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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김성훈 |2009.01.11 14:51
조회 774 |추천 0



 역설적이게도 서양의 제국에 저항하는 이론적 기제로서의 주변부 '국사'는 이처럼 유럽의 역사를 대문자 역사, 즉 비유럽 지역의 역사를 설명하고 비교하며 이론화하는 마스터 코드로 간주하는 식민주의의 에피스테메에 기댄 것이었다. 그것은 정치적 적대관계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국사'와 식민지의 '국사'를 서로 소통케 하고 연결시켜주는 인식론적 고리였다. 주변부 민족주의자들이 '국사'를 통해 자신의 고유한 민족적 정체성을 강조하고 근대를 향한 독자적인 맹아론을 강조하면 할수록 서양의 헤게모니가 강화되는 역설이 성립하는 것도 이 지점에서이다.

 

        - 임지현, 국사의 안과 밖 -헤게모니와 '국사'의 대연쇄(連鎖)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23쪽.

 

 

 

시원하다.

임지현씨의 글은 이렇게 나를 시원하게 해준다.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

파시즘과 내셔널리즘이 굳건히 자리를 잡고있는 이 사회에서, 남북한, 일본, 중국을 잇는 적대적 공범관계의 해체를 위한 지식인들의 작지만 큰 운동.

이 책은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이하 포럼)이 추구하는 지향점과 활동의 성과를 보여주는 지표이자, 불편한 진실을 알리려는 포럼의 활동 그 자체이기도 하다.

 

임지현, 이성시, 미야지마 히로시, 이영훈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한일의 지식인'들이 '일국사적 민족주의 역사학을 비판하며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모였고, 소통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결론은  '국사의 해체'이다.


 

 

그러나 왜 한국과 일본인가.

이들 역시 '국사'를 해체하는 일은 일국적 차원에 갖혀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일국적 차원에서 국사를 해체하는 것은 다른 국가의, 권력에 의한 공식적 역사서술을 반사적으로 정당화하고 그것의 도미노효과로 동아시아 민족주의의 적대적 공범관계를 강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최소한 동아시아 4개국에서는 국사의 해체가 병진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 북한과 중국에서는 '국사'에 대한 공식적인 비판 자체가 불가능하고, 남한과 일본에서도 비판자들은 주류학계에서 배척당한 아웃사이더에 머물고 있을 뿐.

 

이것이 포럼이 처한 현실이다.

따라서 포럼은 아래와 같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사의 해체는 동아시아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작업임을 많은 연구자들이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 작업은 한국에서의 국사 해체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 국사의 해체 방향은 국민(민족)국가의 형성이 뒤늦고 남북 분단의 극복을 통해 아직도 국민(민족)국가의 형성을 완성하지 못한 한반도의 경우보다는 식민지를 폭력적으로 억압한 경험을 가졌고 현재 군사대국화를 서두르는 일본이나, 이라크전쟁으로 세계를 제패하려는 미국, 경제적, 군사적 대국으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는 중국 등의 국가에서 앞장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

                        - 이영호, 한국에서 '국사' 형성의 과정과 그 대안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458쪽.

 

 

또한 한국과 일본이 갖는 공통점,

즉 고도의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이룩한 사회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한일 국사의 해체로 성립할 시민의 역사학이, 결국 그 의도와는 다르게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기제로서 전용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국사를 해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국을 정당화하는 기제로서의 일본이나 중국의 '국사'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지만, 식민주의 혹은 패권주의의 피해자이기 떄문에 우리의 '국사'가 그들의 '국사'보다 정당하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동아시아의 역사학을 잇는 '국사'의 연쇄구도에서 이들은 가해자 - 피해자의 관계가 아니라 인식론적 공범관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국사'를 해체한다고 해서 일본이나 중국의 '국사'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국사'를 향한 방아쇠가 어디에서 당겨지든 그것은 적대적으로 공존하는 '국사'의 연쇄고리를 끊음으로써 동아시아 어느 국가든 역사의 기억을 전유하려는 시도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이 된다.

 

       - 임지현, 국사의 안과 밖 -헤게모니와 '국사'의 대연쇄(連鎖)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31~32쪽.

 

 

 

 

매우 급진적이고, 또 과감한 논리이다.

물론이다. 누군가는 이 사슬을 끊어야 한다. 스스로를 지키려 철갑옷을 입지만, 그 철갑옷에 돋은 쇠가시는 타자를 위협한다. 동시에 그 무거운 철갑옷은 내부를 억압한다.

갑옷을 벗으면 될 일이다. 내가 남을 위협하지 않으면, 남도 나를 위협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갑옷을 벗기는 무섭다.

 

그렇다. 이영호의 주장은 사실이다.

왜 하필 우리인가.

굳이 민족국가의 건설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보다 먼저 갑옷을 벗어야 할 나라들이 있다. 강한 자가 앞장서면 될 것 아닌가.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 그들은 갑옷을 벗지 않는다. 벗을 생각이 없다. 그러기에 위험을 무릎쓰고 우리가 벗어야 하는 것이다. 억울하다, 비합리적이다, 말도 안된다. 그렇다. 그러나 말도안되는 이것이 현실이다.

 

그들의 국가권력은 강하다. 공산당 일당독재의 중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 겉보기에는 고도의 민주국가인 일본도 실은 자민당 백년대계가 이어지고 있다. 오직 우리만이 독재자를 쓰러뜨리고 피로써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비록 우리는 최근에 와서 정치혐오와 탈정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직무유기의 시민들을 만들어 냈고, 획일적인 군사문화에 종속되어 서로 죽일듯 싸워대는 파시스트들이 좌우에 가득하지만, 그래도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자각하는 시민들이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일본은 우리만 못하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이 우리가 먼저 '국사'를 해체해야 할 첫번째 이유다. 이 동아시아에서 스스로 '국사'를 해체할 수 있는 사회는 이곳뿐이 없다.

비록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내셔널리즘과 극단적인 좌우대립에 설 자리가 없는 비판자들이지만, 이 동아시아에서 이 사회에 제일 먼저 이러한 비판자들이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직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까닭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이영호의 주장이 맞다. 우리는 민족국가도 달성하지 못한, 모던도 성취하지 못한 뜨내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렇기에 우리가 해야만 한다. 

 

 물론 통일국가의 건설이 근대 역사학의 종착점으로 설정되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민족통일과 그에 대한 동력으로서의 강렬한 민족주의를 긍정하는 우리 사회는 이러한 근대 민족주의의 과제가 지워져있지 않은 일본이나 중국보다 더욱 비판자들이 자리잡기 힘든 토양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를 안은 채, 내셔널리즘으로 무장한 강력한 이웃 사이에 끼어있는 우리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그토록 통일을 염원해온 이유도 실은 여기에 있다.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러나 실은 알고있다. 이렇게 내셔널리즘이 이루는 적대적 공범관계가 심화되어가는 동아시아에, 언젠가는 충돌이 생길 수 밖에 없음을. 노무현이 말한 동북아 균형자론도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방도를 찾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약하다. 100년 전 대한제국의 비극을 우리가 다시 겪지 말라는 법이 어디있나. 내셔널리즘의 충돌이라는 미래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길은 없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하나 뿐이다. 바로 내셔널리즘 자체를 해체하는 것. 설령 우리가 열린 민족주의, 건전한 내셔널리즘을 성취하더라도 중국과 일본의 내셔널리즘이 건전해 질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까? 가능하더라도 그것은 '국사'의 해체가 선행되었을 때의 경우다. 결론은 일국사의 틀을 벗어던지는 동아시아 각국에서의 '국사'의 해체 뿐이다. 그리고 그것의 시작은 동아사이의 '중간자'인 우리 사회다.

 

 

 

 

 먼저의 현실이 우리가 국사를 해체할 수 있는 이유라면, 나중의 현실은 우리가 국사를 해체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우리에겐 할 수 있는 능력도, 해야 하는 이유와 시급한 필요성도 모두 갖추어져 있다. 민주주의의 쟁취 경험과 '중간자'로서의 위상.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물론 앞서 밝혔듯, 포럼(포럼 뿐만이 아니라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있는 비판자들)이 처한 현실은 가혹하고, 한계에 직면해있다. 이곳저곳에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또한 국사의 해체 이후에 대한 뚜렷한 전망도 없다. 우리가 국사를 해체하는 것이 적대적 공범관계의 연쇄를 끊는 첫 걸음임에는 분명하지만, 과연 국사를 해체하는 것 만으로 적대적 공범관계가 해체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시민의 역사학이 어떻게 해야 신자유주의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지도 아직 모른다.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감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반드시 대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선 지금 필요한 것은 변화의 촉발. 준비가 덜 된 행동일지도 모른다. 그 준비가 덜 된 행동이 무엇을 가져올지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지금 이대로 가면 모두가 죽는다는 위기감, 그리고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 그것이 행동을 정당화해 줄 뿐.

 

 

 

 대안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로서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 '동아시아 역사포럼'의 유일한 대안이다. 중요한 것은 우선 개별 민족국가-동아시아-유럽세계로 이어지는 세 층위에서 '국사' 패러다임이 만들어내는 복합적 헤게모니를 해체하여 역사학의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한다. 민주화된 역사학이 소외된 기억의 끄트머리를 끄집어내고 이들에게 말 걸기를 시작할 때, 그래서 현실화된 역사의 길을 추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대안적 과거의 가능성들을 드러낼 때, 대안은  스스로를 드러낼 것이다.

      - 임지현, 국사의 안과 밖 -헤게모니와 '국사'의 대연쇄(連鎖)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32~33쪽.

 

 

 

PS:

 사실 국사의 해체를 통해 추구하는 것은 동아시아 국가권력 간에 형성된 적대적 공범관계를 해체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적대적 공범관계에 의해 억압당하고 배제되며 은폐된 '시민'의 권리와 밑으로부터의 역사상을 복원하려는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다만, 위의 글에서 '국사'의 해체와 이의 필요성, 불가피성에 집중하다보니 이와같은 중요한 사실이 가려져 버렸기에 여기에 따로 밝히는 바이다. 부디 이와 같은 사실을 염두해 두고 책을 대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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