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싶지 않겠지만, 임진왜란(정유재란포함) 자생적 친일 부역자들이 상당수 출현했다.
바로, 최하층민인 백정, 노예(관노, 사노)층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침략군 일본군이야말로 해방군이었다. 그들은 두 손들어 일본군을 환영했고 다투어 일본군에 협력하려 몰려 들었다.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장군은 관할지(전라도 호남)내의 이들 부역자들을 색출, 처형(참수형)했다는 기록이 수없이 나온다.
호남이라면 조선수군의 활약이나 호남의병들 덕분에 왜군이 한 치도 범접 못한 자랑스런(?)지방으로 모두 믿고 있을터. 거기에도 친일 부역자들이 창궐했다는 얘기다.
이를 미루어 보면, 왜군이 한참 설쳤던 타지역(경상도, 경기도,함경도 등)의 경우는 어떠했을까는 뻔하다.
천대받고 멸시받았던 비참한 최하층민들에겐 같은 조선족보다 왜놈이나 때국놈(중국)이 더 좋았던 것은 아닐까?
또는 지옥과 같은 봉건 신분사회가 왜놈들의 침략에 의해 붕괴(일종의 혁명)되어 새 세상에서 살고 싶어서였을까?
이들은 왜군의 길잡이로, 정보원으로, 심지어는 왜군처럼 머리를 깎고 왜군 흉내를 하며 의시댔다고 한다.(왜군과 상관없이 왜군으로 위장, 약탈과 강간을 자행하기도 했다)
먹고 살기 위한 자생적 종군 위안부도 있었다.
전쟁 종결 후 명군 철수 시 명군의 현지처(조선인 아녀자)들이 중국인 남편(GI가 아니고 CI?)과 함께 중국으로 같이 가려고 애원하고 이를 취체하는 조선 관헌들과의 다툼(출입국관리법 위반이라나?)이 실록에도 나온다.
일본의 포로가 되어 끌려 간 조선인 도공(陶工)들은 정작 조선에서는 홀대받았다가 일본에서는 도공 기술자로 우대받자(1류 도공은 사무라이 신분으로 격상시켜 줌) 조선 쇄환사(포로송환교섭 사절)들과의 면담시 조선에 절대로 돌아가지 안겠다고 귀국을 거절했다고 한다.
(심지어 강제 귀국시킨다면 자살하겠다고 땡깡을 부리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믿기지 않지만(믿고 싶지도 않겠지만) 이것이 역사이며 서민들의 인간사인 것이다.
섣부른 민족의식이나 애국심따위는 오늘 날 먹물들(요즘 우리 주위에 엄청 많다)에게는 지고의 선처럼 여기지만 당시의 기층민인 그들에게는 ''에라, 엿 먹어라 !!"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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