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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것> Soul to Seoul - STS

쥬다스 |2009.01.01 17:14
조회 40 |추천 0

 

무엇이든 하던 가락이 있어야 별다른 고민 없이 하고자 하는 바가 풀리기 마련인데, 글쓰기도 오래도록 접어두다 보니 자꾸만 어색하고, 무어라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그 육질이 씹혀 단즙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나는 한 줄의 글은 (이곳에) 적어넣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사과에 붙어있던 씨앗 껍질이 끝내는 입안에서 사라지지 않아, 넉넉한 시간을 두고 글을 써넣을 수 있었다. 사실 딱히 할 일이 없는 점심 시간이나, 기차에 몸을 싣고 목적지가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는 긴긴 시간 동안 나는 '글을 쓰기 위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떠올려보거나, 때로는 내키는대로 그려보기도 하였다. 시도는 용감했고, 구상은 거창하였으나,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자리에 앉게 되면 모든 것이 불충분하고, 부질없게 느껴졌다. 연단에 올라 서자마자 애써 준비한 연설문을 송두리째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무엇에 대한, 무엇을 위한, 무엇 때문에?

 

 

쉽보르스카를 안 것은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1996년 12월 末이었지만, 그의 시를 읽게 된 것은 그보다 한참이나 후의 일이었다. 양셩의 홈페이지에 가면 아직도 그 글을 볼 수 있는데, 그의 詩 '두 번은 없다'는 지금 봐도 굉장히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나는 그 시가 일종의 절대적인 명령, 혹은 계시처럼 느껴졌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국내에서는 쉼보르스카의 시집을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학과 지성사를 통해 '끝과 시작'이라는 그의 시선집이 발표되게 된 것이다. 책을 구입하는 데 있어선 '검약'이라는 미덕을 거의 지각하지 못하는 나는, 정말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그 책을 집어들었다. 지나치게 메시지(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이거나, 아무튼 뭐랄까 '직접적인')를 전달하고자 고심한 노력이 엿보이는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쉼보르스카의 시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번역된 시는 이미 절반은 죽은거나 다름 없지만, 그럼에도 그 언어가 반짝이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재능이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물론 백화점을 활보하며 벌써 차고 넘치는 화장품을 구경하거나, 가당치 않게 비싼 옷가지를 둘러보는 것이 지상에서 최고로 흥미로운 일과이긴 하지만, 때로는 고상하게 시집을 두 손에 쥔 채 우주를 음미하고, 미술관으로 발길을 놓아 현대회화의 심오한 형상을 들여다 보는 일도 필요하다. 그래서 퐁피두센터 특별전을 다녀오긴 했으나, 역시나 기억에 남는 건 엄청난 인파와 그들이 뿜어내는 대단한 열기 뿐.

 

 

오래간만에 철학 서적을 읽으니, 새삼 내 전공에 대한 향수가 밀려오고, 더불어 알 수 없는 자신감마저 다 함께 몰려 내려와 이번에야말로 뭔가 '철학적인 글'을 꼭 적어봐야 겠구나 싶었는데, 다시금 모니터 앞에 앉아 생각해보니 그저 허탈할 뿐이다. 처음에는 플라톤의 '향연'이나 언제나 사랑스러운 스피노자, 그리고 키에르케고르에 대해 글을 쓰리라고 계획했는데, 전부 아니올시다. '위대한 작업'은 말그대로 위대하지만, '위대할 뻔했던 작업'은 이상하게도 역겹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초인적인 자아도취가 없고서는 함부로 나설 수가 없는 것이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식도락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하자. 서울에 '자신의 정체성을 갖춘 음식점'이 곳곳에 들어선 것은 비단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과 몇 년 사이 그와 같은 음식점이 거의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은 분명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하여, 삼청동이나 통의동 주변은 이미 전설적인 장소가 되었다. 사대문 내에서도 중핵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부근은, 서울 사람들조차 '서울을 찾아온 관광객들'과 동일한 시선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 특별한 분위기를 기대하며 숱한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서울에서 가장 구식이고, '고전적인' 이 동네가 가장 도회적일 수 있다는 것도 참으로 경이롭다. 낡은 것이 현대적인 것과 병치되면서, 극히 세련되고 예술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게 된다. 그것은 신비로운 연금술과 같다. Meatpacking District에 스텔라 맥카트니나 알렉산더 맥퀸이 한 자리 차지하면서 빚어내는 '위화감의 멋', 마찬가지로 경복궁과 서울의 극대화된 현대성이 맞물리면서 연출해내는 이질감도 제법 멋스럽다. 그래서 난 추위에 격하게 취약한 여우털 조끼를 입은 승구리를 이끌고, 저 머나먼 시립미술관으로부터 정동길을 가로질러 이곳 'The Place'에까지 오게 되었다. 결론은 기대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제법 잘 꾸며놓은 로비에 비해, 2층 식당이 다소 너저분하게 느껴졌을 뿐. 검소한 가격, 딱 거기에 상응하는 맛. 물론, "또 가겠냐"는 질문을 받으면 흔쾌히 "예"라고 대답할 것이다. 승구리에게 감사를!

 

 

레니 리펜슈탈은 무라사키 시키부 이후 예술 영역에서 가히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여성 중 한 명이다. 에밀리 브론테나 메리 셜리, 버지나아 울프, 그리고 마르그리트 뒤라스에 이르기까지 천재라 불릴만한 여성들은 진실로 많았다. 물론 내 개인적인 판단이니 남들에겐 불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아무튼 레니 리펜슈탈을 이야기하자면, 일단은 매우 특별한 경우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천재적인 여성들' 중 '그저 한 명'으로 치부하기엔 경악스러울 정도로 특이하다. '의지의 승리'나 '올림피아'에서 그가 선보인 놀랍다 못해 황홀하기 짝이 없는 여러 수법들은 '나치즘의 시녀'라는 오명 속에서도, 그 형식적인 과감함이 가져다 주는 감흥을 조금도 시들지 않게 만들었다. 그의 후원자가 히틀러였든 괴벨스였건 간에 도저히 여성으로서는 포착해낼 수 없는 (남성) 동성애적 에로티시즘을 극대화시켰다는 점에서, 리펜슈탈의 재능은 상식을 뛰어넘어 간다. 그리스 조각에서부터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벽화,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남성 누드를 관통하는 (남성) 동성애적 에로티시즘을 정확히 짚어내어, 이를테면 서양 미학의 자기애적 성향(이것은 동성애적 에로티시즘과 등가를 이룬다)을 현대적인 기법으로 총결산해낸 것이다. 언제나 서양의 예술은 관람자가 '남성(하다못해 팔루스를 소지한 사람)'이라는 기본적인 전제로부터 출발을 한다. 이때 '여성적인 것'은 퇴폐적인 것으로 전락하지만, '남성적인 것(이 동성애적 성향이 짙어지면 짙어질수록)'은 지극히 경건하고, 신성한 것으로 상승하게 된다. 실제로 나치즘은 '아름다움'이 갖는 엄청난 힘을 이용하여, 그 황홀경을 통해 정신적인 횡포를 자행하였다. 미적인 것은 인종적인 것을 압도하고, 더 나아가 그것(인종)을 '유관으로 확인 가능한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었는데, 사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리펜슈탈이라는 인물이 우리들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어느 '위대하다'는 수준보다 한층 더 '위대하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야말로 '경악'스럽다. 서양의 집단무의식적 (남성 동성애적) 에로티시즘을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관철했다는 점에서, 리펜슈탈은 현대의 (미적) 영웅이자, 야오이 감성(물론 이것은 '완벽한 여성 환타지'의 한 부류이지만)의 선구가 아닐런지.

*떡볶이랑 튀김이 제일 먹고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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