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시작된 것은 그가 사는 아파트 단지 내의 놀이터 벤치에서다...
< 고 1 - 일곱 살 >
女 - "아저씨 여기서 뭐해?"
男 -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女 - "아저씨 울고 있었어?"
"아... 아니야..."
女 - "피... 거짓말..."
"아니라니깐... 그냥 눈에 뭐가 들어가서 그런 거야"
女 - "알았어. 안 울었다고 해"
"진짜 안 울었다니깐..."
女 - "알았다니깐"
"......"
女 - "......"
"...근데 꼬마야... 너는 어디 사니?"
女 - "705동에 살아. 아저씬 어디 살아?"
"난 706동에 살아. 근데 꼬마야..."
女 - "왜?"
"나 아저씨 아니거던. 나 이제 고등학교 1학년밖에 안 되었거던"
女 - "그럼 오빠야야?"
"그렇지. 난 오빠야지"
女 - "아냐. 오빠야들은 교복 입고 다녀. 아저씨는 교복 안 입었으니까 아저씨야"
"저녁에 집에 와서는 교복 안 입어. 그니까 오빠야라고 불러라 꼬마야"
女 - "근데 아저씨"
"왜?"
女 - "나 꼬마 아니거던. 나 일곱 살이거던"
"......"
女 - "왜 말이 없어?"
"할 말이 없거던"
女 - "......"
"......"
女 - "아저씨, 내가 아이스크림 사 줄까?"
"아이스크림?"
女 - "응. 나 아이스크림 사 먹으려고 밖에 나온 거거든"
"너처럼 꼬마한테 무슨 아이스크림씩이나 얻어 먹냐"
女 - "그럼 안 먹을거야?"
"구구콘으로 사 와라"
女 - "알겠어"
女 - "아저씨, 구구콘이 없대. 그래서 브라보콘으로 사 왔어"
"월드콘도 없대니?"
女 - "그걸로 바꿔다 줄까?"
"아냐. 그냥 먹을께"
女 - "내가 까줄께 아저씨"
"^o^. 이런 건 남자들이 까 주는 거야. 내가 까 줄테니까 줘 봐"
女 - "알겠어"
女 - "근데 아저씨"
"왜?"
女 - "아까 왜 울고 있었어?"
"아까?"
女 - "응"
"아까... 안 울었어"
女 - "자꾸 거짓말 하면 나쁜 어린이라고 부를 거다"
"아저씨보단 나쁜 어린애가 차라리 낫겠다"
女 - "좋아. 그럼 앞으로 아저씨보고 나쁜 어린이 라고 부를거다. 평생 그렇게 부른다"
"평생?"
女 - "그래. 내가 죽을 때까지 아저씨보고 나쁜 어린이라고 부를 거야"
"......"
女 - "나쁜 어린이는 되기 싫지?"
"응... 나쁜 어린이는 싫어..."
女 - "그럼 말해 봐. 아까 왜 울었어?"
"...엄마하고 아빠하고 싸웠어..."
女 - "아빠가 엄마 막 때렸어?"
"......"
女 - "다 그래. 우리집도 아빠가 엄마 막 때려"
"너네집도 그래?"
女 - "응. 막 집어 던지고 싸우고 그래"
"우리집도 그래..."
女 - "전에는 내 미미인형도 부러트리고 던지고 그랬다"
"우리 아빠도 내 항공모함 던졌어..."
女 - "항공모함...?"
"응... 일년 동안 죽어라고 조립해 놓은 항공 모함이었는데... 그거 던졌어..."
女 - "그럼 그거 다 부서졌어?"
"응... 부서져서 다시 조립하지 못하게 되었어..."
女 - "그랬구나..."
"......"
女 -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몰라"
"왜?"
女 - "언젠가는 부서질 물건이면 차라리 지금 부서지는 게 좋을지도 몰라"
"왜?"
女 - "나중에 쓸모 없어져 잊혀지는 것보다 기억속에 소중히 간직되는 게 좋잖아"
"정말... 그럴까...?"
女 - "그러엄. 지금은 속상해도 나중엔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될거야"
"그래... 그렇게 생각해야지..."
女 - "잘 생각했어"
"근데 꼬마야..."
女 - "왜?"
"너 일곱 살 맞냐...? 어떻게 일곱 살 짜리가 그런 생각을 하니...?"
女 - "책을 많이 읽어서 그래. 책을 많이 읽으면 어른이 빨리 돼"
"그렇구나"
女 - "근데 아저씨..."
"왜?"
女 - "아저씨는 고등학생 맞아? 고등학생이 장난감 부서졌다고 울어?"
"... 책을 안 읽어서 그래... 책을 안 읽으면 어른이 안 돼..."
女 - "갖다 붙이기는"
"......"
< 고 2 - 초등학교 1학년 >
女 - "아저씨 여기서 뭐해?"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女 - "아저씨 또 울었어?"
"아니야... 울긴 왜 울어..."
女 - "피... 또 거짓말 하는구나?"
"아니라니깐. 눈에 뭐가 들어가서 그랬어"
女 - "알았어. 안 울었다고 해"
"진짜 안 울었다니깐"
女 - "알았다니깐"
"......"
女 - "아이스크림 사 줄까?"
"... 꼬마한테 무슨 아이스크림을 얻어 먹냐"
女 - "구구콘 없으면 월드콘으로 사 온다"
"알겠어"
女 - "오늘은 구구콘이 있어서 사 왔어"
"니것도 줘 내가 까 줄께"
女 - "알겠어"
女 - "오늘은 왜 울었어?"
"그냥 울... 아니, 나 안 울었어"
女 - "나쁜 어린이구나?"
"그래... 난 나쁜 어린이일지도 몰라..."
女 - "평생 나쁜 어린이구나?"
"......"
女 - "왜 울었어?"
"... 성적이 떨어졌어..."
女 - "성적이 떨어져서 운 거야 아니면 성적 떨어져서 아빠한테 맞아서 운 거야?"
"... 맞아서 울었어..."
女 - "몇 대 맞았는데?"
"점수 떨어진 만큼..."
女 - "오십 대 정도 맞았겠네?"
"...칠십 대 맞았어"
女 - "그걸 다 맞았어? 좀 깎아주지 않았어?"
"... 깎아줬어... 그래서 이십 대 맞았어"
女 - "그럼 오십대나 덜 맞았네"
"응"
女 - "이야... 아저씨 오늘 땡 잡았구나. 오십 대나 덜 맞고 말이야"
"그런가...?"
女 - "그러엄 오십대 더 맞을 생각해 봐. 이십 대 맞고도 이렇게 아픈데 말야"
"그거 더 맞았으면 진짜 아팠겠지?"
女 - "그렇지. 아저씨는 오늘 매를 벌은 거야"
"...그래도 많이 아픈 걸"
女 - "어디가 아픈데?"
"여기 종아리하고... 그리고... 마음하고..."
女 - "한번 봐봐... 이야... 빨갛게 부어 올랐구나. 내가 손으로 감싸 줄게"
"손으로 감싸 주면 좀 나아?"
女 - "그러엄 원래 여자들 손이 약손이야"
"어... 진짜 좀 낫네..."
女 - "그럼 이번엔 마음을 치료해 줄게"
"어떻게?"
女 - "음... 일단 내가 한번 안아 주께... 좀 나았어?"
"... 따뜻해..."
女 - "그럼 나은 거지?"
"아직 2% 부족해"
女 - "알겠어. 그럼 이번엔 내가 뽀뽀를 해 줄께... 자... 됐지? 이젠 나았지?"
"응... 이제 나았어..."
女 - "좋아?"
"응"
女 - "얼마만큼 좋아?"
"하늘만큼 땅만큼"
女 - "한번 더 해 줄까?"
"응"
女 - "...이번엔 입술에 해 줄께"
"알겠어"
< 고 3 - 초등학교 2학년 >
"왜 이제 오냐. 아까부터 계속 기다렸는데"
女 - "숙제하느라고 늦었어. 미안해"
"요즘 초등학교는 숙제도 내 줘?"
女 - "아저씨 초등학교 때는 숙제 없었어?"
"나 학교 다닐 때는... 숙제 한 기억이 없는데..."
女 - "숙제는 내 줬을 거야. 아저씨가 안 해서 그랬지"
"나 참... 하여튼, 빨리 구구콘 사 줘"
女 - "알겠어"
女 - "구구콘이 맛있어?"
"응"
女 - "왜 맛있어?"
"비싸니까"
女 - "비싸면 맛있는 거야?"
"...비싸니까 맛있는 거 아니야?"
女 - "맛있어서 비싼 게 아니라?"
"그런가? 에이 몰라. 복잡해"
女 - "나 참... 아저씨 이렇게 하면 대학 못 가"
"대학 얘기 꺼내지 마. 가뜩하나 스트레스야"
女 - "아저씨는 나중에 뭐 할 건데?"
"나는 소설가가 될 거야. 소설가가 되어서 진한 사랑 이야기를 쓸 거야"
女 - "소설가가 되려면 책도 많이 읽어야 되지 않아?"
"응"
女 - "아저씨 책 많이 읽었어?"
"아니..."
女 - "소설가가 되려면 이해력이 좋아야 하지 않아?"
"응"
女 - "아저씨 구구콘이 비싸서 맛있어 아님 맛있으니까 비싸?"
"......"
女 - "아저씨는 좋은 소설가가 될 거야"
"왜?"
女 - "단순하니까"
"단순하면 좋은 소설가 되는 거야?"
女 - "그러엄 단순해야지 순수하게 글을 쓸 수 있어. 순수해야지 감동시킬 수 있고"
"정말?"
女 - "그러엄"
"근데... 너 정말 초등학교 2학년 맞냐?"
女 - "아저씨는 고 3 맞어?"
"......"
"......"
< 21살(삼수생) - 초등학교 4학년 >
女 - "아저씨 여기서 뭐해?"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女 - "아저씨 또 울었어?"
"아... 아니라니깐..."
女 - "......"
"......"
女 - "구구콘 말고 구구 크러스터로 사 줄까?"
"... 새로 나온 거야?"
女 - "응... 더 비싼 거야"
"비싼 거면... 맛있겠지...?"
女 - "그렇겠지...?"
"그냥 구구콘 먹을래"
女 - "왜?"
"비싼 것보다 맛있는 게 좋아"
女 - "아저씨"
"왜?"
女 - "맛있으니까 비싼 거야"
"맛있어도 비싸면 싫어... 이젠 내 분수에 맞을만큼 맛있는 게 좋을 거 같아"
女 - "철 들었네?"
"고마워"
女 - "자 받어"
"어... 왜 구구 크러스터야? 난 구구콘으로 먹을 건데"
女 - "구구 크러스터보다 백만 배 비싼 거 먹어도 될만큼 아저씨는 훌륭한 사람이야"
"......"
女 - "진짜라니깐"
"난 패배자야... 삼수까지 하고도 실패해서 군대로 쫓겨 가는 그런..."
女 - "군대... 가...?"
"응..."
女 - "언제 가는데?"
"모레..."
女 - "...그렇구나..."
"나 지금 되게 무섭다... 아무것도 한 것도 없이 군대로 끌려 가는 거 같아..."
"......"
"남들 한번에 들어가는 대학... 계속 떨어지면서 허송세월만 하고..."
女 - "왜 허송세월이니? 아저씨는 인생에서 가장 귀한 실패라는 경험을 하는 거라구"
"실패라는 경험...?"
女 - "그래. 실패를 해도 충분히 만회가 가능한 이십대에 말이야"
"그럴까...?"
女 - "한번 아파 본 사람은 그 병에 면역이 생기는 거야"
"그럼 나중에 또 아플 때엔 지금만큼 고통스럽지 않을까?"
女 - "그러엄 그리고 아프다고 주저앉지 않고 꿋꿋하게 일어설 수 있고 말야"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그 진부한 말이 진리라는 말이지?"
女 - "그러엄... 역시, 아저씨는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아는구나"
"칭찬 받으니까 기분 좋네... 상은 없어?"
女 - "상...? 흐음... 그럼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한번 할까?"
"남들 보는데..."
女 - "괜찮아. 여기 우리밖에 없잖아"
"나 원조교제 한다고 잡혀 가는 거 아닌가 몰라"
女 - "잡혀가도 내가 잡혀 가. 아이스크림 사 주는 건 나니까 말야"
"그래도... 세상에 눈은 너무 사악해서... 저기... 그러니까..."
女 - "왜 그러니. 우리가 이상한 짓 하자는 것도 아니고 심심한데 뽀뽀나 하자는데"
"그게... 근데..."
女 - "진짜 말 많네. 지금 안 하면 삼 년을 기다려야 되잖냐. 잔소리 말고 일루 와"
"야아... 근데... 흐읍..."
< 25살(대학 1학년) - 중 2 >
女 - "오랜만이네"
"진짜... 그 동안 별 일 없었어?"
女 - "응. 아저씨도 별 일 없었어?"
"어. 이번에 학교 들어가서 지금은 기숙사에 있어"
女 - "그랬구나..."
"방학이라 내려 왔는데... 너도 지금 방학이겠구나?"
女 - "그렇지..."
"이제 중학생 되었겠네?"
女 - "응"
"이야... 이젠 제법 키도 컸고... 이야..."
女 - "왜 자꾸 가슴을 보냐"
"아니... 신기해서 말이야"
女 - "신기할 게 따로 있지. 이젠 나도 어엿한 숙녀라구"
"그렇네 정말... 그럼 너도 H.O.T 같은 애들도 좋아하겠네?"
女 - "가수? 노래는 좋아하지만 흔히 말하는 빠순이는 아니야"
"하긴... 너는 어려서부터 다른 애들하고 많이 틀렸지"
女 - "아저씨도 다른 사람들하고 많이 틀렸지"
"그런가?... 하여튼, 오랜만에 만났는데 아이스크림이나 사 주라"
女 - "아이스크림보다 떡을 사주고 싶은 걸"
"떡? 아하! 찰떡 아이스인가 그거 말이구나?"
女 - "나 참.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 모르니? 아저씨 정말 국문과 맞니?"
"미운 놈 떡 하나? 하여튼, 떡 얘기하니까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 떡 사와라"
女 - "자, 찰떡 아이스"
"고마워"
女 - "입 벌려 봐. 내가 넣어줄께"
"알겠어"
女 - "슛! 고올인!"
"이 쫄깃쫄깃한 맛! 진짜 좋은 걸~~~"
女 - "느끼하게 왜 그렇게 쳐다보냐"
"떡 하나 더 주면 안 잡아 먹쥐~~~"
女 - "에이구... 어디서 되도 안 되게 애교는 배워 와서는"
"왜케 투덜거리냐. 내가 뭘 잘 못 했다구"
女 - "오 년만에 나타나서는 떡 하나 안 주면 잡아 먹는다는 소리나 하고"
"진짜 잡아 먹을 줄 알았냐? 너 안 보는 사이에 쫌 소심해 졌다?"
女 - "소심? 그래 내 이름 현소심이다"
"그래? 너 이름이 소심이었냐?"
女 - "내 이름도 이제껏 몰랐지?"
"언제 말해줬냐"
女 - "그래! 항상 말해줘야 아는 이 나쁜 아저씨야!"
"너 왜 그냐? 진짜... 너... 떡 하나 안 주면 잡아 먹힐 줄 알았냐...?"
女 - "어디서 쌍팔년 때 줏어들은 개그나 하구 있네! 나 집에 갈 거야!"
"너... 홀로 집에...?"
女 - "참 나..."
"미안하다. 어휘력 표현 연습 좀 하느라 그랬어"
女 - "오 년만에 만나서 그렇게밖에..."
"응? 뭐라고?"
女 - "아니다. 에휴... 나 먼저 집에 갈 테니까 나중에 또 보자"
"그래. 꼬마 아가씨 잘 가"
< 28살 - 고 2 >
女 - "아저씨... 여기서 뭐해?"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女 - "아저씨... 울고 있었구나...?"
"... 아이스크림 사 줘..."
女 - "...그래..."
"구구콘으로..."
女 - "...그래... 다 울고 난 다음에 사 줄께"
"......"
女 - "가슴... 빌려 줄까...?"
"...... 응 ......"
"헤어졌어..."
"......"
"세상이 너무 현실적이야... 도저히 먹여 살릴 능력이 없더라..."
"......"
"어쩌면... 세상이 현실적인 게 아니라 내가 비현실적인 걸지도 몰라"
"......"
"국문과 나와서 뭘 하겠니... 예전이나 지금이나 글쟁이는 굶는게 운명이야..."
"......"
"나 같은 놈은 장가갈 자격도 없어... 식구들 다 굶겨 죽일 거야..."
"......"
"그녀를 떠나 보내고 콱 죽어 버릴까 생각도 했는데..."
"......"
"그냥 살았어... 목숨이라는 거 참 웃기더라... 오기가 생기더라..."
"......"
"가정을 꾸릴 자격이 없다면... 사랑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면..."
"......"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거야... 사랑만 줘도 되는 그런 사랑을 할 거야..."
"......"
"그들에겐 사랑만 줘도 되겠지...?"
女 - "그러엄... 사랑만 줘도 되지"
"그래..."
女 - "사랑만 줘도 되는 여자를 만나서 결혼도 하고 말야..."
"그럴까...? 세상은 현실적인데...?"
女 - "꼭 남자만 돈을 벌어 올 필요는 없잖아. 남자가 내조를 해도 되는 거구"
"그럴까? 그럼 나도 집에서 살림하고 글만 쓰고 아내 사랑만 해도 되나?"
女 - "그러엄"
"아내가 약국문 닫을 때 셔터만 내리면 되는 거구?"
女 - "그러엄"
"약국문 닫는 날엔 아내 운전수 하면서 들로 산으로 놀러 다니구?"
女 - "그러엄"
"약국이 바쁠 때엔 내가 도시락 싸1 가지고 약국으로 가져가구?"
女 - "... 이젠 그만 해라. 아주 약사 약사 노래를 해요"
"이야... 생각만 해도 좋다..."
女 - "가슴에 자꾸 머리 좀 부비지 마라. 가슴 다 찌그러지겠다"
"허억... 미안해... 너무 푸근해서..."
女 - "그렇다고 머리를 뗄 필요는 없어. 그냥 가만히 대고 있어"
"알겠어"
女 - "...이젠 좀 나아졌니?"
"응"
女 - "그래... 착하다..."
"나 이상해... 너한테만 오면 그냥 마음이 편해..."
女 - "그래..."
"벌써 십년도 더 되었네 우리... 참 시간 빨리 흐른다..."
女 - "그래... 그래도 아직 이 년이나 남았어"
"......"
女 - "조금만 기다려... 십 년을 참았는데 이 년을 못 참겠니..."
"......"
女 - "그 때까지 딴 생각 말고 몸 건강히 있어라... 알았지...?"
"......"
女 - "아저씨...?"
"......"
女 - "아저씨... 자니...?"
"...... 쿠울......"
女 - "참 나......"
< 서른 - 대학 1년 >
"어... 너 여기서 뭐 하니?"
女 - "어? 아... 그냥..."
"어째 오늘은 좀 바뀐 거 같다? 왜 니가 거기 혼자 앉아 있냐?"
女 - "누구 좀 기다리느라구"
"누구?"
女 - "그냥... 근데 아이스크림 사 줄까?"
"이야... 너 내가 아이스크림 사러 나온 거 어떻게 알았냐?"
女 - "빠리 바케트 삼천원짜리 바닐라 통에 들은 거 사러 나왔지?"
"이야... 너 자리 깔아라"
女 - "아이구... 거기 우리 엄마네 가게야. 아저씨 거기 단골인 거 벌써 알았어"
"증말? 이야... 세상 참 넓고도 좁네"
女 - "세상에 좁은 게 아니라 아저씨가 단순한 거네요"
"그게 그런가?"
女 - "아저씨, 나 할말 있어"
"그래? 나도 너한테 할 말 있는데 잘 되었다"
女 - "할 말? 무슨 말인데?"
"너 먼저 해봐"
女 - "아니야. 아저씨 먼저 해 봐"
"그래"
"......"
"너 이번에 약대 들어갔다며?"
女 - "...응... 어떻게 알았어?"
"아파트에 소문이 파다해. 너 의대 들어갈 실력인데도 약대 들어갔다면서?"
女 - "그런 소문은 잘도 들으면서 파리 바케트가 우리엄마인 줄 왜 몰랐니?"
"그게 그러나?"
女 - "하여튼, 그래서?"
"어. 그래서 말인데..."
"......"
"니가 잘 알잖냐... 나 능력없는 서른 살 노총각인 거 말이야"
女 - "그런데?"
"너는 이제껏 날 잘 봐왔으니까 누구보다도 날 잘 알 테고"
女 - "그런데?"
"너는 똑똑하니까 내가 얼마나 순수하고 좋은 사람인지 설명을 잘 할테고"
女 - "그런데?"
"... 몰라서 묻냐..."
女 - "여자 소개 시켜 달라구?"
"응"
女 - "그냥 약대 다니는 여자면 되는 거니?"
"아니"
女 - "그럼?"
"니가 소개시켜 주는 여자면 되"
女 - "왜?"
"널 믿으니까. 넌 현명하고 똑똑하고 정확하니까"
女 - "그래?"
"넌 사람을 정확히 보고 내게 맞는 확실한 여자를 골라 줄 거니까"
女 - "오호"
"날 사랑할 수 있는 여자, 그리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여자를 골라줄 테니까"
女 - "얼씨구"
"너가 추천해 주는 여자라면 그 누구라도 오케이야"
女 - "참 나..."
"왜... 도저히 안 되겠냐...?"
女 - "서른먹은 남자가 갓 스물된 여자한테 중매를 부탁하는 건 세상천지에 없어"
"그냐...?"
女 - "스무살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더구나 결혼같은 건 먼 훗날의 일이라구"
"......"
女 - "이제 갓 대학에 들어와서 부푼 꿈을 안고 한참 자유를 느낄 때라구"
"...... 그래.... 나도 알어..."
女 - "그런 신입생한테 중매 같은 이야기나 하구 아저씨는 참 멋대가리도 없어"
"...... 잘못했어......"
女 - "잘못한 건 알긴 아는구나?"
"그래......"
女 - "그럼 이번 한번 뿐이야. 앞으로는 그딴 멋대가리 없는 프로포즈는 안 받어"
"그래... 머... 머라구...?"
女 - "뭐긴 뭐야!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대놓고 고백을 하면 되지 왜 말을 돌리니!"
"......"
女 - "현소심 너를 사랑한다! 나하고 결혼해 주라! 이렇게 말하면 되잖아!"
"......"
女 - "일곱살 때부터 아이스크림 사주면서 공을 들여 놨건만 프로포즈도 제대로 못하구"
"......"
女 - "내가 미쳤지... 저 늙다리 아저씨 키워 내느라 내 청춘을 바쳤으니 원..."
"......"
女 - "기껏 키워 놨더니 한다는 소리가 여자를 소개시켜 달라구? 나 참..."
"그야... 니가 워낙 잘났으니까... 또... 나이차이도 너무 많이 나구..."
女 - "아이구... 그런 사람이 빠리 바케트엔 왜 출근도장을 찍누?"
"......"
女 - "우리 엄마가 웃겨서 혼났댄다. 여차하면 기둥에다가 절이라도 할 판이라던데"
"그야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 아차!... 너 어케 알았냐..."
女 - "웃겨 정말! 내가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했냐! 이 단순한 아저씨야!"
"그래도... 근데... 너네 엄마가 나 좋아하실까..."
女 - "걱정은 되나 보지?"
"응... 나 무지 걱정 돼"
女 - "일곱 살 때부터 선언했었어. 나 저 아저씨한테 시집 간다구 말야"
"......"
女 - "처음엔 장난으로 여기셨지만 벌써 십 삼년동안 마르고 닳도록 얘기를 했다구"
"......"
女 - "이젠 포기하셨지 머. 목에 칼이 들어와도 꿈쩍 안 하는 날 잘 알거든"
"그럼... 나 너한테 장가 들어도 되...?"
女 - "웃겨 증말! 나 말고 누구한테 가려고 그랬니!"
"세상 사람들이... 우리보고 원조 교제라구 하면 어떻게 하지?"
女 - "맞는 말이잖아. 내가 일곱 살 때부터 아이스크림 원조 해 줬잖아"
"그게 그런가..."
女 - "이젠 아무 걱정말고 글만 써. 세상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 줄 그런 글을 말이야"
"정말?"
女 - "그래. 내가 아저씨를 먹여 살릴 테니까 아저씨는 세상 사람들을 먹여 살려"
"그럼 난 세상 사람들만 먹여 살리면 돼?"
女 - "아쭈! 나는 밥만 먹고 사냐! 나도 사랑을 먹어야지!"
"그치! 너도 사랑을 먹고 살아야지! 그런 의미에서 지금 먹여주면 안 되냐?"
女 - "야아... 사랑이 가슴으로만 먹냐... 자꾸 가슴으로 파구들면 어쩌냐..."
"잠깐만 기다려 봐... 현소심이 가슴이 얼마나 따뜻한데..."
女 - "야아... 자꾸 쪼물락 거리지 마... 야아..."
"......"
세상엔 참 많고도 다양한 사랑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 아름답고 참되다 감히 말할 수 없겠지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랑하고 산다는 게 너무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평생을 살면서 인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