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에 내 잡념을 끄적이는 양이 점점 늘어난다.
용량이 무한대인 다이어리를 쓰는 까닭에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쓰고 곧 잊는다.
(아인슈타인도 아니고-_-)
내 주변의 의식을 긁어모아
끄적끄적거리면
새로운 캐릭터가 하나 생겨나고
새로운 사건이 하나 생겨나고
때로는 내가 이루지 못한 사랑도 이 속에서는 이루어지는
이 신기한 공간은
실은 텅 비어있다.
절대적으로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공간이다.
나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
그지같은 글딱지를 몇 개 쓰곤 하는데,
그 글은, 그야말로 진짜 그지같아서
실력을 객관적으로 검증받아본 기억이 없다.
다만, 소수의 애독자들의 응원으로 살아갈 뿐.
이걸로 어떤 수단을 삼아보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이 실력으로는 밥벌이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다만,
백지 앞에서 펜을 들고 있을때나,
텅 빈 게시판과 키보드만 덩그러니 내 앞에 있을때,
나는 그야말로 몇 시간 동안은
무아지경이 된다는 사실.
어떤 글을 써내든간에,
그 시간이 행복해서,
내 기억에서 사라질 만한 이야기를
이것저것 긁어서 하루하루 메꿔본다.
아직 경험이 없어서,
내 주변에서만 맴돌다가 겨우겨우 하나 쓰는 게 전부인,
스물네 살의 먼지같은 재수생 신분이지만,
쓰고 말하는 원초적인 것에 행복해하도록 만든
창조물에게,
왠지 감사한 마음이다.
그래서 누가 뭐라건
다이어리를 쓰고
게시판에 글을 쓰고
페이퍼를 쓰고
때론 누군가를 앞에 놓고 실없는 소리를 주절거리고
또 어딘가에 낙서같은 내 영혼을 실어보내며
하루를 보낸다.
그 박제된 낙서가 모여서
또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낼지 또 모르지.
오늘은 영어 단어를 외우다 외우다 지쳐서
최윤, 장정일, 김영현, 정찬, 신경숙 님의 자전소설집
<나의 나> 를 읽었다.
옛날엔,
아 뭐야 재미없어.
라고 흘려보내던 암흑기의 상태로 소설을 집어들었었는데
이제는
모든 소설이
이토록 경이로울 수가.
자신의 삶이 결코 평탄하지는 않았음에도
그것을 내 옆에 사는 어떤 놈씨의 일인 양 풀어내는
그들의 솜씨에 감탄하고
치밀한 묘사에 또한번 감탄하고,
(난 디테일을 너무 좋아한다.)
그들의 확고한 인생관에 감탄한다.
소설가 정 찬 님이
자신의 소설 속에서
소설에 대한 기가막힌 정의를 내려놓았길래,
그분께 양해없이
그냥 무단으로 다이어리에 막 적어와버렸다.
혼자 두기엔 왠지 이 글귀가 쓸쓸해 보여서
여기에 풀어주려한다.
*
그 곳은 언제나 텅 비어있었다.
나는 그 공허가 무섭다.
현실 세계에서 혼자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산다는 것은 곧,
사람과 사물들에게 둘러쌓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략)
그런데 길 속의 세계에서 나는 언제나 혼자다.
나를 끌어당기는 사람도, 사물도 없다.
인력이 부재한 진공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왜 그 진공의 세계로 들어가는가?
내가 아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가?
살아 숨쉬는 세계로 만들기 위함이다.
무엇으로?
언어로 만든다.
텅 빈 공간에서 언어의 흙으로 사물을 빚으며,
빛을 끌어내고
생명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형상도 질서도 없는 무중력의 세계를
중력의 세계로 만드는 것이다.
세계는 진실을 끊임없이 비틀고, 꺾고, 일그러뜨리고, 마멸시키지만
길 속의 세계에서만은 진실을 그렇게 치욕수럽게 다루어서는 안된다.
-정 찬,<은빛 동전>
*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모든 것은 위대하다.
그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한다발 바친다.
나 역시
한 획을 긋지는 못하더라도
창조를 즐기고 사랑하는
한 미물이 되어 영원히 존경을 바치리라 다짐한다.
날씨가 춥다.
분명,
어딘가에,
호떡과 붕어빵과 핫도그, 감자탕, 등등을 소재로 한
소설이나 그림, 음악이 100%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예술은 위대하다.
07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