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낙서를 좋아한다. 그리고 언제, 어디를 가든지 그는 카메라를 휴대하고 다닌다.
목에 걸고 다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 싶다.
“나는 어떤 것 속에서도 영감을 발견할 수 있다. 찾을 수 없다면, 나는 정확히 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저는 사람들이 여행을 하게 되면 옷을 입는 스타일 자체가 변화된다고 믿어요. 특히 스페인이나 프랑스 이태리 같은 나라들로
여행할 때 말이죠. 나라가 가지는 무드에 따라 경향이 변화하는 것이죠. 그리고 텔레비젼이 주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어요."
폴스미스는 1946년 7월 영국 노팅햄에서 태어났다.
노팅햄에서 태어난 폴스미스는 18세가 되기 전 까지 그는 영국을 대표하는 사이클 선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17세 때 심한 사고를 계기로 자신의 진로를 전향해야 했다.
그때 아무런 자격도 경력도 없는 그는, 아버지가 다리미질사로 근무하는 지방 의류창고에서 잔심부름을 해주는 일을 돕게 된다.
그때 그는 의류와 패션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그가 패션계에 진출하게 된 우연의 계기가 된 것이다.
그는 지방 의류창고에서 잔심부름으로 모은 600파운드로, 1970년 자신의 고향 노팅햄의 뒷골목에 ‘Veste pour Homme
(남성을 위한 정장)’라는 이름의 샾을 오픈한다.
그러나 금요일과 토요일, 일요일과 같이 바쁜 날에만 열려 있었다.
비록 주말장사만 연연하며 바쁜 날에만 샾을 오픈했으나, 당시 런던 외곽에 겐조나, 마가렛 오웰 같은 디자이너의 상품을 취급하는
가게는 ‘Veste pour Homme’ 하나뿐라서 주말이면 런던 외곽까지 쇼핑하러 온 손님들로 꽤 붐볐다.
그리곤 정식으로 디자인을 배우지 못한 그는 주중에 남는 시간을 활용하여, 패션 RCA(Royal College of Arts)졸업생인 Pauline Denyer의 협조로 패션과 디자인, 상품 제조등에 대해 가르쳐 주며 저녁에 지방 공예학교를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폴스미스는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셔츠, 판타롱, 재킷등을
생산하게 되었다. 자신의 샾에서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후로, 런던에서 두 자녀를 가진 이혼녀인 폴린과의 숙명적인 만남과 동거로 두 사람은 함께 살기 시작했으며, 현재까지도
이들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1974년까지 좁은 뒷골목에 자리한 그의 샾은 메인 스트리트로 확장할 만큼 성장해 나갔다.
너무나 우연한 계기로 패션과 연을 맺은 이후의 성과였으며 그것은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그의 나이 20살 때, 노팅햄 뒷골목에 첫 번째 부티끄를 경영하면서 부터였다.
그는 자신의 삶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Paul Smith' 의 탄생.
1976년까지 폴은 이태리 셔츠 제조업체와 국제 울 협회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한다.
이 시점에서 그는 파리에서 'Paul Smith' 라벨이 착용된 첫번째 컬렉션을 선보였다.
'Paul Smith' 라벨을 자신의 상표에 직접 도용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