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번 이라면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태종 이방원을 도와 최측근에서 활동한 사람으로 알려저있다 .
서해안 고속 도로 쪽으로 가다가 첫 인터첸지를 목감 IC를 지나 월곳 쪽으로 가다가 보면 큰 저수지를 만난다 . 갑갑한 서울 도심을 나와 이곳에 나오면 가슴이 확 트인다 .
길옆에는 이곳에도 아파트를 짓는지 보상비를 많이 달라고 지주들이 요란 하게 써붙인 프랑카드를 볼수가있다 .
이물왕저수지를 끼고 남쪽으로 좌회전하면 안산 방면으로 가는 길이나타난다 .
조금 가면 바른쪽에 주차장이 보이고 이숙번 묘라는 묘비가 보인고 묘로 올라 가는 계단이 40여 계단 쯤 보인다 .
이곳에 올라가면 묘가 몇몇이 보이는데 첫묘가 이숙번이 묘다 .
그위는 이숙번이 대대로 벼슬한 조상묘가 보이는데 고려 시대 사람이다 .
이숙번의묘 앞에서니 뒤에는 높은 산이있고 앞에는 물왕저수지가 확 눈에 들어온다 .
좌청룡 우백호의 기상이 그대로 나와 있는듯이 지형이 묘를 감싸고 있다 .
이숙번은 고려 공민왕 22 년에 안산에서 태어나 조선 왕조 세종 28년에사망했다 .67세에 사망한 셈이다 .
이숙번 이라면 태종 이방원의 최 측근으로 1.2차 왕자의 난에서 승리로 이끌은 장본인이다
태조6년 이성계의 5째 아들 이방원은 자기의 사병과 정능의 능지기로 있던 이숙번과 진천에 주둔하고 있던 하륜에게 총 동원령을 내린다 .
이숙번과 방원은 우선 광화문 앞으로 나갔다 .
밤이어둑어둑하여 일제히 횃불을 밝히었다 .
황토현 쪽에서 군사들의 함성 소리와 말 발굽소리가 영추문까지 똑똑히 들리었다.
"내 뒤를 따르라"
방원은 군사들을 이끌고 문을 박차고 궁궐로 밀물 같이 쏟아저 들어가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한성 온 장안이 떠들썩 하고 횃불로 화광이 중천 했다 대궐을 지키던 군사 들이 방원의 군사들이 휘두른 칼에 여기저기 쓰러 지었다. 궁녀들의 여기저기서 아우성 치는 비명 소리가 천지를 뒤 흔들었다.
방원은 궁궐에서 소란 피우기 이전에 우선 핵심 인물인 정도전이 어디있는가가 궁금했다. 방원이 조준에게 정도전이 궁궐에 없음을 확인하고 그의 행방을 물었다.
조준에게 물어보니 정도전이 군사를 거병 한지를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
송현동의 남은의집에서 술한잔을 하고 있었다 .
방원은 먼저 이숙번에게 정도전얼 잡아 죽이라고 명령 부터 내렸다 .
이숙번의 군사가 송현동의 남은 집을 에워쌌다
"정도전을 잡아라"
이숙번의 고함이 터지자 군사들이 술을 먹고 있던 안방에 들여 닥쳤다 .졸지에 변을 당한 정도전은 들여닥친 군사들에게 체포 되고 말았다
.
남은 집뒤문으로 몰래 달아나가 미륵당 건물 속에 슴어 있다가 이숙번의칼에 맞아 죽었다 .
이숙번이 방원에게 정도전을 체포 하였다고 보고하였다 .방원이 정도전 처치 의사를 타진하기 위함이었다
방원은 이숙번이 자기에게 와서 정도전을 체포 했다는 말에 얺잔았다 . 알아서 죽여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끌고 온 것이 못 마땅하였던 것이다 .
"..............."
대꾸를 않고 있는 방원의 심중을 읽고 있던 이숙번은 부하 장수에게 눈짓을 보냈다 .
소리 안나게 죽이라는 뜻이었다 .
방원과 이숙번은 군사들을 이끌고 이번에는 광화문 앞에 다시 나타났다 .
한밤중에 반대 세력인 정도전과 남은을 죽인 방원의 눈에는 핏빛이 서렸다 .
방원은 광화문에서 문을 지키고 있는 금위장을 바라보면서
" 금위장은 듣거라 아바 마마를 뵙고자 하니 문을 열거라"
하고 말하였다
" 지금 취침중이십니다"
" 문을 열라는데 무슨 이유가 그리많으냐?"
"어명이 없이는 불가 합니다"
금위장은 문을 열 생각을 않고 있자 방원이 순간 이숙번에게 눈짓을 하였다 .
순간 이숙번의군사 네명이 금위장을 향하고 칼을 빼어겨누자 순식간에 금위장을 포박하여 꿇어 앉히었다 .
방원은 문을 강제로 열게하고 명령을 내렸다
" 궁내로 진입하라"
태조는 뒤늦게소란한 소리를 듣고 내시에게 물어 보니 방원이가 군사를 이끌고 궁내에 들어와 있다는 보고 였다
"방원이 이놈이"
칼을 빼들고
"내 이놈을 단 칼에 .."
하고 밖으로 뛰어 나간다 .
태조는 방원의 군사를 보자 닥치는 대로 목을 치었다 .
이숙번은 태조가 휘두른 칼에 부하들의 목이 추풍 낙엽처럼 나가 떨어지는것을 보니 기가 막혔다 .
태조는 내금위 군사를 긴급 소집하고 청룡도를가져 오라하여 종횡 무진 휘두르니 이숙번과 방원의 군대는 궁성 밖 구리개 고개 까지밀리었다 ,
싸움은 소강 상태로 접어 들었다 .
방원은 멀리서 부왕 이성계가 백마를 타고 종횡 무진 청룡도를 휘두르며 자기사병들의 목이 파리 목슴 같이 날아 가는것을 보고 소름까지 끼치었다 .
역시 아버지 이성계는 백전 노장이었다 .
방원은 이숙번에물었다
" 숙번이 ....아버님이 노하신 모양이야 어쩌지?"
방원은 이렇게 까지 노할줄 몰랐다 .
그가 예측한것 보다 더 강력하게 나오는데 적지 않게 놀란 것이다 .
" 나으리 왜 마음이 그렇게 흔들리십니까? 밀리면 안됩니다 .우리군사가 상감 위세에 눌려 잠간 후퇴했을 분입니다 어서 반격 해야 합니다.상감만 해치지 않으면 됩니다 "
방원의 반격 명령이 떨어지자 이번에는 숫적으로 우세한 이숙번의군사들에게 밀려 내금위 군사들이 밀리기 시작하였다 .
태조 이성계는 내금위 군사들이 밀리자 궁성으로 들어가 문을 굳게 닫도록했다
"여보게숙번이 아무래도 부왕이 저렇게 버티고 계신데 궁성 까지무리하게 진입하기는 그러네..."
" 나으리 상감만 해치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까?"
이숙번은 이대로 돌아 갔다가는 태조로 부터 반역죄로 정죄 될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
방원은 이슥번과 달리 이 싸움이 부왕을 닥달 해서는 실익이 없다고 단정하였다.
성공하더라도 대의 명분을 쌓는것이 더 중요하였기 때문이었다 .
아니 그보다도 방원이 차마 부왕에게 까지 칼을 들여 댈수 없기때문이었다
.(싸움을 멈추자)
방원은 군사를 물리기로 결심하였다 .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성계는 방원이돌아간다음 혼자 속앓이응 하고 있었다 .
(이놈 방원이 네가 아무리 그런다해도 내눈에 흙이 들어 가기전에는 너를 세자로 책봉 할줄 아느냐?)
그는 애써 방원을 무시했다 .
결국 태종은 끝내 임금 자리를 태종에게 물리지 않고 방과에게물려 주었다 .
개국 한지 7년만에 상감 자리를 방과에게 물려 주었던 것이다 .
그러나 정종 인 방과는 왕자리를 스스로 태종에게 넘기고 말았으니 상왕으로 물러나 앉았다 .
이렇게 결심한것은 옹후인 정안왕후가 방원의 흉폭한 성격을 간파하고 정종에게간곡한 퇴위 권유를 했기 때문이었다 .
정종의 생각으로도 언제 반란을 꾀 할지 모르는 방원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
태종의 시대가 도래 한것이다
그러면 태종을 임금자리에 까지 앉힌 이숙번은 어떤 람인가?
그의본은 전주 이씨가 아니고 안성 이씨이다. 그의 아버지 이경은 태조 2 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숙번은 과거에 급제하여 안산군 지사로 있을 때 부터 방원을 찾아 다니며 충성을 다하고 있었다 .
그는 왕자의 난에 직접 뛰어 들어 공신 2등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안성군 이라는 벼슬 까지 하였으며그는 박포가 반란을 일으켰을때와 안변 부사 조사의가 반란을 이르켰을 때도 출정하여 진압하는 공적을 세웠다
그공으로 그는의 정부 참찬사 , 중군총제, 나중에는 병조판서 까지 되었다
나중에는 너무나 출세 가도가 빠른 탓이었는지 주위의 모함을 받아 탄핵을 받아 경상도 함양에 유배 까지갔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용비어천가를 지으면서 조선 개국 초의 사실을 잘아는 그를 서울로 불러들였다 .
그러나 남이 잘되면 배 아파하는 이나라 정치꾼들의 속성 때문인지 또 모함이 들어가 유배지로 돌아가서 유배지에서 죽었다
이숙번이 묻힌 묘는 경기도 시흥시 산현동이다
시흥에서 널리 알려진 물왕 저수지 뒷산에 그의묘가 있는지는 물왕저수지 주위에 자주가는 사람도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 .
마침 물왕저수지에놀러갔다가 그의 묘를 발견하였다
묘지 앞은 앞이 탁트이고 뒷산이 험악하여 무장의 기상이 엿보이는 듯하다 .
이곳을 구경하려면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목감IC로 빠저서 월곶방향으로 가다가 물왕 저수지에서 안산 쪽으로 조금 가면 우측에 있다
물왕저수지에는 먹거리도 많고 낙시질 하는 사람도 많다 . 한번 권하고싶다
물왕저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