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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말(복음?)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이승복 |2008.10.16 16:04
조회 136 |추천 5
 [궂은 일과 먹구잡이 일]


우리 나라 속담에 <궂은 일은 식구(가족)요, 먹구잡이 일은 남이다>란 말이 있다.
궂은 일이란 언짢고 꺼림하여 하기 싫은 일 또는 사람 죽은 데 관계되는 일 곧 주검을 치르는 일을 가리킨다.

초상집에 가 보면, 조상꾼들은 만들어다 바쳐 주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듯(?) 갖가지로 장난 비슷한 놀자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슬픔을 만난 가족들은 이들 조상꾼들에게 결례가 되지 않도록 갖가지 궂은 일로 동분서주함을 볼 수 있다.


우선 바이블을 보고 다음 말을 이어가자.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村)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主=예수)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하시니라.]

(누가 10;38~42)


예수는 부모가 없는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집에 자주 드나든다. 나이 30 대 초반의 젊은 놈(?)의 행동거지로서는 아름다운 그림이 될 수가 없다.
이 날도 예수 일행이 이들 자매 집에 들른 모양이다.

언니인 <마르다>는 손님 접대 문제 등으로 방 밖에서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동생인 <마리아>는 예수의 발아래(옆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고 한다.

"예수님, 동생 <마리아>도 밖으로 나가 일 좀 하라고 해 주세요." 하고 <마르다>가 부탁하자,  예수 왈,
"마르다야, 마르다야, 많은 일과 근심 걱정은 네가 좋아서 택한 것이니 그것은 네 일이고, 마리아는 내 곁에서 좋은 일을 택하였으니 내버려둬라. 마리아에게서 이 좋은 일을 빼앗을 수 없느니라."


물론, 예수의 답변을 좋게 해석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손님을 불편하지 않도록 돕고, 음식을 준비하는 일보다도 예수의 말(복음?)을 듣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고 추켜세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마르다는 예수의 그 중요한 말을 듣지 않아도 될 덤 인생이던가?


집에 손님이 왔을 때, 손님 대접 준비로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은 그 일이 좋아서 택한 것이고, 응접실에서 대화의 꽃을 피우는 사람은 그 일이 좋아서 택하였다는 말인가?

특히, 예수는 일반 손님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생명의 말씀'을 나누어주는 자라고 한다.
이 생명의 말씀을 마리아는 듣는 일만 하고, 마르다는 이 말하는 자와 듣는 자들의 뒷바라지만 해야 하는가?

예수의 말(복음?)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불편하고 배가 고프더라도 마르다까지 포함된 모임(말잔치)을 가진 후, 모두 함께 다른 일을 하던지, 아니면 다른 일을 먼저 끝내고 모두가 함께 예수의 말을 듣던지 해야 옳다.

위에서 보여진 예수의 말(답변)은 오늘날 예수교의 아주 고약한 모습을 만들어 내는 밑거름이 되고 말았다. (긴 설명은 생략한다.)



몇 곳의 장의사에서 얻어낸 통계이지만, 우리 나라는 80 % 이상이 예수교 방식으로 장례를 치른다.

오래 전의 일이다.
필자가 어느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어느 예수교 가정의 90 세 된 할머니가 서울의 딸네 집에서 살다가 죽은 것이다.

그 외아들은 재미 교포였다.
물론 그 아들도 귀국하여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이었다.

초상집에는 몇 차례에 걸쳐서 목사 이하 교인들이 몰려와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가를 불렀다.
그 때마다 음식상이 대접되었다.
이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추운 부엌에서는 여자들이 손을 호호 불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상제로부터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는 깨끗한 옷으로 치장하고 나타나서 노래부르고 음식을 신나게 먹어댄 예수쟁이들에게만 돌아갈 뿐, 부엌떼기와 추운 밖에서 궂은 일로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은 끝내 상제의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장지는 포천이었다. 죽은 할머니의 고향이 포천이라 했다.
버스 2 대를 전세 내어 장지로 갔다. 날씨가 꽤 추웠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여 무덤 자리가 준비되어가고 있었다.
산 전체가 10 cm 이상의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고, 무덤 자리만 붉은 흙이 파여 있었다.
아직도 완전히 준비되지 않았는지 마을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간 조상꾼(대부분 예수쟁이)들은 놀러 가는 모습으로, 또, 있는 대로 멋을 내고 버스 안에 그대로 타고 있었다.

그 때 마침 음식점에 주문한 음식이 배달되어 눈 위에 적당히 차려 졌다.
조상꾼들은 앞을 다투어 우르르 내리더니, 순식간에 그 음식을 먼저 먹었다.
눈이 녹으면서 주위는 <진흙 뻘>처럼 되었다.

잠시 후, 마을 사람들에 의하여 관이 내려지고, 목사 이하 교인들이 빙 둘러 선 가운데 예배가 시작되었다.

예배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쉴 겸 음식을 먹으려고 했으나, 별로 남지 않은 음식은 이미 먹을 수 없을 만큼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먹기를 포기하고 멀찍이 물러나 모여 서서 투덜거렸다.


"우리, 여기서 그만 내려갈까? 저 치들이 뭘 어쩌나 가만히 내버려 둬 볼까? ........."


소위 예배라는 것이 끝났다.
다음 절차가 계속되어야 하는데 움직이는 사람이 없다.
무덤 주위도 눈이 녹아 장화를 신고도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찬송가 부르고 먹는 일이나 할 줄 알았지, 다음 일, 궂은 일에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할 방법도 몰랐다.
그러나, 화가 난 마을 사람들은 한참 동안 멀찍이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글이 길어져서 그 날의 상황을 다 쓸 수는 없다.

그 때만 해도 지금 같지 않아, 고향을 떠났던 사람이 죽어서 고향을 찾으면, 마을 사람들이 무덤 자리도 거저 내주고, 궂은 일도 내 일처럼 거들어 주었던 것이다.

이 때의 장례가 그런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할머니의 젊은 시절만 듣고서 알 뿐, 그 아들(상제)과 가족은 모르고 있었다.

상제는 장례 후, 교회에다 <감사 헌금>을 바쳤다고 한다.
필자는 그 상제가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도 남기지 않고 돌아와 미국으로 떠나 버린 사실도 알고 있다.
필자는 그 날의 상제(망자의 아들)도 잘 알지만, 마을 사람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지금도 그 상제는 그 때의 목사와 교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을지 몰라도, 마을 사람들이 자기에게 무슨 일을 해 주었는지는 모르고 있을 것이다.


장례 절차의 80 % 이상이 예수교 식으로 변질된 이 나라, 좀 늦었지만 이제라도 냉철한 마음으로 그 현상을 점검할 때라고 여겨진다. 내 것이라고는 한 가지도 남아 있지 않은 현상, 전통과 조상의 얼을 송두리째 능멸하고 있는 이 나라, 어디로 가려는지?
 글쓴이:제삼자
추천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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