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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나무

김난연 |2008.11.30 18:37
조회 33 |추천 0


어릴 적에 살았던 집들은 나무가 가까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살던 집에는 주인 아주머니께서 잘 가꾸시던 화단과 나무들,그리고 소라껍데기 안에서 흙을 들어내고 머리를 내미는 예쁜 꽃들이 있었고 중학교 때 살던 집에는 언니랑 함께 썼던 방 창문을 열면 낮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옆 집의 대추나무가 있어서 대추나무 주인 몰래 비가 오고 나면 영근 대추를 몇 개씩 서리해서 씹어먹곤 했다. 또 고등학교 때 이사간 집에는 전 주인이 마당에 심어둔 라일락나무와 함께 대추나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 방 창문을 열면 목련나무가 있었다. 나무들의 느낌은 모두 다르지만 대추나무가 특별히 의미가 더 있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공간의 배경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낮잠은 싫어하되 오후에 방에서 농땡이 부리면서 해지는 것을 누워서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방에 검은 음영이 깔리기 시작할 때 길게 그늘지는 대추나무 그림자를 유독히 좋아해서 이걸 보려고 이 시간에는 자전거 타러도 나가지 않았었다. 밖에서 자연을 음미하는 대신에 방에서 온갖 공상에 빠져 지냈었다. 이사가는 것을 싫어할 이유가 없었는데 다만 이 대추나무와 이별해야 한다는 것이 사춘기의 첫사랑을 마음속에만 간직하는 것같은 기분처럼 아쉬웠다.

 

   이 사진은 새로 이사 간 집 마당에 있었던 대추나무이다. 비록 방 창문을 열면 서리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지는 않았지만 베란다 창을 열고 보면 그 넓은 창에 가득 찰 만큼 대추나무는 컸다. 크고 작음을 떠나서 그냥 거기에 있어서 좋았다. 비가 심하게 내리치거나 바람이 심한 날에는 대추나무가 떨면서 대추가 베란다 창이나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들이 들렸다. 그런 소리조차도 좋았다. 대추나무 너머 있던 옆 집이 허물어지고 빌라로 만들어졌을 때 이 대추나무를 베었는지 어땠는지가 기억나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이 대추나무의 배경은 언제나 빨강색 옆집 주택의 담벼락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내 기억속에서는 옆 집 허물기 전 의 대추나무로만 각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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