한 조작을 수행하여 수직속도계의 바늘이 적색범위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조종사의 조치로 경고구역을 벗어나면 붉은색 다이아몬드 모양이 녹색으로 바뀐다.
미국 연방항공법 규정은 자국기는 물론 미주를 취항하는 외국 항공기라도 승객이 30명 이상 탑승하는 여객기에는 TCAS 장착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들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중국 당국도 항공 안전을 향상시키기 위해 중국 내 주요공항에서 공중충돌방지시스템을 장착하지 않은 항공기의 이착륙을 엄격히 제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를 장착하지 않은 상업 여객기들은 여객기 운항이 잦은 항로에서는 고도 8천400미터 이하에서 운항하도록 규제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또한 국제민간항공기구는 2003년 1월 1일부터 전세계적으로 새로운 TCAS 시스템 의무 장착을 결의하였으며, 태평양 공역 및 북대서양 공역에서도 새로운 TCAS 시스템 장착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