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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스 해체와 마지막 콘서트

황종식 |2008.12.05 01:07
조회 31 |추천 1

 

듀스 해체,그것은 솔직히 말해 우리가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서로 사이가 나빴던 것도 아니고 가수 활동이 싫어져서도 아니었다. 오직하나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수많은 제약들에서 벗어나 성재와 내가 자유로워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음악을 하고 싶은데 기획사측에서 음반 판매와 직결 시켜 새로운 시도보다는 안정적으로 판이 팔릴수 있는,소위 &#-9;대중적인 음악&#-9;을 요구하는것이나 소위 일류 댄스가수이면서도 변변한 연습실 하나 없는 것 등이 우리에게 제약이었다.

&#-9;니네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머리가 컸냐&#-9;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9;머리가 컸다면 큰만큼 대우를 해줘야 하는것 또한 이치에 맞는것&#-9;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연예인들의 상황을 보고 옛날 생각을 못하고 그런다고들 편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성공을 위해 그들이 쏟는 노력과 열정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태어나면서부터 스타인 사람은 없다. 스타는 만들어지는 것이고 스타가 되어감에 따라 그에 맞게 행동을 하고 대접 받는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1집음반을 냈을때 소속 기획사로 부터 내가 받는 돈은 불과 800만원, 그때 한국음악 저작권협회에서 받은 저작권료가 내가 700만원, 성재가 200만원 이었다. 1집은 1집이니 여러 가지 비용이 많이 들어 그렇다 치더라도 2집을 발표했을때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더이상 서커스단의 곰돌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서커스단의 곰돌이가 되지 않으려면 서커스단을 탈출하는 것 이외의 방법은 없었다. 성재는 모델과 가수로, 나는 미국 유학을 통해 더 공부를 한뒤 음악프로듀서로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랬기 때문에 해체를 결정하고도 팬들에게 미안한 감정만 빼면 괴롭기는 커녕 이제부터 자유롭고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으로 가득찰 수 있었다.

해체를 하면서 우리는 마지막 콘서트를 갖기로 했다. 그것이 듀스를 사랑해 주었던 팬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 생각했다.

마지막 콘서트, 95년 7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올림필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콘서트에는 3일 내내 엄청난 팬들이 몰려왔다.연일 체육관이 좁게 느껴질 정도 밀려든 팬들을 보면서 우리는 감격했다.1집,2집,3집을망라해서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들을 열심히 불렀다. 듀스의 이름을 건 마지막 무대라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 했다.

콘서트가 끝나고 난 후 우리는 며칠간 주변을 정리하고 바로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팬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뭔가 슬프고 섭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찾은 해방감에 취해 성재와 나는 가슴이 설레였다.

미국에 도착한 우리는 같이 살 집도 마련하고 가구도 함께 쇼핑했다.

다시 예전의 친구사이로 돌아왔다. 옛날 얘기도 하고 서로의 사사로운 얘기들도 한껏 나눴다. 한 두달을 그렇게 여유롭게 생활 할때쯤 성재에게 앨범 제의가 들어왔다. 좀더 쉬고 싶었지만 성재가 곧 솔로 앨범을 내기 원했다. 성재는내게 곡을 써달라고 했다. 그때가 9월이었는데 음반사측에서는 11월경에는 귀국해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남은 기간은 불과 두세달, 사실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듀스 4집을 위해 준비해둔 곡도 몇곡 있고 해서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다시 밤을 새며 강행군을 하기 시작 했다. 듀스 시절로 되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때와는 달랐다. 마음속에 응어리 처럼 맺혔던 그 어떤 것이 없어진 상태에서 내가,그리고 성재가 생각하고 결정하면 그대로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작읍을 하면서도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나는 성재를 위해 좀더 팝적이고 국내가요 같은 발라드색채를 강조해 성재 분위기에 맞는 곡을 열심히 썼다.

마침내 성재의 첫앨범 작업이 모두 끝났다.

추천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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