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다찌마와 리>가 <놈놈놈>보다 한 수 위인 이유

이영주 |2008.09.26 09:39
조회 82 |추천 0

어딘가에서 청탁이 들어왔다. 일제시대, 만주, 그리고 '영화와 역사'에 대해 글을 써달란다. 물론 소재가 될 영화는 일제시대 만주벌판을 배경으로 찍은 두 영화, 만주웨스턴 '놈놈놈'과 쌈마이 코믹액션극 '다찌마와 리'다.

처음 데스크의 요구사항은 두 영화의 몰역사성에 대해 비판해달라는 것이었다. 중국의 동북아공정과 일본의 독도 파문으로 가뜩이나 시끄러운 이때, 일제시대 만주를 배경으로 역사성을 거세한 오락영화가 나오는 게 말이 되냐는 이야기였다.

처음엔 난 생각이 다르다고, 적합한 필자가 아닌 것 같다고 고사했다. 두 영화의 미덕은 국가와 역사로부터 자유로이 빠져나와 마음껏 장난질을 한 쿨함에 있다고 봤으니까. 담당기자랑 한참 동안 토론 비스꾸무리하게 통화를 이어갔는데, 기자가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생각하는 것 그대로 다시 기획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데스크랑 의논해 보겠다고. 결국 데스크는 기획을 수정했다.

그리하여, 정중히 원고 청탁을 고사하려던 노력은 -가뜩이나 시간 없어 죽겠는데- 오히려 내가 안 쓰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로 흘러버렸다. 쓸데없이 일을 만든 것 같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렇다. 오늘이 마감이다. ㅠㅠ

얄팍하고 부정확한 역사 지식에 근거해 글을 쓰려고 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써볼란다. ㅡㅡ;; 내가 또 언제는 논리적인 적이 있었다고... ㅠㅠ;;;;

 

 

 

역사를 가지고 놀려면 다찌마와 리처럼 호방하게!
가 보다 한 수 위인 이유

 

계속되는 한국영화의 부진으로 썰렁하기 그지없었던 올여름, 매우 흥미로운 한국영화 두 편이 개봉했다. 7월에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이하 놈놈놈)은 만주벌판에서 말 달리며 보물지도를 찾아가는 세 협객이 나오는 만주발 서부극이고, 이어 8월에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는 ‘놈놈놈’과 같은 시공간에서 전설의 특수요원 쾌남 다찌마와 리가 마치 고릿적 무성영화처럼 의도적인 유치함과 과장으로 웃음을 주는 독특한 코미디영화다.
두 영화 모두 재미있게 보았다. 모처럼 잘 만든 한국영화가 나왔다는 생각에 뿌듯해하기까지 했다. 물론 잘 만든 영화의 기준은 보는 이마다 다르니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많겠지만, 스타일을 제대로 살리든 유치뽕짝 난리블루스를 추든 감독의 의도에 설득력이 있고, 그 의도대로 잘 빠지기만 해도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한 영화는 스타일을 추구했고, 다른 한 영화는 유치함을 추구했다. 그리고 그 의도를 충분히 살렸다. 그걸로 충분하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두 영화가 왜 하필 일제시대, 만주를 배경으로 만들어졌을까 하는 궁금증은 남았다. 연도와 사건명만 줄긋기했을 뿐 한국근대사를 풍성하게 배워본 적이 없는 우리 국민들에게, 따라서 내게도, 일제시대와 만주는 ‘독립군’으로 등치되는 이미지다. 그런데 이 두 영화는 공히, 독립군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국가’와 ‘민족’따위의 묵직한 무게를 가볍게 내던지고 유희에 몰두한다. 영화에 독립군은 등장하지만 국가와 민족은 없으며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역사는 없다. 한마디로 놀고 있다.

 

정치 과잉의 시대에서 ‘놀고 있는’ 영화들

 

이쯤에서, 한국사에서 스타일을 살리든 유치한 웃음을 자아내든 그럴 수 있는 시대가 부지기수일 텐데, 두 감독이 굳이 일제시대를 선택한 이유가 뭘까, 게다가 두 감독이 사전에 작당이라도 한 듯 일제시대에서 정치성과 역사성을 거세하고 한없이 가벼운 놀이판을 벌인 이유는 뭘까 궁금해진다.
내가 공교육 과정에서 배운, 소설에서 읽은, 숱한 드라마와 영화로 봐온 일제시대는, 한마디로 정치 과잉의 시대였다. 고조선부터 현대까지 죄다 훑는다 해도 일제시대만큼 정치적으로 충만했던 시절이 없었다.
솔직히 왕후장상이 이끌어가는 주류역사에서 왕이 어떤 정치를 펴든, 큰 나라에 굽실거리든, 유별난 사상을 가지고 통치를 하든, 눈앞의 먹고사는 문제가 최우선이었던 백성들에게는 윗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심지어 국가의 존폐마저도 그다지 큰 일이 아니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일제시대는 달랐다. 식민지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나와는 하등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던 윗동네의 협상과 결정이 나의 먹고사는 문제, 일상의 문제, 생존의 문제까지 좌지우지한다는 의미다. 하기에 소위 먹물 든 지사가 아니더라도 소수 주구들을 제외한 백성들은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마음, 그도 아니면 일본놈 밑에서는 도저히 못살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물론 해방 직후 격동의 시기도 일제시대 못지않은 정치 과잉의 시절이었겠지만, 분단된 현재의 조건을 고려할 때 사상의 대립이라는 장애물을 딛고 스타일이나 가벼운 웃음을 추구하기 어렵다.
정치 과잉의 일제시대, 공교롭게도 지금의 이명박 시대와 많이 닮았지 않은가? 물론 일제시대와는 달리 국민이 대표자를 뽑는 시대다. 그러나 대표자들이 국제기구나 다른 나라와 벌이는 협상은 국민의 권한 너머에 있다. 그 협상의 결과는 국민의 일상을 파고들어 생존을 위협한다. 매일같이 터지는 정치뉴스들은 국민의 정치 피로도를 더욱 높인다. 소수 기득권세력을 제외한 국민들은 촛불집회의 군중들처럼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겠다고 나서든, 그도 아니면 지금 정치 그대로는 못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역사 속 정치 과잉의 시대를 끄집어내 놀이판을 벌인 것은 어쩌면 그 시대를 짓누르고 있던 정치적 가치, 즉 ‘민족’과 ‘국가’에 대한 거부이자 조롱이다. 정치 피로도 높은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들에게는, 일제시대의 역사성을 살리는 것, 즉 좌우 할 것 없이 절대선이라 인정하는 민족이나 해방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묵직한 역사를 가볍게 비틀어버리는 놀이판이 훨씬 전복적이다.
‘다찌마와 리’를 보기 전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그럴듯한 척하지 말고, 제발 뭔가 있는 척 좀 하지 말고,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게만 해 달라.”
이 기도는 정치 피로도가 극에 다다른 이명박 시대의 한 국민이 외치는 절규였다.
그런 점에서 결론 부분 나쁜 놈의 허무한 최후를 통해 마치 뭔가 있는 듯 무게를 잡은(전작을 살펴봤을 때 김지운 감독의 고질병 같기도 하지만) ‘놈놈놈’보다 작정하고 골 빈 싸구려 코미디를 보여준 ‘다찌마와 리’가 한 수 위다. 시대를 해석하고 선동할 것이 아니라면 -일개 영화에 과연 그런 힘이 있는지는 의문스럽지만- 역사를 가지고 놀이판을 벌이려면 과감히 넘치는 게 오히려 낫다.

 

왜 하필 만주일까?

 

물론 두 감독이 국가와 민족과 같은 거대 정치권력, 혹은 담론을 비틀어보겠다고 작정을 하고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두 감독 역시 나와 동시대인이고, 나의 욕구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분명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두 영화가 공히 공간적 배경을 조선반도가 아닌 만주로 설정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꽤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만주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꽤 익숙한 듯하지만, 무척 낯선 공간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만주가 우리 민족 과거의 영토라는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들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에게 두 영화의 배경이 됐던 일제시대의 만주에 대해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1930년대의 만주를 떠올렸을 때 퍼뜩 생각나는 사건으로는 1931년 9·18사변, 그리고 32년 관동군의 만주국 수립 등이 있을 것이다. 만주는 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공간이었고 그에 걸맞게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있던 공간이었다. 일본, 만주족, 한족, 조선족, 몽골족 등 아시아계뿐 아니라 하얼빈에는 폴란드계 유대인, 러시아계 등도 이주했다고 하니 다민족도 이런 다민족국가는 없을 듯하다.
‘다찌마와 리’야 만주뿐 아니라 일본, 미국, 스위스 등 다양한 무대에서 종횡무진하니(물론 모두 국내촬영이었지만 이 역시 가벼운 농담이다) 차치하더라도, 오로지 만주만을 배경으로 삼은 ‘놈놈놈’의 경우 만주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놈놈놈’에게 만주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분단까지 되어 더더욱 비좁은 땅덩이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광활한 벌판이 주는 공간의 자유로움과 다민족국가가 주는 무국적, 즉 정치적 자유에 대한 동경이 뒤섞인 공간이 아닌가 싶다. ‘놈놈놈’에 등장하는 주․조연 배역들의 무국적 옷차림은 그런 추측에 힘을 더한다.
보통 사람들이 독립군을 떠올리거나 고구려 발해 시대를 떠올리며 정치적 공간으로 상상했던 만주를 자유에 대한 동경으로 뒤바꿔놓은 ‘놈놈놈’은 어쩌면 괴롭기만 한 현실정치를 회피하고자 하는 지식인의 퇴행으로까지 보인다. (그래서 더더욱 ‘다찌마와 리’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놈놈놈’과 ‘다찌마와 리’처럼 오락을 목적으로 한 영화들이 굳이 일제시대 만주라는 정치 과잉의 시공간을 놀이판으로 삼았는가 생각해 본다.
며칠 전 조계사 농성장에 술 취한(이라고 하기엔 다분히 의도적인 정치세력으로 보이는) 괴한이 난입해, 조폭들이나 한다는 칼질을 해서 피가 낭자했던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단순한 취객(?)의 실수로 사건을 봉합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뉴스를 통해 그 사건을 보며 분노를 넘어 참담함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도대체 이 시대에 ‘정의’라는 것이 숨 쉴 곳이 있긴 한 건가, 막막하기까지 했다.
그래, 지금은 그런 시기다. 정의는 숨 쉴 곳을 찾기 어렵고 정치는 희망을 주지 못한다. 국가와 정치는 국민에게 피로를 더하는 존재일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어도 오락영화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역사가 어떻고 국가가 어떻고 하는 일장 설교가 아니라, 그렇다고 현실로부터 도망쳐 버리는 비겁함이 아니라,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고 호방하게 외칠 수 있는 쾌남 다찌마와 리다.

 

 

에이 씨... 역시 논리가 딸린다. 원래 이 얘길 하고 싶었던 게 아닌 것 같은데, 쓰다 보니 다찌마와 리 예찬론이 돼 버렸다. 젠장... 나의 한계다... ㅡㅡ;;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