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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가 아니라 일본해이다.

유형원 |2008.12.15 14:23
조회 207 |추천 8


◆ 사진설명          조선, 혹은 대한제국에서 제작한 당시 세계지도의 일부. 일본 수도명을 도쿄(東京)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최소한 1868년 이후에 제작된 지도임을 알 수 있다.

 

 

맞아죽을 각오로 밝히자면, 나는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의 바다 명칭은 당연히 일본해(Sea of Japan)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으로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사실 어리석은 짓이다. 아직 한국사회에는 민족주의적 감수성에 위반되는 주장을 수용할 만한 똘레랑스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 주장은 논리적 평가보다는 감정적 적대에 직면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지구는 돌듯이', 일본해는 어디까지나 일본해다. 적어도 '해양명칭 표준화'라는 작업에 있어서의 필증성의 최대치만큼은 그러하다. 그것은 불변이다.

 

 

대양으로부터 분리된 해역의 명칭은 분리 기준이 되는 열도호, 또는 반도명을 따른다. 이것이 해역명명의 기본원칙이다. 일본열도가 없었다면 우리가 일본해, 혹은 동해로 부르는 이 바다는 단지 태평양의 서북부였을 것이다. 이것이 해당 해역을 동해가 아닌 일본해로 불러야 하는 이유의 전부, 혹은 대부분이다. 그 자명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반론이 존재하는데, 그것들은 대개의 경우 위의 원칙을 번복할만큼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첫 번째 반론의 지지자들은 위 원칙에 대한 반례를 제시한다. 대표적으로 '북해'가 거론될 수 있는데, 그것은 북해가 브리튼섬에 의해 대서양과 구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지역 일대의 전지구적 방위규정에 따라 '북해'로 불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장 설득력 있는 반론의 하나로, 실제로 북해 또한 영국, 프랑스, 독일, 덴마크 간의 해역명칭 문제가 17세기 부터 제기되다가 1919년에 명칭을 '북해'로 단일화한 점 역시 '동해'의 경우와 닮아있다. '동해' 또한 한국, 조선, 일본, 러시아의 네 인접국가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동해'와 북해는 사정이 다르다. 첫째로 당시 북해의 경우 영국, 프랑스, 독일, 덴마크의 4개국이 모두 해역명칭 논란의 당사자였지만 '동해'의 경우에는 오직 한국, 조선, 일본만 관련된다. 러시아는 기타 당사국들간의 합의에 따르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과 조선은 이 문제에 있어서 완전히 독립적인 두 행위자라고 볼 수 없다. 한국과 조선의 입장은 일치하고 있으며,같은 내적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즉 '동해'를 지지하는 국가가 두개라고 해서 근거의 보편성까지 두배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점을 더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실례로, 북한은 2004년 전까지는 동해가 아닌 '조선동해'를 주장해왔다. 즉 북한은 사실상 '동해'가 조선의 동쪽에 있기 때문에 동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전혀 설득력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따라서 일본해의 해역명명 문제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 주체 사이의 문제로 단순화된다. 그리고 양자 중 한쪽의 주장이 절대적 우위를 지니고 있다(한반도, 일본을 제외한 지역에서 일본해 표기비율은 97%). 따라서 '일본해' 문제에는 북해의 경우에서와 같은 타협이 불필요하다. 단지 한국만 승복하면 된다.

 

 

두번째 반론은 해당 해역명이 일본해로 정착된데에는 당시의 역사적 정황이 반영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즉 당시 조선은 국력이 쇠진하여 국제적 지리명칭 표준화의 논의에 참여할 사실상의 능력이 없었던 반면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으로서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었기에 해역명칭 확정문제는 애당초 공평하지 않은 채로 시작했다는 것이 위 주장의 요지이다. 그 근거로 19 초반까지 발행되었던 국제 지리지의 대부분이 해당해역을 일본해가 아닌 한국해, 혹은 조선해(Sea of Korea)로 표기하고 있었던 점이 제기된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의 근대화가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기점으로 본격화 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이전의 일본은 '제국주의 일본'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미 19세기 중반이 되면 대부분의 지도에서 해당해역을 한국해가 아닌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해'라는 명칭이 일본 제국주의의 공작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에 대하여 몇몇 토론자들은, 반드시 '제국주의 일본'이 아니라고 해도 여전히 국제사회의 중요한 행위자로서의 일본이 해역명칭 획정방식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근거가 있다. 일본은, 적어도 근대화 이전에는 바다에 이름을 붙여 부르는 습관이 없었다. 동해, 서해 등 좌표계의 영점으로부터의 방위규정에 따라 바다를 부르는 관습적 명칭은 있었을지 몰라도, 공식적, 행정적 차원에서 해양명을 획정하는 것은 근대 지리학의 산물이지 일본의 전통이 아니다. 따라서 '일본해'는 철저히 서구적 시선의 산물이며, 그것이 해역명칭 문제에서 강대국 일본이 승리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위의 논의를 통해 대부분의 유효한 반론이 재반박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몇몇 반론들이 남아있다. 그것들은 설득력이 지극히 낮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일반적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거나, 최소한 큰 지지를 받고 있다.

 

 

대표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즉 해당해역을 '일본해'라고 부르는 것은 바다의 소유권을 일본에 귀속시키려는 의도, 혹은 힘의 반영이며, 따라서 바다 명칭을 일본해로 인정하는 것은 한국의 영해권 상실과 더불어 독도문제에서 불리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황논리에 의해서도 '일본해' 명칭이 인정되어서는 안되며, 인정될 수도 없다는 것이 위 주장의 핵심이다.

 

 

여기에 대해서 반박해야 하는 시점에서 이미 논의의 주제가 너덜너덜해지다시피 했지만, 어쨌든 하던 일은 마저 끝내기로 하자. 지리적 명칭의 표준화 문제와 영해권 문제는 다르다. 그것은 문제의 '지평 자체가 다르다는 의미'에서 다르다. 예를 들어 한 물체의 색깔이 어떠하냐와 그 물체의 모양이 어떠하냐의 문제가 서로에게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듯이, 바다 명칭이 일본해로 정해지건 한국해로 정해지건, 혹은 혼란기(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의 방식대로 타타르해, 혹은 중국해로 정해지건 간에 그와는 상관없이 영해권 설정은 200해리 수역을 따를 것인가, 300해리 수역을 따를 것인가 하는 식으로 결정된다. 즉 양자 사이에는 그 어떤 상관성도 없다. 바다 이름이 일본해로 확정되고 한국 정부가 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동해안으로부터의 200해리 수역은 우리 영해이고, 반대로 설령 바다 이름이 동해가 아니라 '한국해'로 정해진다 하더라도 현재 일본에 속한 영해는 한 뼘도 가져올 수 없다.

 

 

이제 이 문제에 관한 양편의 입장에 관해 거의 정리가 된 것 같다. 나는 위와 같은 나의 주장이 그 어떤 민족주의적 열정에 의해서도 오해받지 않기를 바라며, 이 주장이 곧 내가 한국을 사랑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 또한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또한 덧붙이자면 '바다 이름이 동해냐 일본해냐' 문제는 애국가 가사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것이다. 산둥반도의 어촌주민들은 '황해'를 동해라고 부르며, 아조프해 연안이나 크림반도 일대에 사는 사람들도 흑해를 남해라고 곧잘 부른다. 논어나 맹자의 기술을 보면 산둥반도 윗쪽 보하이만을 북해라고 부르는 경우 또한 자주 발견되곤 한다. 자신이 속한 지역으로부터의 방위규정에 따라 근해의 이름을 붙이는 버릇은 세계 어디에나 있으며, 따라서 한국인들이 한국에서 일본해를 '동해'라고 부르는 것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 다만 그것과 공식적인 지리명칭 표준화는 서로 다른 문제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조금만 더 여유롭고 이성적인 태도를 가지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여유와 이성이 어느 시점엔가는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다 해도, 나로서는 과연 그것이 언제가 될 것인가의 문제가 그저 묘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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