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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릭 백 (Frdric Back)

류영주 |2008.10.05 23:43
조회 152 |추천 0


 

 '프레데릭 백'감독은 1924년 '독일 자알브뤽켄' 태생으로 그는 한때 '스트라스부르그 국립학교'에서 (음악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미술에 대한 자신의 성향을 거역할 수 없었다. '프레데릭 백은' 어린시절부터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연필로 그림을 그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를 더 좋아했다. '프랑스'로 이주한 '프레데릭'은 '렌느 시'에 있는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하고, 영원한 스승이며 그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준 해양 화가 '마튀렝 메위(Mathurin Meheut)'를 만나게 된다. 스승과 함께 했던 '브류타뉴 해변'에서의 미술 교습은 '프레데릭 백'에게 그의 내면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던 예술에 대한 혼을 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24년뒤 1948년, '프레데릭 백'은 그동안 그렸던 작품들을 가방에 넣고 자전거 한 대 그리고 그의 전 재산인 30달러를 가지고 새로운 대륙 '캐나다'로 이주한다. 풍요로운 전설의 향기가 눅눅히 배어있는 땅, 그리고 원시의 발자취와 문명이 공존하는 거대한 평원, '캐나다'는 인간과 문명에 대한 그의 예술혼을 형성시켜주기 위한 가장 적절한 공간이었다.   1948년부터 4년 동안 가구 디자인 학교와 '몬트리올 미술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던, 프레데릭 백에게 어느 날 기회가 찾아온다. 당시 '캐나다'의 국영 방송사인 라디오 캐나다의 '허버트 타이슨'에 의해 설립된 애니메이션 전문 스튜디오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프레데릭 백'은 초기에 라디오 캐나다 방송사를 통해 방영되는 교육용 시리즈물의 제작에 참여하면서 애니메이션 분야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특히 '안다는 것의 즐거움'과 '과학 이야기' 등의 작품 제작에 참여하면서 그는 움직이는 그림에 서서히 몸을 담기 시작했다.   '프레데릭 백'의 재능은 단지 방송용 일러스트레이션 제작과 애니메이션 분야에 한정되지 않았다. 자신의 예술을 보다 완벽하게 만들고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다양한 방식을 통해 구현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유리 위에 그림을 그리는 화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연구의 성과는 '온타리오'에 있는 '마타와(Mattawa) 성당 '의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예술 광장'이라는 지하철역의 스테인드글라스로 탄생된다.   이처럼 새로운 기법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과 연구를 통해 '프레데릭 백'은 '페이퍼 애니메이션'과 '셀 애니메이션' 기법을 결합, 물감이 아닌 크레용으로 셀 위에 그림을 그리는 독특한 기법을 창조할 수 있었다.   인디언 전설과 토속 신앙을 애니메이션으로 탄생 캐나다로 돌아온 '프레데릭 백'은 46년후, 1970년부터 자신이 직접 연출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1970년 '그래엠 로스'와 공동 제작한 '아브라카다브라'는 '프레데릭'이 감독한 최초의 애니메이션으로 각종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초청 상영되었고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각 TV 방송국에 배급되었다.  그의 작품 '크랙(Crac,1981)'은 흔들의자를 주인공으로 향수 어린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여 1982년 아카데미상 외 전세계 애니메이션 시상식에서 22개의 상을 받은 애니메이션이다.그는 이 작품에서 의인화된 ‘흔들의자’의 시점을 통해 캐나다의 근대사를 문명 비판적 시각에서 조망했다. 그는 하나의 장면이 다음 장면속으로 녹아들어가는 장면전환을 이용 시간의 흐름을 표현했고 캐나다 민속음악과 향수 어린 영상들을 교차시키는 가운데 과거와 현재를 아름답게 병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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