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
-나는 그대의 찬 손을 알고 있다
원구식
그대 만나면
조용히 호흡을 멈추고
손바닥에 소리를 쏟아놓는다
손바닥 위에는
몇개의 소리가 고이고
손바닥 밖으로 떨어진 소리는
짤랑 짤랑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래도 남는 소리를
그대는 꽉 쥐어버렸다
들개
원구식
백개의 무덤에 백개의 시체가 있다
안심하라, 들개들이여
너는 원시의 바람
그 바람의 아들이며
그 아들의 왕이다
싸늘한 달빛이
너의 발톱을 키울 때
거친 들판과 구름과 저 별들이
갈등에 휩싸인다
오, 내게 불타는 입을 다오
처절히 물어뜯고 싶다 이 밤!
내게 야생의 발톱을 다오
다시는 상처입지 않으리!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도둑처럼 내몰릴 적마다
내 가슴에서 솟구치는 들개!
야성의 들개!
城
원구식
1
강 건너에 성이 있습니다.
성안엔 당신과 성주가 있습니다.
강가엔 나룻배를 지키는 병정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총이나 칼을 가졌습니다.
강물은 푸르고 깊습니다.
나는 헤엄을 못 칩니다.
내가 기르는 새들은
성주의 날랜 독수리와 매를 당해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거기 당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 당신이 있습니다.
2
성안에서 당신이 울고 있습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없이 울고 있습니다.
성을 돌아나온 바람이
그 소식을 알려 줍니다.
하늘이 유난히 흐립니다.
당신이 울고 있으면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3
온밤을 새워 노래를 불러도
내 노래는 아직
시든 꽃을 피워올리지 못합니다.
내가 기른 새들은
새장에서 나올 줄 모릅니다.
성벽은 높고
문은 더욱 굳게 닫혀 있습니다.
지난 날 우리가 나눈 사랑의 맹세는
무시무시한 꿈에 시달립니다.
내 노래는
아직 呪文이 아닙니다.
4
오오, 입술을 깨물며 예감했던 밤
먹구름을 뚫고 번개가 떨어지는 여름밤
바람이 소나기를 몰고 달려오는 여름밤.
허공을 맴돌던 내 노래가
시든 꽃을 피워올리고
성안에 고히 잠든 당신을 흔들어 깨우는 그날 밤
혼돈 속에
침묵의 말씀이 빛나고
굳게 닫힌 성문이 입을 열어
사랑을 말하는 그날 밤
노래하라, 열방의 예언자들이여!
암흑의 밤이 지나고
밝은 태양이 우리를 맞으리.
오오, 입술을 깨물며 예감했던 밤
번개가 떨어지고 소나기가 달려오는 여름밤.
등대지기
원구식
-- 아버지가 바다에서 건져온 한 상자의 비린내와 어머니가 갯벌에서 구워낸 한 말의 소금을 바라보면 - 열 개의 보이지 않는 섬과 백 개의 들리지 않는 노래와 천 해리의 거리가 둥둥 떠오른다 --
- 나는 불빛으로 바다를 쑤시면서 오래 전에 바다밑에 가라앉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건져내고 -- 수평선 너머 돌아오지 않는 수백 척의 배를 발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