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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는 다시 돌아온다

김영환 |2009.01.10 18:35
조회 100 |추천 0

 

‘인터넷의 경제 대통령’ 미네르바가 체포되었다. 작두 탄 무당마냥 시장근본주의자들이 불러올 파국을 예언했던 ‘고구마 파는 노인’. 그 미네르바가 ‘허위사실 유포죄’로 체포되었다. 아고라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몇 편의 글을 올렸을 뿐인 ‘미네르바’라는 하나의 필명으로 인하여 온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 서울대와 미국의 명문대를 나온 재경부장관 ‘만수’가 전문대 출신의 ‘백수’보다 못했다는 우스개소리가 들린다. 무슨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대통령이 지하벙커속에서 지휘한 첫 번째 ‘작전’은 일개 인터넷 논객의 체포였다. 이미 극에 달한 아노미 속에서 방황하던 대중들은 이 설명불가한 현실에 그냥 넋을 놓아 버렸다. 이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고 떠받친다고 생각했던 모든 질서와 믿음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미네르바는 한사람이 아니다

 

체포된 미네르바가 가짜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것은 전문대를 나온 30대 초반의 무직자라는, 체포된 미네르바의 초라한 ‘스펙’에 기인한다. 전문가들조차 혀를 내두르게 했던 ‘빵빵한’ 실력을 보여주었던 미네르바가 그런 ‘삼류 찌질이’일 리가 없다는 생각인 것이다. 이러한 미네르바 가짜론은 한국 사회에 팽배한 줄세우기식의 망국적 학벌주의 관념에서 기인한다. 아니나 다를까, 한나라당과 수구언론은 얼씨구나 하고 이러한 학벌주의 관념에 기대어 미네르바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 익명의 논객 미네르바를 학력위조범 신정아씨와 비교하면서, 그들의 주특기인 본질을 흐리는 기만적 흑색선전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단순한 가짜론과는 다른, 미네르바가 두 명 혹은 그 이상의 복수자일 수 있다는 주장은 흥미로운 근거들을 내세운다. 특히 이미 예전에 모 언론매체가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50대 초반의 증권맨’이라는 ‘미네르바의 정체’를 보도한 바가 있었다는 사실이 있다. 그리고 그 동안 미네르바가 올린 글에서 보이는 ‘고급 정보’들은 도저히 관련업종에 몸담지 않은 일반인이 얻어낼 수는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문체나 글의 깊이 등으로 볼 때 그동안 아고라에 올라온 ‘미네르바’의 글은 모두 한 사람이 쓴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또 아고라에서 ‘미네르바’가 사용했던 IP를 추적한 결과 지금 체포된 미네르바가 살던 집과는 전혀 다른 서울의 모처로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미네르바가 체포되면서, ‘고구마 파는 노인’의 정체는 오히려 점점 더 안개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미네르바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이젠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미네르바는 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미네르바들은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아고라에서 미네르바가 폭로한 것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고급 정보’를 통해 포착한, 탐욕스러운 대자본과 그에 이용당하는(혹은 그와 결탁한) 정부기관의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그가 폭로와 함께 던진 메시지는 ‘착취당하는 천민들이여 매트릭스를 깨라’ 였다. 때로는 ‘내 마음속에서 한국을 지운다’는 거친 사자후까지 마다않으면서 그가 했던 말은, 스스로 배우고 살펴서 자신들을 속박하고 착취하는 매트릭스에서 탈출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매트릭스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신기루에서 눈을 떼고, 추악하고 끔찍한 현실의 어두운 심연을 직시하라고 일갈하였다. 이러한 미네르바의 메시지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절감해온 사람들에게는 이미 낯설지 않은 것들이었다. 또 그렇지는 못했더라도 현실의 모순과 고통을 느끼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막힌 곳을 뚫어주는 메시아의 가르침이었다.

아고라라는 인터넷 공간에서 미네르바는 그냥 글을 올리는 한 유저일 뿐이다. ‘인터넷의 경제 대통령 미네르바’를 만든 것은 미네르바라는 아이디로 글을 올린 하나의 혹은 몇몇의 유저가 아니라, 그 글에 동의하고 공감하며 행동해 온 수많은 불특정 다수의 미네르바‘들’이었다. 지금 검찰이 미네르바를 체포한 것은, 미네르바라는 ID를 쓰던 한 네티즌을 체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네르바를 체포한 자들은 자신들이 ‘불온세력을 발본색원’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착각은 자유다. ‘미네르바 현상’을 만든, 불특정 다수의 미네르바‘들’은 여전히 불특정의 공간에 시퍼렇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은 다음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미네르바의 귀환을.

 

부엉이의 목을 비틀어도 밤은 온다.

 

지혜의 여신인 미네르바의 새 부엉이. 부엉이는 황혼의 새다. 태양이 서산으로 지고 노을과 함께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붉게 물드는 진청색의 저녁 하늘로 날아오른다.

어둠이 점점 짙어지는 지금은 한 시대의 황혼이다. 파국을 맞은 신자유주의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몰아넣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는 그 상황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러한 현실을 정확히 보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 또한 아무도 확고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권력자들과 기득권자들은 아직도 이 짙어가는 어둠을 시대의 여명이라고, 밝아오는 새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새 시대 새 희망'이라는 신기루의 마법으로 대중의 눈을 속이려 한다. 그러나 눈앞에서 현실의 어둠은 점점 짙어가고 있을 뿐이다.

참담한 현실에 놓인 대중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희망'이라는 신기루를 바라보며 여명이 밝아오길 기대해보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짙어가는 어둠에 하나 둘 속절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곤두박질해갈 뿐이다. 그런 그들의 머리위로 날아오른 황혼의 미네르바는 곧 다가올 칠흑같은 밤의 전령사이자, 심연의 어둠 속에서 새로운 대안을 준비하려는 의지의 등불인 것이다.

지금 여명의 권력자들은 진실의 노래로 신기루를 흩어버리는 황혼의 부엉이를 붙잡아 목을 비틀려 한다. 하지만 아무리 부엉이의 목을 비틀어도, 이미 밤은 오고 있다. 밤이 오면, 미네르바는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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