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전 세계적인 국제영제로 우뚝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 선정은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초청 영화인들의 이름값과 축제의 화제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제한된 작품들을 놓고 여타 영화제와 어떻게 경쟁하고 변별할 것이냐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지만 개막작을 결정한다는 것은 결국 그 영화제의 시선이 가 닿는 곳이 어디냐의 문제다.
1996년 영국영화 로 첫 행사를 열어젖혔던 부산국제영화제는 이후 이란의 , 한국의 , 인도의 , 일본의 , 대만의 , 중국의 등 아시아 각국의 영화들을 소개하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서의 위상과 정체성을 확립했다. 올해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사상 처음으로 중앙 아시아의 영화를 선택했다. 최근 들어 영화적 활기가 용솟음치고 있는 카자흐스탄에서 온 개막작 은 일정 궤도에 오른 부산국제영화제가 내실을 다지고 지향점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려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이다.
루스템 압드라쉐프의 은 이미지로 관객을 압도할 만한 그런 영화라는 생각이 적절히 드는 그런 영화다. 이 영화에선 풍경이 주인공들만큼 중요하다. 그 풍경은 관광객의 엽서로 볼 수 있는 유형의 것이 아니라 영화가 전개될수록 생채기를 태연하게 품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풍경은 장엄하게 그 자체로 존재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스토리, 이제는 회상으로밖에 불려나올 수 없는 역사를 당당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영화가 전개될수록 자꾸 관객의 마음을 건드리며 말로 환원할 수 있는 풍경과 인간의 상징이 드러나지만 언어로 주워 담는 것을 당당하게 거부하고 이미지의 간결한 환기력을 당당하게 증명하는 듯한 기개가 있다.
영화는 참담한 암흑기를 견디고 살아남은 이의 이야기. 그에게 남은 것은 따뜻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뿐이다. 카자흐스탄의 가장 유망한 젊은 감독 루스템 압드라쉐프(Rustem Abdrashev), 러시아의 대표적인 시나리오 작가 파벨 핀(Pavel Finn), 카자흐스탄의 탁월한 실력파 배우 누르주만 익팀바에프(Nurzhuman Ikhtimbaev) 등 황금의 스탭과 배우가 만나 감동적인 대하드라마를 완성하였다.
1949년 카자흐스탄, 구 소련 정부에 의해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던 시절. 유대인 꼬마 사쉬카(Sashka)는 기차로 강제이주 도중 할아버지가 숨지고 할아버지의 시신과 함께 카자흐스탄의 어느 외진 마을에 내린다. 그곳에서 카심(Kasym) 할아버지를 만나 정착하게 된다. 하지만, 그 마을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비극이 닥치고 이스라엘로 보내졌던 사쉬카만이 살아남는다.
제목인 [스탈린의 선물]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1949년 구 소련 정부는 스탈린의 70회 생일을 맞아 최초의 핵폭탄 실험을 하였다. 그런데, 그 핵실험으로 인하여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스탈린이 70회 생일을 맞아 죽음의 선물을 인민들에게 안긴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사쉬카의 꿈과 관련된 것이다. 사쉬카는 스탈린에게 70회 생일선물을 보내면 부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스탈린의 선물"은 스탈린의 소수 민족 강제 이주정책이 시행되던 1949년에 할아버지를 잃고 카자흐스탄의 한적한 마을에서 살게 된 유태인 소년 사슈카의 생활을 회상으로 담는다. 이제 자신도 나이를 먹어 할아버지가 된 샤슈카의 목소리가 화면에 들리며 그가 어렸을 적 상황이 화면에 펼쳐진다. 샤슈카는 죽은 할아버지 시체 곁에서 발견되는데 엄청난 힘을 지닌 퇴역군인이자 철도노동자인 카심은 샤슈카를 구해준다. 카심은 샤슈카에게 사비르라는 새 이름을 붙여준다. 사비르가 된 샤슈카는 이 마을에 완벽하게 적응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며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람이고 친척인 듯 보이는 이 마을 사람들은 서로 배려하며 공존하는 법을 몸속 유전자에 간직한 듯 보인다. 이 천국같은 마을에 침입자가 되는 것은 경찰과 군인들이다. 그들은 마을사람들이 모르는 바깥세상의 질서를 어쩔 수 없이 환기시킨다. 마을 인근을 가로지는 기차는 늘 군인들을 실어 나르고 아이들은 그들에게 따뜻한 물을 팔지만 그들이 지나치는 존재가 아니라 다스리는 존재로 다가올 때 마을에는 그림자가 진다.
구 소련의 억압적인 정치질서와 카자흐스탄 작은 마을의 공동체가 슬며시 대비되면서 천국같은 이 마을의 풍경이 망가질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역사는 어쩔 수 없이 이들의 삶이 비극적 파국을 맞을 것임을 암시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 속의 당당한 풍경과 그 풍경에 자연스레 섞이는 인물들의 표정과 동작이 사라진 것에 대한 그리움 이상의 강렬한 느낌을 전해준다. 특히 카심의 주름 가득한 얼굴, 한쪽 눈이 상한 채 어느 계곡의 굴곡처럼 쭈글쭈글한 그의 표정은 그것 자체로 풍경이다.
예술과 상업적 요소가 공존하는 영화를 본다는 것은 영화제가 아니면 쉽게 접하지 못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부산에서 처음으로 중앙아시가 영화과 개막작 선정이라는 의미는 앞에서 말했듯 큰 의미로 남는다. 카자흐스탄 영화를 접하기란 한국 관객으로써는 영화제를 오지 않는다면 보기도 힘들다.
역시 세계의 영화에는 헐리우드나 일본, 중국 영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분명 예술성이 강한영화임에 틀림없지만 상업적 감성에 찌든 관객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영화는 너무나 많다. 그러한 의미에서 은 영화제를 찾은 관객이나 예술영화에 거부감이 무조건 드는 관객에게는 오히려 큰 선물이다.
(씨네통 닷컴 빡's의 기자시사회 리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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