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스물다섯 살,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 제 자신이 싫습니다.
제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너무 늦은 건 아닐까요?
어제 받은 이메일이다. 입학과 졸업시즌이기 때문일까?
요즘 들어 이런 사연이 부쩍 많아졌다.
대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원하던 학교나 과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
다니는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결혼해서 아이 낳아 웬만큼 키워 놓고 다시 뭔가 해 보려 했지만
현실의 높은 장벽 앞에 낙담한 사람들이 보내온 편지나 이메일이다.
사연에 일일이 답해 주지 못해 늘 미안하다.
대신 이 글이 ‘스물다섯 살 청년’에게뿐 아니라
그들 모두에게 보내는 답장이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20대에는 안달하면서 살았다.
너무 늦은 게 아닐까, 나만 뒤처진 건 아닐까
매일매일 의심하고 남과 비교하며 살았다.
솔직히 지금도 의심과 비교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지만
20대보다는 훨씬 마음이 편하다.
어느 순간 내게 남은 시간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거듭거듭 말해 온 것인데,
사람의 인생을 90세로 생각하고 축구 경기에 비교해 보자.
전반전 45분, 후반전 45분. 그렇다면 25세,
당신은 겨우 전반전 25분을 뛰고 있는 선수다.
그 선수가 전반 전의 반도 끝나지 않은 경기 도중에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거다.
당신 말대로 실책하여 몇 골을 먹었다고 해도 아직 전반전도 끝나지 않았다.
후반전도 고스란히 남아 있지 않는가?
만회할 시간과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제발 늦었다는 생각은 하지 말기 바란다.
늦기는 뭐가 늦었다는 말인가?
전반전 25분을 뛰고 있는 축구 선수가 몇 골 들어갔다고
짐 싸서 집에 가는 축구 경기를 보았는가?
당신의 인생 경기도 마찬가지다.
늘! 점검하고 상기하자. 나는 지금 내 인생 경기에서 몇 분을 뛰고 있는가?
나는 현재 후반전 5분을 뛰고 있다.
나 또한 당신처럼 전반전 초반에는
골을 너무 많이 먹어 도저히 만회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대학입시에 떨어지고 6년 동안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아무리 잘해도 대학생 절반 수준도 못 미치는 임금과 대접을
받을 때면 분하고 억울해서 나도 대학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 나이에 어떻게 다시 입시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두려웠다. 지금 생각하면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 나이’에라니, 그때 내 나이 겨우 스물다섯 살이었는데.
나이로만 따지면 나처럼 뭐든지 늦게 하는 사람도 드물 거다.
대학교는 6년 늦게 들어갔고
남들 20대 전반에 하는
배낭여행은 30대 후반에 했고
첫 직장도 남보다 10년은 늦게 들어갔고
긴급 구호 활동도 내 나이 또래 요원은
벌써 20년 차도 넘는 베테랑인데 나는 이제 7년 차,
햇병아리를 겨우 면한 상태다.
내가 마흔 살이 되던 해 중국에 어학연수를 간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나이에 중국어를 배워서 어디에 쓰겠냐고 했다.
나는 마흔에 배워서 여든까지 40년 동안 쓸 수 있으니
분명히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때 배운 중국어를
지금 구호 활동을 하면서 얼마나 유용하게 쓰는지 모른다.
앞으로 점점 더 그럴 것이다.
무엇을 하기에 늦었다고 생각하는가?
내 경험상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늦게라도 시작하는 편이 백배, 천배 낫다.
내가 만약 늦었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지금 중국말은 중국말대로 못하고 아까운 세월은 세월대로 가 버렸을 거다.
그러나 용기를 내서 늦게 시작하려는 사람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한 마디가 있다.
“늦게 시작한 것을 두려워 말고, 하다 중단할 것을 두려워 하라!”
이건 내 말이 아니라 중국 속담이고 나도 명심에 명심을 하고 있는 말이다.
끝으로 한 마디만 더.
스물다섯 살에 비틀거리는 자신이 싫다고 했는가?
스물다섯 살에 비틀거리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나는 지금도 비틀거린다.
비틀거리지 않는 젊음은 젊음도 아니다.
비틀거리는 것이 바로 성장통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틀거린다고 자책하지 마시길.
누구나 비틀거리면서 큰다.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 한비야 / 좋은생각 2008년 4월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