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의 의사 중 한 사람이 다케바야시 타다시치는 그 뜻을 이룩한 후 모리저택에서 1703년 2월 4일 할복했다. 나이 서른 둘이었다. 그때, 타다시치의 할복을 도와 줄 입회인으로 모리저택의 가신 사카키바라 소자에몽이 뽑혔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소자에몽이 실수를 하는 바람에 칼이 타다시치의 어깻죽지로 깊이 파고들었다. 타다시치는 앞으로 엎어졌다가 몸을 조용히 들어올리고 말했다.
"서두르지 말라."
"잘 알겠습니다."
소자에몽은 칼을 고쳐 쥐고 이번에는 실수 없이 그의 목을 쳐서 떨어뜨렸다. 어떻게 보면 끔찍하고,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단지 그뿐이라고 간과할 수 없는 가르침을 이 이야기는 숨기고 있다. 뭔가 가슴에 사무치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느껴진다. 그러면 도대체 그게 무엇일까. 자신의 손으로 배를 갈라 촌각 후에 반드시 찾아올 죽음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여유 있고 차분한 모습으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삶과 죽음에 얽매이지 않는 경지인가. 그것도 있다. 정신이 이미 그렇듯 높은 경지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는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배를 과감하게 가르고 앞으로 푹 고꾸라졌던 몸을 조용히 들어올려 무사로서 할복을 행하면서 그에 맞는 예절을 진지하게 지키려 한 의연한 용맹이 돋보인다. 바로 그것이 깊은 감동을 준다. 우리가 깊은 감동을 받는 까닭은 그것이 단순한 겉치레나 체면을 위한 형식주의가 아니라, 정신이 지극히 심오한 경지에 올랐을 때 이룰 수 있는 훌륭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가신 소자에몽의 지체 없는 짧은 응답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