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정말 반복되는걸까? "극히 일부의 불친절한 외국언론에게"(To the exceedingly few unfriendly foreign press out there) 경고를 발한 한나라당의 영문 논평을 보고 있자니 문득 무서운 생각이 도진다. 이러다 진짜 제2의 IMF가 오는 거 아닌가 라는...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다. IMF에게 경제주권을 넘겨줘야 했던 그때의 상황과 지금 돌아가는 꼴이 놀랍도록 흡사하다. 너무나 똑같아서 소름이 끼칠 정도다. 앞서 언급한 외국 언론 타령부터 그렇다.
한나라당은 10일 차명진 대변인 명의의 영문논평을 통해 "극히 일부의 불친절한 외국언론들'이 사실과 다른 무책임하고 악의적인 보도(malicious or irresponsible reporting)로 멀쩡한 한국경제를 흔들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융구조도 견실하고 외환보유고도 충분"하며 "지도자와 국민들도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 위해 잘 뭉쳐있다"고 주장했다.(외환보유고가 그렇게 충분하다면 뭣 때문에 '달러 모으기'를 강요하고, 지도자와 국민이 그렇게 잘 뭉쳐 있다면 왜 라디오 노변담화로 단합을 호소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만, 아무튼...)
그에 앞서 금융위원회는 하루 전인 9일, ‘한국의 은행들, 과거 실수 망각’이라는 제목의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 기사에 대해 해명자료를 내고 반박을 시도했다. 기획재정부 관리도 “한국 경제의 실상을 잘못 전달하는 보도에 대해 강력히 대응해 한국에 대한 왜곡된 정보가 퍼지는 것을 막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아는가? 외환위기를 초래한 1997년에도 한국경제를 비관적으로 진단한 외국언론의 보도가 이어졌고, 그때도 정부 여당의 반박과 해명이 잇따랐다는 것을.
강만수 장관이 재경원 차관으로 몸담았던 당시 재경원은, 한나라당과 금융위가 그러했듯이, 외국언론의 왜곡보도를 바로 잡는답시고 반박자료를 발송하고 항의서한을 보내느라 부산을 떨었드랬다. 특히 재경원은 한국의 대외지급능력등을 극도로 과소평가한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사에 대해 강력 대응을 선언하며, "아시아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는 블룸버그사가 주위의 이목을 끌기 위해 무리한 보도를 일삼고 있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한국경제, , 1997.10.10)
외국 언론의 보도를 문제삼아 입막음을 시도하는 모양새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더 섬뜩한 것은 10일자 중앙일보 기사다.
중앙일보는 5면 하단에 배치한 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외환위기 때도 일부 외국 언론의 왜곡·과장 보도는 불안하던 금융시장을 패닉으로 몰고가는 기폭제가 됐다"면서 "마찬가지로 요즘처럼 금융시장이 흔들릴 때 나오는 잘못된 외신은 한국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국인들이 이런 보도를 통해 한국 경제가 위험하다고 보고 돈줄을 조이고, 투자를 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정부가 외신의 잘못된 보도에 ‘강력히 대응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은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중앙일보가 작성한 기사를 뺴다 박은 듯한 사설 한 편이 IMF 치욕을 불과 11일 앞둔 조선일보에 등장했다. 라는 사설이 바로 그것이다. 2008년 10월 10일자 중앙일보 기사와 제목이나 내용 면에서 일란성 쌍둥이처럼 쏙빼닮은 1997년 11월 10일자 조선일보 사설을 직접 감상해 보시라.
"정부는 최근 외국 언론들의 이른바 「한국경제 때리기」 유행에 대해 신중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현상황에서 한국경제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안정과 신뢰의 회복이며 특히 국내 투자자 못지 않게 외국 투자자와 대여자들의 신뢰가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때문에 한국경제의 현실과 전망에 대한 내외의 언론 보도들은 이들의 판단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정부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정부는 과도하게 민감할 필요는 없지만 부정확한 인용이나 과장 또는 허위보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대응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추측과 오해를 줄이는 적극적인 자료공개와 정책의 투명성 유지에도 노력할 필요가 있다."
어떤가. 조선일보는 상기한 사설에서 "문제의 핵심은 언제나 보도의 정확성과 객관성"이라며, 한국경제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도한 외신을 "부정확한 보도나 과장 또는 왜곡된 경제분석", "온갖 루머와 왜곡된 정보들", "의도적 「한국 때리기」의 조짐", "부정확한 통계자료를 무책임하게 인용", "부정확한 인용이나 과장 또는 허위보도" 등으로 격하 내지는 폄하했지만, 그러나 둘 가운데 누구의 말이 거짓이고 진실이었는지 판가름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불과 11일 후에 국고가 텅 빈 한국경제의 민망한 알몸이 만천하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그때처럼 지금도 친정부매체들은 "한국경제 괜찮다"는 대통령의 입발린 소리만 앵무새처럼 부지런히 되풀이하며 '외신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이번에는 지난 날의 수모를 만회할 수 있을까. 제발이지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역사는 반복된다던데...'잃어버린 10년'이 이런 식으로 실현되면 어떡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