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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非婚)을 꿈꾸며...

이하나 |2008.12.28 23:19
조회 291 |추천 2


I love you, but I love me more

미혼(未婚)이 아닌 페미니스트 잡지에서나 접했던

비혼[非婚]이란 단어가 드디어 보수적인 신문사가 내놓는

시사잡지에 등장했다.

 

기사에서 비혼자는 “자금의 부담으로 미루다보니…”,

 “여건 상 자꾸 늦춰지다가” 시기를 넘긴 케이스도 다루었지만

결국 인터뷰를 하고 예를 든 케이스들은

외국을 싸돌아다니는 자유인이나 돈도 잘 벌고 직업도 좋은,

한 마디로 굳이 결혼을 안 해도 될 만큼

자기 행복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기사에 사용한 주된 이미지는 당연히

였고 보너스로 의

이미지는 그들이 소비의 큰손이라는 기사에 쓰였다.

결국 비혼 특집 기사는 사만다가 리처드에게 날린 그 유명한 대사

“ I love you, but I love me more” 를 인용하며 끝을 맺었다.

 


'사랑과 전쟁' 시청 후유증인가?

 

사실 난 ‘비혼’으로 살기를 갈망하는 사람 중 하나다.

독신주의라고 거창하게 표현하기는 쑥스러운 게

그렇게 말하려거든 뭔가 확고한 철학이나 독립심이 있거나

남자에 대한 미련이 없어야 하는데 난 그런 게 없이 어정쩡하다.

그렇다고 사만다처럼 나를 더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난 그저 결혼이란 제도속에서 내가 버텨 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남자와 남자의 가족이 되어 안정된 결혼을 유지하기 위하여

백만스물한가지의 불공평함을 참아낼 생각을 하면

눈물부터 쏟아지고 붙임성도 드럽게 없는 내 성격상

내 가족도 어색하게 대하는 데 남의 가족에게

무조건 싹싹하게 대해야 하는 것도 자신없다.

 

사실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려면 남편이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해도 큰 소리 안내고 시댁식구들의 불공평한 요구에도

무조건 네네 해야 평안이 오지 않던가.

오로지 여자의 희생과 참음으로 유지되는 스위트홈은 그

렇게 꾹꾹 참다가 썩은 여자 심장을 비료로 삼아서

활짝 피어나는 게 아니든가.

 

 

이것또한 유전무죄 무전유죄!

 

기사에서 말하는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

소비의 주체가 되는 비혼자 드라마 의

주인공들처럼 전문직에 자유로운 이성교제를 즐기는

비혼자 앙드레 김 선생님처럼 일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패션에 온 몸을 투신하신 비혼자 한비야 님처럼

세계를 여행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비혼자…

이런 분들을 언급한 기사를 읽으며

늦은 밤 귀가하는 버스 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기도도 넋두리도 아닌 혼잣말을 되뇌였다.

 

'부디… 부디 나에게 로또 한 번만 맞게 해 주세요.'

 

혼자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사 먹고 밤새도록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글을 쓰다가 책을 읽다가 잡지를 스크랩하다 신문을 읽다가

종류별로 사 모은 차를 하나하나 마셔보기도 하고

느긋하게 입욕제를 넣은 욕조에 몸을 담그기도 하고

가끔 엄마와 외출도 하고 찜질방도 가고

만나고 싶은 친구도 만나고….

 

큰 욕심없이 그렇게 사는 게 너무나 행복한데

내가 돈이 없으면 아주 많이 없으면

사람들이 이렇게 사는 걸 용서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에게 뭐 문제 있는 여자다 손가락질 하지 않고

우리 엄마도 열받아 쓰러지지 않게 제발 사회가 용서하는

돈 있는 '비혼자'로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일로 성공했어도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숙한 자인

[미혼] 이란 말 대신 필수 아닌 선택인 ‘결혼’을 하지 않은

[비혼]을 사람들이 알게되면 좀 더 편할 줄 알았는데

 케이블에서 보여주는 ‘싱글즈 인 서울’의 싱글들은

외모와 패션감각을 갖춘 전문직이나 아직 나이도 얼마 안 먹은

패션모델에 잘 나가는 파티피플들이 등장하여

나처럼 돈 없고 능력 없는 [비혼]은 더욱 궁지로 내몰리고 있다.


결혼 = 정상적인 삶?

 

그저 혼자가 편한 사람들을 자꾸 ‘히키코모리’로 몰고 가고

사회 부적응자 취급을 하거나 정착하기 싫어하는

바람둥이로 몰아가는 풍조도 서러운데

이젠 같은 ‘싱글’임에도빈부격차까지 벌어지니 서럽다.

 

일단 남자와 같이 살면 새벽 5시에 이렇게

환히 불을 밝히고 글을 쓸 수도 없고

딱 1시간만 자고 일어나 눈꼽 떼고 일어나

남편 깨우고 밥 먹여서 출근시켜야 한다.

 

캐리처럼 몇 백달러짜리 마놀로 블라닉 힐을 사겠단 것도 아니고

 그저 좋아하는 잡지 정기구독만은 눈치 안보고 하고 싶다.

남자가 벌어다 준 돈, 그 돈으로 분명 자기도 같이 사는 집세내고

밥먹이고 옷 입혔건만 지가 벌어다 준 피같은 돈 함부로 쓰고

놀고먹는 것 마냥 은근히 눈치주는 것도 기분더럽다.

 

난 비혼자로 무슨 원대한 꿈이나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욕심도 없다.

다만 내가 자고 싶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날 수 있는

자유만이라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 그만 징징거리고 하고 싶은 말을

한 방에 정리해 준 모 신문에 실린

권혁란님의 칼럼 한 구절로 마무리하겠다.

 

세상 모든 이들이 결혼을 염두에 두고 사는 것도 아니고

결혼 안 했다고 해서 미성숙하고 이기적인 것도 아니다.

꼭 남녀 한 쌍만 결혼해서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두 남녀가 잘 살아보겠다고 서약할 때만 축하할 것이 아니라

혼자서 잘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이들도

축하하고 격려해줄 필요가 있다.

추천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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