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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노케 히메 -숨겨진 이야기

견병재 |2008.12.07 23:53
조회 3,543 |추천 4

 

 

 

 

 

몇년 전, 같이 살던 후배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형은 미야자키 감독의 대표작이 뭐라고 생각해요?"

 

영화감독을 꿈꾸던 그 후배녀석은 그의 대표작은 TV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이 

아니냐면서, 당시 방에서 지브리DVD만 수없이 돌려보는 덕후였던 내 의견을 물었다. 

 

내 생각에도 미래소년 코난은 분명, 미야자키감독 특유의 메세지인

공통체의 강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유토피아적 사회, 페미니즘, 국적을 명확히 알수 없는 세계관, 노동의 중요성

소녀와 소년의 애정구도, 반전주의 등이 처음으로 버무려진 작품이고, 그의 세계관이 우리에게 가장 먼저 소개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대표작을 무슨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소 의견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미래소년 코난은 그의 세계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일 뿐이고 깎이고 다듬어져 단단하게 축적된

'필생의 역작'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게 내 생각이다.

 

 여전히 '미야자키'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코난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구상기간 16년, 제작기간 3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하며, 개봉 당시 미야자키 감독이

'내가 하고 싶던 이야기를 모두 토해내었다' 라고 자평 할 정도로 자신의 사상과 역량을 모두 담은 작품.

 작화컷 수 14만장, 제작비 20억엔, 관객동원수 1400만명(97년 일본극장 흥행기록 경신) 등등

당시 애니메이션, 극장가의 모든 수치적 기록을 갈아치운 작품.

 

위 글은 모두, 모노노케 히메를 설명하는 글이다. 

 

나는 모노노케 히메야말로 그의 대표작이라 부를만 하다고 생각한다.

미야자키의 모든 사상을 담았다는 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 동안 미야자키가 보여주었던 '가족과 함께 보는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매우 폭력적인

장면이 묘사되며, 여러 작품에서 보이던 유럽풍 배경에서 벗어나 일본색이 매우 짙고 시대설정도 일본 중세로

 설정하는 등, 그 동안 미야자키  감독의 일관된 창작기준에서 크게 틀어져 있다.

그런 모노노케 히메가 어떻게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노노케히메를 설명하기 위해선 바람의 계속 나우시카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을 수 없는다.

83년.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되는 작품.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가 발표된다.

그 전까지 그가 감독을 맡은 작품이 연이어 흥행에 실패하는 등,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미야자키지만 (심지어 감독으로서의 미야자키는

2류라는 평가까지 들었다) 이 작품으로 인해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이 양반도 [나우시카] 이전에는 '듣보잡'이었다

 

 

나우시카의 흥행성공으로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하여, 이 후엔 우리가 알고 있는 주옥같은 작품들이

줄줄이 탄생한다.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는 거장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었고

미야자키라는 인물과 스튜디오 지브리를 이야기할 때엔 빠질 수 없는 작품이라 할수 있다.

하지만 미야자키 자신은 뜻밖에도 이 작품을 '실패작'이라고 말한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탄생을 알린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는 실패작?

 

 

 

미야자키는 나우시카를 회상하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밀도있게 표현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하며 나우시카는 자신에게 있어서 실패작이라고 평가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가

 당시 연재 도중이었던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주1). 방대한 원작을, 그것도 스토리가 아직 진행중인 원작을

 극장판으로 만든다는 것은 처음부터 미완성일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미야자키는 그 동안 계속 마음에 걸렸던 '미완성' 나우시카를 베이스로 계속 작품구상을 해나간다.

 그렇게 15년간을 고심한 끝에 나온 작품이 바로 모노노케 히메이다.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와 모노노케 히메가 설정상 닮은 점이 많은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주2)

 

 

(*주1: 원작은 잡지[애니마쥬]에 82년 2월부터 94년 3월까지 12년간 연재된 대작이다.

나우시카 극장판이 제작된 것이 83년으로, 극장판 이후로도 10년동안 스토리가 진행된 셈이니

원작에 비하면 극장판 나우시카는 도입부에 불과하다 할수 있다. 단행본 전 7권 중, 극장판 내용은 2권까지의

내용에 해당한다.)

 

(*주2: 대립하던 인간과 자연계의 오무, 양쪽 다 소통이 가능한 유일한 존재인 주인공 나우시카와,

역시 대립하던 인간과 자연신들과의 중간에 서서 공존을 외치던 주인공 아시타카의 공통점.

인간을 대표하는 캐릭터이며, 한쪽 팔이 기계로 된 쿠샤나와,

역시 인간을 대표하며, 후반에 한쪽 팔을 잃는 에보시의 공통점.

나우시카의 거대한 거신병과

밤에는 거대한 다이타라봇치로 변하는 모노노케히메의 사슴신의 공통된 설정 등은

이 두 작품의 연관성을 설명해준다.)

 

내가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의 작품엔 하나같이 치밀한 설정이 있다는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등장인물의 의상이나 그냥 아무렇게 내뱉은 것 같은 대사조차도 숨겨져 있는 설정이 존재해서

항상 보는 사람의 탄성을 자아낸다. 특히 모노노케 히메에서의 그 치밀한 설정은 절정을 이루게 되고, 이는

이 작품을 그의 대표작으로 꼽게 만드는데 큰 일조를 한다.

지금부터 알고보면 모노노케히메를 2배 재밌게 볼 수 있는 숨어있는 설정들을 살펴보자.

 

 

 

 1. 아시타카의 부족, 에미시[蝦夷]

지코보와 아시타카가 식사하는 장면에서 지코보는 아시타카를 보며

이런 말을 한다.

 

"자네를 보고있자면, 고서에 전해오는 옛부족 이야기가 생각나는군.

동쪽 끝에는 붉은 사슴을 타고 돌화살을 쓰는 용맹한 에미시 일족이 있다고 말이야"

 

모노노케 히메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시타카의 부족은 상상 속의 부족이 아니고 실제로 존재했던 민족이다. 

에미시 일족에 대한 역사적 서술은  일본의 8세기에 쓰여진 역사서. 일본서기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케이코천황(기원전13~130)이 통치하던 시절, 동쪽을 순방하고  돌아온 신하가 말하길,

"동쪽에는 히타카미노쿠니[日高見國]가 있는데, 이 나라에서는 남녀 모두 상투를 틀어올리고

몸에 문신을 새기고 매우 용감하며 자신들을 에미시라 칭한다"

라는 기록이 에미시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그 후, 기원후 3세기에 이르러 일본의 남쪽 큐슈지방에선 한반도와 대륙에서 도래된 선진문명과 융합해

야마토국이 세워지고, 이 야마토국과 대립한 일본 토착민족 에미시가 전쟁을 벌이지만 결국 패하여

일본의 북쪽 산간지방인 토호쿠 지방까지 밀려, 숨어살 수 밖에 없는 민족으로 전락한다(주3).

 

(*주3: 열세 속에서 야마토정권과 오래토록 전쟁을 벌이던 에미시족 중에는 야마토에 귀화, 동화되는 부족도

많았다. 야마토정권은 귀화한 에미시족을 이용해, 부족에 다시 돌려보내 스파이활동을 시키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한번 부족을 나간 사람은 다시 돌아올수 없다는 규칙이 생겼다.     

극중, 마을을 떠나기 앞서 아시타카가 상투를 자른 것도, 외부에 한번 나가면 

두번 다시 부족으로 돌아올 수 없는 외인이기 되기 때문이다. 또 제철소의 우두머리인 에보시와의

첫 대면에서 부족의 위치를 얼버무린 것도 쫓기는 부족으로서의 비밀유지를 위해서다.)

 

 모노노케 히메 속 에미시족은 산속에 숨어 사는 신비의 부족으로 표현된다.

실제로 이 시대의 에미시들은 전쟁에 패한 후, 산중에 숨어살았다.

 

 

사실, 이 에미시 일족의 정확한 정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일본서기 자체를 정통역사서로 인정하지 않는 등의 논란과 더불어

일본 역사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열도의 토착민족인 아이누족의 한 갈래로 보는 설도 있으며, 다른 곳에서 이주해 온

민족이라는 설도 있지만, 에미시에 대해서 남아있는 자료가 워낙 적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많은 부분이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일본 8세기 초의 에미시. 히타카미노쿠니[日高見國]의 영역(점선 안쪽)

참고자료(古代蝦夷と天皇学/石渡信一郎/三一書房)

 

한편, 미야자키 감독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에미시의 복장과 생활양식을 고증하기 위해

중국의 서쪽 끝에 있는 '부탄'으로 간다. 부탄은 고산지대에 자리잡고 있어, 산속에 숨어 살던

에미시 일족과 생활양식이 비슷했을 거라 추측했기 때문이다. 미야자키는 결국 고산지대의 작은 왕국 부탄에서

주민들의 복장과 생활양식을 참고하고, 그것에 고대 일본문화인 죠몬문화의 이미지를  융합시켜, 

신비의 부족, 에미시를 스크린 안에 부활시켰다. 

 

뒤에 보이는 토기는 화려한 무늬가 특징인

죠몬식 토기와 매우 흡사하다.

 

 

죠몬시대의 토기

 

미야자키는 에미시의 모습을 재현하는데 있어서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모노노케 히메의 장면 구석구석마다

등장하는 테일한 설정은 에미시를 연구하는 학자들조차 '매우 사실적이며 대담한 고증' 라고 놀라워하며 높게 평가했다.   

이러한 미야자키 감독의 완성도를 위한 고집은 그를 '장인'이라고 부르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아시타카의 혼약자였던 '가야'가 부적 삼으라며 건네주던 흑요석 단검.

흑요석은 고대죠몬인이 귀하게 여기던 보석이다.

미야자키는 에미시문화가 죠몬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리라고 믿었다.

 

 

 2, 모노노케 히메 속의 샤머니즘

얼핏 생각하기엔 미야자키 감독과 샤머니즘은 어울리지 않는 소재다. 그의 작품 속의 유럽풍 판타지는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샤머니즘은 뭔가 어색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지.

그의 작품 곳곳에는 일본의 전통적인 종교관이 뭍어난다. 예를 들어 이웃집 토토로에 등장하는

큰 나무에 사는 토토로와 빈집에 산다는 검댕이숯 정령 스스와타리(맛쿠로쿠로스케)는 모든 사물과 자연에는 신(또는 정령)이

 존재한다는 샤머니즘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 일본전통의 종교관의 대표적인 예이며, 2002년 작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는 아예 그 수많은 신들이 모둠세트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 장면의 나뭇가지는 어떤 의미였을까? 

 

모노노케 히메에서도 일본 고유의 샤머니즘이 리얼하게 표현되어 있어, 일본의 종교적 풍습을 모른다면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 몇몇 있다.

극중, 여주인공 산은 철포에 맞아 빈사상태의 아시타카를 사슴신이 사는 곳에 데리고 가는데

이때 산이 아시타카의 머리 위에 꽂아놓는 나뭇가지를 기억하는가? 이 나뭇가지는 대체 무슨 의미일까? 

일본 신사에서 신에게 제사를 올릴 때나, 가정의 불단(일반적으로 일본의 가정에선 가족이 죽으면, 집안에

불단을 꾸며 놓고 영혼을 기린다)에 비쭈기나무(일본어로 사카키榊)을 세워놓는데, 이는 신에게 망자를 보낸다는 뜻이다.

산이 꽂아놓은 나무가 바로, 사슴신에게 아시타카의 영혼을 보내기 위한 '사카키'인 것이다.

사슴신은 생명을 부여하기도, 거두기도 하는 신이지만, 여주인공 산은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을 사슴신이

도와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아시타카가 타고 다니던 사슴인 '얏쿠르'의 고삐를 풀어주며,

(너의 주인은 아마 죽을테니) 떠나서 자유롭게 살아가라고 말한 것이다.

 

요게 바로 사카키나무

 

 

 

 

 3. 왜 사슴신의 머리에는 불노불사의 힘이 있을까?

능글맞은 스님. '지코보'의 정체는 천황의 직속 비밀부대인 샤쇼렌의 우두머리였다. 사슴신의 머리를 구해오라는

불노불사의 욕심에 눈이 먼 천황의 특명을 받은  지코보는 사슴신의 머리를 구하기 위해 첩보활동을 벌이고

 시코쿠에서 온 멧돼지신 옷코토누시와  타타라바의 에보시를 이용하는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사슴신의 머리에 불노불사의 힘이 있다는 설정은 그냥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생명을 부여하기도 거두어가기도 하는 원시림의 깡패. 사슴신

 

일본에서 '사슴'은 특별한 동물이다.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사슴은 그 아름다운 가죽과 맛있는 고기 때문에 

대중적인 사냥감이었고 일본어로 사냥을 뜻하는 [狩]라는 글자는 원래, '사슴사냥'을 뜻하였다.

지금도 동북지방에서는 사슴머리를 집에 장식하는 풍습이 남아있고, 일본 후쿠오카 현의 '시카섬'에 있는 신사,

시카우미진쟈志賀海神社에는 사슴뿔 1만개가 봉헌되어 있는 등, 옛날부터 사슴을 신비한 힘이 있는

신성한 동물로 여기기도 했다. 

(참고로 시카섬志賀島의 '시카志賀'는 사슴을 뜻하는 한자 시카鹿와 발음이 같으며,

이 섬의 옛이름이 鹿島이라고 전해오기도 한다.)

 

또 다른 이유로는 중국의 사마천의 사기史記의 한 구절인 [진나라가 사슴을 놓쳐 망하니, 모든 인간들은

사슴을 쫓아 다니겠구나]라는 기록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사슴은 절대권력을 상징한다.

미야자키는 절대권력. 즉 불노불사의 힘을 쫓는 천황의 어리석음과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을 사슴신 머리를

통해서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극중 다른 동물신들이 덩치만 커지고 그 모습은 짐승 본래의 모습과 가깝게 표현되어

있는 것에 반해, 사슴신만이 유일하게 사람의 얼굴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좀 무섭게 생겼다

 

이 모습은 모로호시 다이치로의 걸작 만화

[공자암흑전]에서 그 피가 불노불사의 마력이 있는 마신鹿神으로 등장하는 개명수開明獣의 모습과 매우 흡사한데,

 사슴신 머리의 불노불사 효능은 이 개명수에서 모티브를 따왔을 가능성도 있다. 바로 미야자키가 그 만화의

열렬한 팬이기 때문이다.

 

 

 

 

 

 

*

*

*

짧은 글을 마치며

 

지브리 영화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흔적은 모노노케 히메가 미야자키의 대표작이라고

꼽을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끝으로

리뷰를 쓰며 참고한 자료가 워낙 방대하고

일본의 서점에서 뒤적거린 내용과

전부터 알고 있던 내용이 뒤죽박죽이 되어있기 때문에

정확한 참고문헌 명을 쓰지 못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합니다.

 

다음에 모노노케 히메에 대해 다시 추가할 사항이 있다면

(모노노케 히메의 기본 바탕이 되는 사상과 케릭터의 뒷얘기, 성우들 이야기, 엔딩이야기 등등)

그때 참고문헌도 함께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추천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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