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영어 공부는 때려치우련다.
하고 싶은 말도 후련하게 하지 못하고는 오늘을 넘길 자신이 없었다.
어제 새벽.. 잠도 안오길레 한국에서 돌아올 때 심심할까봐 사둔 책을 펴들었다.
어디서 상까지 받은 대단한 책이래서 재미있을 줄 알고 샀는데.. 내용이 기억이 나지를 않는 걸 보면, 그닥 재미있지도 않았던 모양이었다.
첫장을 넘기자 주인공은 주변에 죽어간 이들의 숫자를 세고 있었다. 일곱이었던 것은 어느 새, 마흔이 훌쩍 넘었고, 곧 쉰 일곱이 되었다.
처음부터 구구절절히 죽은 사람 숫자나 세는 내용이라 재미가 없었나보다, 비행기에서 시간이나 때우려고 적당히 읽은 탓에 내용도 기억을 못하고 있었구나 하고는 나는 책을 덮었다. 안그래도 뒤죽 박죽인 심정에 의미가 심장할 만한 이야기를 읽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아침에는 일찍일어났다.
같이 사는 친구가 아침 일찍 출근준비를 하는 소리에 백수 주제에 7시에 일어나버리고 말았다.
하루가 어찌나 길던지, 청소도 하도, 빨래도 하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저녁준비를 마치고서도 겨우 4시를 갓넘었던 것 같다.
학교에 갔던 다른 룸메가 돌아왔다.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나와 태평히 닭백숙이나 끓이고 있는 나에게 물었다.
"언니, 최진실 죽은거 알아요?"
왠 그지같은 소린지 싶었다. 딱히, 연예인에대한 관심이 있거나, 특별한 애정이나 앞감정이 있지 않은 나지만, 적어도 보여지는 삶정도는 알고있다.
가끔 술자리 안주로 오르내리는 이야기들인지라, 아주 모르고 있으면, 왕따를 당하는 기분이었으므로...
최근엔 사채니 뭐니 해서 시달렸다는 이야기를 주변을 통해서 들었다. 속 좀 상하겠다.. 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휙 지나치고는, 나는 내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의 일따위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도 꿋꿋하게 살던 한 여배우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목을 매어 죽었단다. 상처로 얼룩졌던 결혼생활의 상처도 다 털어 버린 듯이 살던 한 여성이, 사회의 어긋난 시선과 세치혀 놀림을 감당을 하지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이 번엔 속 좀 상하겠다로는 결론을 지을 수가 없어졌다.
그리고 문득, 어제 새벽에 읽었던 책이 생각났다. 하나, 두울, 세엣, 네엣...
나는 그 것이 나였을 지도 모를 세치혀가 죽음으로 몰고간 억울한 영혼들을 세어보았다. 특별한 직업때문에, 늘 보여져야 하는 사람들의 서글픔을 잠시나마 생각해봤다. 나까지것이, 그 고통을 알랴마는.. 지나가듯이 했던, 우스게 소리로, 시간이나 때워 보려고 놀렸던 내 혀를 콱 깨물어서 혼이라도 내 주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사실 나는 자살에 대해 관대한 편은 아니였다. 최악의 결말을 짓는 사람들의 무책임함이 나를 진저리나도록 화나게 했다. 어떤 이별이든, 이별은 늘 남아있는 사람의 몫이었기에, 혼자만의 도피는, 남아있는 이들에게는 죽도록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고통이므로.. 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한편으로는 오죽했으면 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이 번에는.. 나도 모르게 후자쪽으로 치우쳐져있었다. 일 말의 죄책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라는 혹은 "스타" 라는 압박붕대에 돌돌 감겨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고, 한 마디 말 실수에 냉대당하고, 착한 짓하려면 보이려고 하는 짓이라 손가락질 받고, 어쩌다 나쁜 짓이라고 하면 인간성을 들먹여가면서 죽을 힘을 다해 헌담을 늘어놓으니..
그 붕대 안에서 온 몸이 조여들어 시퍼렇게 질려가는 "사람"이 있음을 잊고있으니..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는 장님눈을 하고는 놀려대는 혓바닥이며 손가락에 숨통이 막힌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최악의 결말을 지을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미 목이라도 졸려 숨통이 끊어져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람의 죽음이 어디 그저 육체라 일컬어지는 고깃덩이의 죽음만을 의미하겠는가..
그러고서도, 그렇게 당하고서도, 누군가는 또 다시 "악플"이라 일컬어지는 붕대를 누군가의 몸에 칭칭 감아댈 것이고, 각종 확인도 안된 루머들은 진실과 신뢰를 바탕으로 씌여져야할 신문기사가되어 삽 시간 만에 인터넷을 장악 할 것이다. 지금까지 보건데, 이제 누군가의 속쓰리고 가슴아픈 죽음은 뒷전이고, 누가 장례식장을 찾았는지가 주가 되어버릴 것이고, 나는 그것이 비통이고, 슬픔인 줄 알것이다.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그 들도 쓴물을 삼키겠다만- 유족과 친구들에게 염치없이 심정따위나 물어볼 것이고, 훌륭한 발명품들로는, 그 들의 오열을 담아 사방 천지에 뿌려댈 것이다. 그리고 고인의 죽음은 편집을 거쳐서 그야말로 특종기사가 되어 여기저기를 도배를 하게 될 것이 명백하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세치혀가 저지른 살인"은 서서히 잊혀지고, 지워져 갈 것이다. 다시 또 누군가의 주검이 우리들 앞에 늘어지기 전까지 말이다.
그 때, 나와 그대들은 또 다시 싸늘한 시체에게 "미안하다, 하늘에 가서는 힘들지 말아라" 라는 말 따위로 스스로 목숨까지 끊은 영혼을 위로할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