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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과 갈등 해소 방편…77년부터 시작 ‘교화代母’…잠언집 ‘인생 9단’ 펴내
1940년생. 두 살 연하의 똑똑한 남편과 살다가, 시댁과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방편으로 77년 서울구치소 교화위원 일을 시작했다. 헌신적인 교화 활동을 인정받아 법무부 교정대상(박애상), 국무총리 인권옹호상, 법무부 장관상 등을 받았다. 신기하게도 거물급(?) 사형수들을 만나 금당사건의 박철웅, 친부모를 살해해 충격을 준 박한상, 오휘웅 등을 담당했다. 잠시 고향인 영암군청 사회복지과 상담실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현재는 양순자심리상담소를 운영하며 하루에 한 명씩 절절한 사연을 호소하는 이들을 만나 함께 울고 웃으며, 쉽지만 철학이 담긴 맞품형 상담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2005년 펴낸 단답형의 진솔한 인생 잠언집인 <인생 9단>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최근엔 <인생이 묻는다 내가 답한다>(열음사)를 펴내기도 했다. 그는 ‘인생의 물음에 대해 내가 답한다’고 일면 당당하게 선언하기는 했지만,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인생은 미완성’이며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기만의 몫이 있는 매순간 반성하고 돌아봐야 하는 숙제라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가장 잘사는 방법’은 꼼수부리지 말고 주제파악하며 사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는 것이다.
ㆍ사형수 교화위원 30여년 양순자씨
들어보니 별로 심각한 고민도 아닌데 죽고 싶다고 푸념하는 후배. 양순자씨(69)는 어둑어둑해진 공동묘지로 후배를 끌고가 한참 묘지를 바라보다 이렇게 말했다. “정말 죽고 싶으면 죽어라. 내가 사형수들도 묘지를 사서 묻어주었는데 너 하나 못 묻어주겠니?”
그후로 후배는 다시는 죽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서울 구치소 교화위원으로 32년간 사형수들을 상담했고, 경기 일산에서 심리상담소도 운영하는 양씨. 삶의 고통이 너무 무겁다고 찾아왔던 이들은 그를 만나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져 돌아간다. 풀어서 풀릴 수 있는 것은 괴로움이 아니요, 참고 기다려서 해결되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는 양씨는 인생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숙제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서른일곱 나이에 자신이 죽고 싶어서 사형수들을 만나러 교도소로 갔다. 그는 30여년 동안 죽음의 공포에 떠는 사형수들을 만나면서 얻은 교훈이 “그들은 교도소 안에서 언제 죽을지 확실히 알고, 우리는 밖에서 언제 죽을지 모를 뿐인 똑같은 사형수이지만 그래도 인생은 마지막 날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흉악한 살인마를 만나서도 호통을 치고 자식 때문에 못 죽겠다는 사형수에겐 자식을 대신 키워주겠다고 말하는 담대한 양씨. 그는 자신이 너무 마음이 약해서, 약자가 강자를 만날 때 어떻게 해야 하나 궁리하다보니 지혜가 생겼다고 했다. 지인들로부터 ‘인생 9단’으로 불리는 양씨는 “아무리 힘들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고 강조한다. 피곤한 세상, 심란한 과거, 죽음의 공포에 떠는 사형수를 만나 사서 고생을 하면서도 ‘그들이 내게 더 많은 것을 준다’고 평화로운 표정을 짓는 양씨에게 이 험한 세상에서 평온을 유지하는 법을 물었다.
죽고 싶어서 찾아간 사형수
-30여년 전엔 능력있는 남편에 예쁜 두 딸은 둔 30대의 젊은 부인이었는데 왜 사형수를 찾아 갔나요.
“겉으로 보기엔 행복했지만 남편, 시댁과의 갈등으로 삶이 버거워 죽고 싶었어요. 말끝마다 독화살을 뿜듯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남편, 식탁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도 매일 반찬투정을 하시는 시아버지 등이 젊은 나이엔 참 고통스러운 존재라서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거든요. 그래서 진짜 죽음을 앞둔 이들은 어떤 심정일까 궁금해 사형수들을 찾아갔죠. 신청하면 여러 번의 심의를 거쳐 법무장관이 교화위원으로 임명해줍니다.”
-교화위원은 무슨 일을 하나요.
“사형수들을 만나 상담을 하는 것이 임무지만 또하나의 가족이 되어주는 겁니다. 사형이 선고되면 누구나 정신적으로 정상을 유지하기 힘들죠. 자해하거나 자살을 시도하고, 옆 사람도 괴롭히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기 때문에 교도소에서도 그들을 관리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아요. 그래서 집행하는 날까지 그들을 볼봐 줄 정신적 보호자로 교화위원을 지정하는 데 1 대 1로 결연을 맺어줘 매주 정기적으로 만나 신앙상담도 하고 개인적인 얘기도 들어줍니다. 길면 5~8년, 대개는 2, 3년이면 형 집행이 이뤄지는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유명 사건은 1년 안에 급히 집행되기도 해요. 막가파의 경우가 그랬죠. 범죄내용에 상관없이 사형수가 되면 가족이 해체되고, 있어도 힘이 없기 때문에 교화위원들을 만나는 시간이 그들에겐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이랍니다.”
-막가파를 비롯한 흉악한 사형수들을 보면 안 떨립니까. 교도소에 강의를 다니는 분은 처음엔 죄수들의 죄명만 보고도 다리에 힘이 빠지더라고 하더군요.
“아무리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어도 처음에 구치소 복도를 걸어 들어갈 때는 등골이 오싹해 내가 사형집행장으로 가는 것 같더군요. 대부분의 사형수들이 잘못을 반성하기보다 세상과 주변에 대한 분노가 가득하고 남을 원망하는 경우가 많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아요. 난 절대 그 사람들에게 전에 뭐했냐, 가족관계가 어떻냐, 왜 살인을 저질렀느냐 등을 묻지 않아요. 그냥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공감대를 형성해요. 그럼 슬슬 자기 얘기를 풀어놓죠. 만약 이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이런 절박한 이야기를 들어주고 손을 잡아줄 사람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 때가 많아요. 그 사람들의 얘기들으면 우리는 다 공범이란 생각이 들어요. 약한 사람을 악독한 살인자로 만드는 경우가 많거든요.”
-30여년간 사형수들을 만났는데 공통점이 있나요.
“모든 범죄자들은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에요. 교도소에 가거나 사형집행을 당하는 것보다 우선 남들에게 범죄가 탄로나는 게 두려워 강도와 살인까지 하는 겁니다. 범죄자들을 만난 후 느낀 것은 범인들은 늘 우리 곁에 있고 다 상대적이라는 겁니다. 누구나 우리집에 들어올 수 있는데 범인을 만드는 것 역시 우리라는 거죠. 돈 때문에 남의 집을 털러 오는 강도들이 흉기를 들고 오는 것은 남을 해치려는 것보다 자기방어용이에요. 그래서 딸들이 중학생이었을 때 가상연습을 시켰어요. 도둑이 들어오면 먼저 무섭다는 것을 표현한 뒤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하고, 편안한 자리에 가서 눈을 감고 있으라고요. 또 자장면배달 오는 청년에게도 무조건 듣기 좋게 ‘오빠’라고 부르라고 해서 딸아이들은 오빠, 언니 호칭에 익숙해졌어요. 그런데 진짜 도둑이 들어왔답니다. 딸애가 ‘오빠, 누구야?’라고 천진난만하게 물으니까 ‘배고파서 왔다’고 하더래요. 딸애는 ‘식탁에 빵 있으니까 먹어요. 난 내방에 들어가 숙제해야 해요’라고 하니까 빵만 먹고 담을 넘어 갔대요. 오빠 오빠하니까 진짜 오빠가 되어준 거죠. 나중에 집에 돌아와 신발장 위를 보니 무슨 뭉치가 있는데 흉기가 들어있더군요. 만약 울고 불고 소리쳤으면 그 흉기로 딸을 해칠 수도 있었을거라고 생각해요…. 도둑이 강도로 돌변하는 것은 우리에게 책임이 있어요.”
“범죄자는 맘이 약한 사람들, 사회가 다 공범입니다”
-딸들에겐 오빠라고 부르게 했지만 양 선생님은 6살밖에 어리지 않은 사람의 어머니 역할도 했다면서요.
“그 사형수는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어머니를 불러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정말로 그리워하고 있었어요. 그 때문에 나이로 보면 그의 어머니가 될 수 없었지만, 내게서 어머니를 느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어머니’라고 부르라고 했죠. 논리가 아닌 감성으로 ‘그저 그 사람에게 따뜻한 대답만 해주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범인과 우리는 모두 공범
-교화위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뭔가요.
“교화위원들은 대부분 종교계에 계신 분들이 많아요. 사형수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주고 또 종교가 없는 이들을 전도하려 하죠. 난 기독교 집사이지만 절에도 부지런히 다니고 사형수들에게 특정 종교 이야기를 꺼내지 않습니다. 심리상담가다운 전문성이나 내가 널 도와주러 왔다는 마음보다는 그저 그 사람 입장이 되어서 이해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면 됩니다. 내가 진심인지 아닌지는 그들이 가장 빨리 느껴요.”
-진심으로 대하면 상대방도 화답을 하나요? 살인자들이나 흉악범을 보면 성악설이 맞다 싶을 때도 많던데.
“많이 속기도 하죠. 내가 상담한 사람은 아니지만 어느날 소문듣고 왔다는 출소자가 나타나서 선물을 주겠다. 일본에서 곧 어머니가 오는데 양복 한 벌만 빌려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알고보니 사기꾼이더군요. 그래서 ‘당신 거짓말하는 것 다 안다. 다시 교도소가고 싶냐. 여기 1만원(20여년 전 당시로는 큰돈)이 있으니 5000원은 토큰 사고 5000원은 여관비로 쓰면서 성실하게 살 궁리를 하라고 했죠. 그랬더니 그 사람이 ‘사기는 적당히 낚싯밥을 보내면 고기가 물게 되어있는데 선생님에겐 낚싯밥이 안 물리더군요. 사기꾼이 할 말은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 사기당했다고 하면 그것은 반반 동업자입니다’라고 하더군요. 요즘 펀드다, 다단계다, 다복회다 사기당했다는 사람들 많은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기들이 낚싯밥에 물린 거예요.”
-가장 기억에 남은 사형수는 누구인가요.
“아무래도 금당사건의 주인공 박철웅이겠죠. 그는 정말 잘생기고 언변도 좋았어요. 혼자 세 사람을 살해해서 자기집 정원에 묻어놓고 3개월이나 지낸 간 큰 범죄자였습니다. 처음 배당받고 막막하더군요. 그 사람을 어떻게 제압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나이를 물으니 나보다 한 살 어려서 ‘그럼 내가 누나네, 누나라고 불러’라고 시작했죠. 그런데 이 흉악무도한 박철웅이 구치소의 사도 바울이 되어 재소자들을 전도하느라 바쁘더군요. ‘자기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이미 저 세상으로 이사했다, 단지 집행날은 내 몸이 이사가는 날이라 매우 기쁘게 기다린다’라는 말을 진심으로 기쁨에 차서 하더군요. 그런데 2년 정도 그와 인연을 맺은 어느날, ‘누님 대충 갈 날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못다한 이야기를 참회록으로 남기고 싶으니 볼펜 심지 열개만 넣어주세요’라고 부탁을 해요. 물론 볼펜 심지를 몰래 주는 건 불법이지만 그의 참회록이 다른 살인자를 막을 것 같고, 사형수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기도 끝에 줬죠. 그는 교도소 안의 화장실용 휴지에 힘없는 심지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써내려 갔습니다. 금요일마다 그가 쓴 참회록을 받아왔는데 읽어보니 차라리 모르고 살아온 게 좋았겠다 싶을 만큼 나쁜 놈이었더군요. 그렇지만 그는 진심으로 회개했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형대에 섰습니다. 그의 참회록은 <내 목에 밧줄이 놓이기 전에>란 제목으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인세는 삼장판막증을 앓는 어린이 세 명의 수술비로 쓰였어요. 25년이 지난 지금도 박철웅의 미소, 그의 목소리가 생각납니다.”
-몇 년 동안 매주 한 번씩 만나다보면 정이들어 정말 가족 같겠군요. 또 죄는 미워도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있듯, 사형수들에 대한 이해와 애정도 높아질 텐데 그래도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던가요.
“그럼요. 난 죄도 밉고 죄인도 미워요. 다만 천천히 이해하며 마음을 풀어 놓아야죠. 그래도 용서 못할 사람이 있더군요. 돈 때문에 부모를 죽인 박한상이 그래요. 하도 죄질이 나빠 단칼에 거절했어요. 그렇지만 내 딸이 만약 내게 나쁜 짓을 했을 때 세상이 끝없는 돌팔매질을 하더라도, 누군가 죄와 관계없이 한 명이라도 방어를 해주면 좋겠다란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그를 맡으면 그의 부모가 하늘에서 고마워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난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판단하고 만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저 지경에 이르렀을까 궁금해 하며 배우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만나요. 봉사나 보람을 위해 혹은 종교적 목적을 갖고 했다면 몇 년도 못 버텼을 겁니다. 난 무의식 상태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사형수들을 만나니까 청송교도소에서 1000명을 앞에 두고 강의를 해도 하나도 떨리지 않아요. 그런데 카메라를 의식해야 하는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다녀와서 혈변을 봤다니까요.”
-간혹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서도 왜 아직까지 교도소에 가서 사형수를 만나나요.
“내가 뭘 가르치거나 혹은 이력서에 한 줄 올리기 위해 다니는 게 아니라 배우려고 다니기 때문이죠.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통해 평화를 얻고 행복하게 만든다면 죽어서 염라대왕을 만나 심판받을 때도 ‘그래도 내가 잘한 일이 있잖아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죠.”
-교도소만이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봉사도 하시더군요. 쓴 글을 보니 가난한 장애인 가족을 슈퍼마켓에 데리고 가서 ‘원하는 것을 몽땅 다 사라’고도 하고, 또 어린 아들이 불쌍해서 죽어도 못 죽겠다는 사형수에겐 아들을 대신 잘 키워주겠다고 약속하고…. 체구는 작은데 어디서 그런 배포가 나옵니까.
“난 무얼하든 나를 다 던지고 버립니다. 참 안쓰러운 것이 지체장애자 가족을 데리고 슈퍼에 가서 마음대로 사라고 했는데, 한 번도 사고 싶은 것을 사 본 경험이 없어서 참기름병 하나를 못집더군요. 또 아버지 사형수는 내 말을 믿고 사형집행을 받아들여 대신 대학교까지 보내줬죠. 사형수의 아들이란 게 알려지면 곤란을 당할까봐 연락도 안합니다만….”
남을 미워하는 이들이 가장 불쌍하다
-군인들에게 강의를 자주 다니시던데 할머니가 오면 반가워하나요? 무슨 말씀을 합니까.
“남자들에게 군대복무 기간은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다들 고통스러워하고 억울해하죠. 나는 ‘너희들이 스스로 군대에서 썩는다고 하면 너희는 썩은 사람이다. 아무리 유능한 선수도 축구시합을 할 때는 전반 후에 하프타임을 갖고 쉰 다음에 후반을 뛰듯, 군대 기간은 그런 작전타임 같은 소중한 시간이다. 너희들은 앞으로 80년은 더 살 텐데 여기서 보내는 2년이 뭐가 그리 아깝냐. 이 기간 동안 앞으로 살 인생에 대한 계획표도 세우고 마음수련도 해라. 돈주고 해야 할 일을 나라에서 밥먹여주고 해주니 얼마나 고맙냐’는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닮고 싶은 사람 한 명을 정해 군대 있는 동안 열심히 그 사람처럼 되는 상상을 하라고도 하죠.”
-심리상담소도 운영하시더군요.
“전에 <인생 9단>이란 책을 펴내고, 많은 사랑을 받아 하루에 한 명만 예약을 받아 상담을 해요. 그런데 신기한 게 천당 위에 분당, 천장보다 높은 곳이 압구정이라는데 그런 곳에 사는 이들이 많이 상담하러 와요. 다들 상처받아 위로받고 싶은가봐요. 왜 다들 아파할까 살펴보니 자기 자신도 못믿고, 남들도 못믿는 신뢰부족이 가장 문제더군요. 욕망과 욕심만 클 뿐 타인에 대한 사랑과 신뢰는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참 소중한 존재라는 믿음이 없어요. 얼마 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머플러를 풀어서 시장 아주머니에게 드렸는데 국민들이 감동을 안 하더군요. 나중에 청와대에서 나온 이야기는 오랫동안 쓰던 애장품에 값비싼 거라는 자랑뿐이고…. 그건 우리가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잃어서 그래요. 우리가 슬픈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믿을 사람이 없어서 입니다.”
-인생 9단으로 불릴 만큼 내공이 대단하신데 매사에 흔들림이 없고 참을성도 많은가요?
“아뇨. 난 넉넉한 집의 막내딸로 곱게 자란 데다 비위도, 마음도 약한 사람이에요. 난 상담하러 온 사람에게도 절대 참고 살란 말 안해요. 입장을 바꿔 생각하고 뭐가 유리한가를 판단하라고 하죠. 나도 남편의 성격을 못참아 결혼 22년 만에 이혼했어요. 교회에서 만났는데 공부도 잘 하고 말이 없어 멋져 보였습니다. 그게 냉정한 성격 때문이란 걸 나중에야 알았죠. 그 사람이 속인 게 아니라, 내가 날 속인 것이니 그 사람을 원망하진 않지만 남편을 이겨 내기엔 내가 독하지 못했어요. 아무리 기도하고 생각을 달리 해도 남편은 달라지지 않아서 10년간 이혼 예행연습을 혼자 했죠. 이혼한다고 홀가분하고 시원해지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남편, 시댁식구 없이 사는 것에 대한 가상으로 설정을 하고, 천천히 훈련을 한 다음에 이혼했습니다. 아직도 한국사회에서는 이혼녀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이 많고, 실생활에서 불편한 점도 많은데 갑자기 이혼하면 엄청나게 충격이 크죠.”
-30여년 동안 사형수를 위한 교화위원을 해오고 심리상담소에서 많은 이들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나요.
“65억 인구 모두가 다 개성이 있고 전공과목이 있는데 내 전공은 배려인 것 같아요. 난 사형수는 물론 누구에게도 뭘 강요하지 않아요. 그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충실하고 내가 가진 것을 다 던져요. 내가 가진 것을 희생하지 않고는 설득이나 타협이 안 되거든요. 말로 대화하는 게 아니라 애정과 배려로 감동시켜야 상대도 작전을 바꿉니다. 가끔 터미널 등에서 내게 차비를 달라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남들은 내가 어수룩해보여 사기를 당했다고 한심해하지만 난 내가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제일 착하게 보였다고 생각하니 기뻐요. 또 하느님도 구름 위에서 날개달린 옷입은 근엄한 분이나 교회에 가야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수시로 하느님께 도와달라고 하죠.”
-하지만 제대로 인정을 못받으면 속상하지 않습니까. 박철웅의 경우도 다른 목사, 신부님이 담당했던 걸로 알려졌는데요.
“누가 했으면 어때요. 중요한 건 살인마 박철웅이 교도소에서 하나님을 영접해 다른 신도들에게도 전도하고 행복한 미소로 하늘나라로 간 거죠. 상 받거나 잘난 척하려고 교화위원이 된 게 아니라 진심으로 배우러 가는 거라서 오해를 받아도 괜찮아요.”
-만나본 사람들 가운데 가장 불쌍한 이는 누군가요.
“불쌍한 사람은 돈없고 병든 이들이 아니에요. 남을 미워하고 이간질하는 사람,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비록 한때 죄를 지어 차가운 교도소에 있어도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도 있고, 호화로운 생활을 해도 늘 불안하고 항상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 있는데 누가 더 불쌍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