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 씨의 별명은 '황구라'다. 한국 문단에 관한 회고담 몇 편을 읽어보면 그 구라의 장면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대학을 다니던 1990년대에는 그 구라를 확인해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올 해 초 한 문학상 수상식 뒤풀이 자리에 우연히 끼어들었다가 그 '구라'를 엿보게 되었다.
그때 들었던 인상적이었던 얘기 한 대목. 금연에 대한 얘기다. 그가 한 말을 비슷하게 옮기자면 대강 이렇다. '나는 글 쓸 때 담배를 몰아 피운다. 금연 안 한다. 독일에 있을 때 말이야, 작가 귄터 그라스가 금연에 대해 말하는데 재미있더라. 금연은 아메리칸 글로벌 시스템이라는 거야. 그게 이유가 있대. 미국이 1980년대에 이미 마약 판매고가 중국의 1년 GDP와 맞먹었다. 그런데 마약보다 훨씬 덜 해로운 담배를 끊으라고 지랄 염병을 한단 말이야. 개인의 건강을 사회와 제도가 걱정하는 것처럼 하면서. 반면 마약 반대 캠페인은 금연 캠페인처럼 맹렬하지 않거든. 왜 그러냐? 마약은 사회 주류에 안들어오고 뒷골목에서 이루어지거든. 주로 히스패닉이나 흑인들의 문제이니까. 그런데 담배는 사회 시스템으로 너무 깊숙이 들어왔어. 그게 왜 문제냐? 첫째 생산성을 해친다. 한 대 피우는 데 5분 걸리면 하루에 한 갑에서 두 갑을 피우면 그게 시간으로 따지면 얼마야. 하루 20개비를 피우면 일하는 시간 100분을 잘라먹는 거야. 자본가가 일하는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고 생각하는거지. 두번째는 조직 관리에 해가 된대. 사무실 지저분해지고, 또 담배를 여럿이 피우면서 뭐해? 회사 욕하지, 불평하지, 이롭지 않다는 거야.'
여기까지 말하고서 뜸을 들인다. '마지막으로 세번째인데, 이게 미묘하지만 중요한 얘기래. 사람은 아주 낮은 단계의 통제를 받아들이면 다른 큰 통제도 잘 받아들이게 된대. 담배를 끊자, 금연해. 담배를 피우더라도 꼭 이 장소에서만 피워. 이런 규제를 받으면 다른 것도 말을 잘 듣게 된다는 거야. 몸이 안 좋으면 담배는 맛이 없어진다. 몸이 안좋으면 스스로 담배를 안 피우게 된다. 그걸 왜 제도나 사회가 지랄이냐고. 그거 맞는 얘기 아니야. 간접 흡연이 안 좋다고? 그렇게 따지면 매연이 100배는 나쁘지.'
그런데 요즈음 YTN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보면서 불현듯 이 구라를 떠올렸다. 낮은 단계의 통제를 받아들이면 다른 큰 통제도 잘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 그에 비하면 대통령의 언론 특보를 지낸 이를 방송사 사장으로 세우려는 YTN의 노무 관리는 촌스럽고, 속이 보인다. 집권 이후 지금까지 이 정부의 가공할 만한 촌스러움이야 익히 보아왔기 때문에 이제는 으레 그러려니 하게 만든다.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면서 그동안 못 해먹은 것을 한 번에 되찾으려는 이 정부의 '해먹자니즘'이야 그냥 '염치없는 정부'라고 정리한 지 오래지만 코미디가 반복적으로 연출된다. 정부의 해먹자니즘과 먹고사니즘에 빠진 YTN 간부들의 결합은 환상의 조합이다. '인사위 출석 통지서'를 각 가정으로 발송한 것이 한 증거이다. 승진이나 인사 명령은 사내에 게시하고, 당사자에게 직접 알리는데 일종의 징계 예고서는 왜 집으로 보내나? 가족의 불안을 우군으로 삼으려는 노무 관리.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고,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 뇌구조가 지나치게 봉건적이다.
반면 YTN노조가 싸우는 방식은 세련미가 있다. 21세기형 투쟁이라는 표현이 붙을 정도로. 가장 빛나느 의사 표현은 '블랙 투쟁'이었다. 앵커와 기자들은 방송을 할 때 검은색 정장을 입거나 검은색 넥타이를 매는 블랙 투쟁으로 응수했다. 패션과 투쟁을 연결하는 아이디어가 신선하다. 방송이라는 일상에 작은 균열을 내는 투쟁 방식은 돌쇠 같은 노무 관리를 무색하게 만든다. 작은 단계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큰 단계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아마도 블랙 투쟁을 하려는 후배 앵커 대신 자신이 직접 화사한 양복을 입고서 마이크 앞에선 이재윤 앵커팀장은 작은 통제를 받아들이게 하면서 더 큰 통제를 수락하게 만드는 금연 운동의 은밀한 매커니즘을 본능적으로 체득한 이일 성싶다. 대응이 비상하다.
한국에서 노조의 싸움은 외롭다. 임금이나 근무 조건을 둘러싼 투쟁은 '밥그릇 싸움'이라고 평가절하한다. 이번처럼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대해서는 '밥그릇을 팽개치면서까지 싸운다'고 평가절하하기 일쑤다. 투쟁은 피로한 일이다. 하지만 그 피로함에 연대하는 것은 시민이 지켜야 할 의무 같은 것이다. 한국 언론은 유난히 '불편부당'을 강조한다. 공정성은 외줄타기처럼 삐끗하면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다. 한 순간에 잃어버리기 쉽고, 그래서 그것을 지키는 것이 소중하다. 그 어려움을 YTN노조가 대속한다고 여기는 듯하다. 불편부당을 강조하는 언론 노동자들이 YTN노조를 편들고 나섰다. 10월 20일 현재 YTN노조를 지지하는 시국선언에 동참한 언론 노동자는 5483명이다.
YTN노조의 피로함에 연대한다.
글_ 차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