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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몽 (悲夢: Dream, 2008) 이나영, 오다기리 죠

박현대 |2009.01.18 01:28
조회 211 |추천 0

 

"내가 나비의 꿈을 꾸는 것인가 나비가 나의 꿈을 꾸는 것인가."

 

昔者莊周爲胡蝶 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然周也 不知 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 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장자가 꿈속에 나비가 되었는지 또는 나비가 꿈속에 장자가 되었는지를 모르겠다]

 

“예전에 나는 나비가 된 꿈을 꾼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기꺼이 날아 다니는 나비였고, 아주 즐거울 뿐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장주(莊周)임을 조금도 지각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꿈에서 깬 순간 분명히 나는 장주가 되었다. 대체, 장주가 나비 된 꿈을 꾸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장주와 나비는 별개의 것이건만 그 구별이 애매함은 무엇 때문일까. 이것은 사물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도(道)의 세계에서 보면 만물이 다 제일(第一)하다.

장주도 호접이고 호접도 장주라. 꿈도 현실이고 현실도 꿈이다.

莊子 - 胡蝶之夢, 장자 - 호접몽(호접지몽)

 

 

 

 

오다리기 죠가 꿈을 꾸면 이나영이 꿈의 내용대로 행동한다.

 

장미희가 그들을 두고 말한다.

 

 

 

 

"두분이 반대군요. 꿈을 통해 헤어진 애인을 보고싶어하고

 

몽유상태에서 싫어하는 남자를 찾아가는 군요."

 

 

 

 

 

"白黑同色"

 

둘은 반대이면서 하나이다.

 

오다기리 죠가 이나영이고, 이나영이 오다기리 죠인 것이다.

 

처음부터 그들은 대놓고 색을 맞춰 옷을 입고 나오기 시작한다.

 

오다기리 죠는 흑색을

 

이나영은 백색을..

 

 

이렇게 작가가 세팅해 놓은 장치들

(흑백의 의미, 내면과 현실에서 오다리기죠와 이나영의 역할)과

장미희의 추가적인 설명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알록 달록한 색의 경계에 서있는 흑과 백

 

 

흑은 현실에서 떠난 애인을 그리고

 

백은 꿈에서 애인을 찾아간다.

 

오다기리 죠는 의식이고 현실이며 이나영은 무의식이고 내면이다.

 

오다기리 죠(의식)가 잠들면 이나영(무의식)이 활동을 시작한다.

 

 

 

 

오다기리죠가 꾸는 꿈 때문에

 

이나영은 보기 싫은 옛애인을 찾아가야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오다기리죠는 그냥 옛사랑을 잊지 못하는

 

나약한 남자일 뿐이고

 

이나영은 오다기리 죠 때문에 싫어하는 남자를

 

찾아가야하기에 오다기리죠에게 짜증을 내고

 

자지말라고 윽박 지른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영화를 보면 오다기리 죠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성격으로 비춰진다.

 

"졸린걸 어떻해요... 꿈에서라도 보고싶어요.. 어쩔수가 없어요..."

 

따위를 말을 하며 무기력하고 나약한 말을 한다.

 

이에 반해 이나영은

 

"졸지마요! 꿈꾸지 마요! 자기만 해봐요!?!" 라며

 

오다기리 죠를 윽박지르며

 

오다기리 죠와 정 반대의 성격으로 나타내는데,

 

영화 도입부터 둘은 하나라고 했듯이

 

그들통해 둘의 관계가 하나의 내면을 나타내며

 

그들의 갈등이 한 개인의 심적인 갈등이다.

 

즉, 나약한 현실의 모습을 오다기리 죠의 모습을 통해

 

그리고 이를 다그치는 이나영을 통해 내면의 갈등을 보여준다.

 

 

옛 애인과의 사진...

 

떠난 사랑에 대한 잊지못하는 기억이다.

 

이나영이 상자를 열려고 하자 오다기리 죠가 말한다.

 

"열지마요."

 

하지만 이나영은 상자를 벌컥 열어버리고

 

칼같이 말한다.

 

"버려요."

 

사진은 지난 기억의 상징이다.

 

잊어야 할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잊지 못하는

 

나약한 현실의 모습을 이나영이 비판하지만

 

오다기리 죠는 결국 아무것도 버리지 못한다.

 

이렇게 영화는 옛 사랑의 상징들을 통해 내면의 갈등과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그리고 갈등과 경계의 변화를 보여주며

 

전개된다.

 

 

보고싶어요. 어떻게해요... 따위의 말이나 하던

 

나약하기만 했던 현실의 오다기리 죠도

 

차츰 이나영의 말을 받아드리고 나름 노력을 하기 시작하다.

 

사진을 찢어 버리고 졸음(유혹)을 이기기 위해

 

바늘을 머리에 꼿는 등

 

나름대로 강압적인 방법을 구사한다.

 

 

하지만 결과는 역효과

 

억눌린 감정은 (이나영 = 무의식)을 통해

 

더욱 극단적인 방법으로 꿈에 나타나고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내면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

 

 

갈등의 폭발...

 

현실의 오다기리 죠는 무기력하게

 

왜그랬어요? 왜요? 따위로 무의식을 질책하고

 

무의식의 이나영은 분노에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뜬다.

 

결국 갈등의 절정...... 

 

 

 

갈등의 절정 이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정면으로 만나는 곳

 

이곳에서 서로는 서로를 피하지 않고 과거의 상처 앞에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 곳에서 의식이 무의식이되고 무의식이 의식이 된다.

 

 

스토리 전개 상 실제 일어난 일도 아니고

 

이 장면을 통해 갈등이 해결된 것도 아니지만

 

갈등과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의식은 무의식을 무의식은 의식을 차츰 이해하게 된다.

 

즉, 떠난 사랑에 대한 상처 분노 좌절 시련을

 

그리고 어쩔 수 없음을 인식한다.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분노 좌절 슬픔 상처만 안고

 

주저앉아 버린 옛기억들에게

 

현실의 옷을 입은 무의식의 이나영과

 

꿈의 옷을 입은 의식의 오다기리 죠는

 

각자에게 신발을 신겨 주며 이제 그만 떠나가 주기를 바란다.

 

벗어 던져 버렸던 신을 신고,

 

떠난 사랑의 기억은 이제 사라져 주기를

 

주저앉아 버린 무력한 나는 일어나 제 갈길을 가주기를 바라며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결국 상처와 아픔을 통감하게 된 무의식의 이나영은

 

흑색의 옷을 입고 의식의 오다기리 죠를 찾아온다.

 

 

 

의식과 무의식이 하나라는 것을 알게된 오다기리 죠도

 

둘을 수갑으로 채워 하나로 묶어 버린다.

 

 

처음 무의식의 이나영은 의식(오다기리 죠)에게

 

자지마! 꿈꾸지마! 라며 윽박 지르기만 했지만,

 

차츰 그 슬픔과 아픔을 이해하게 되고

 

결국 그 감정을 감싸 않고자 한다.

 

 

수갑은 "강제"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무의식이 의식을 이해하고자 했지만,

 

현실과 꿈이 엄연히 갈라져있듯이

 

결국은 따로 떨어져 나가려 한다.

 

하지만 수갑은 의식과 무의식을 강제로 묶어둔다.

 

 

현실은 그렇게 아픔을 덮어두고

 

꿈은 그런 현실을 덮어 주고 그렇게

 

서로 내면이 외면을 외면이 내면을 감싸면서

 

서로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강제적으로 서로를 억압하려고 한 수갑도

 

얼마 하지 못하고 서로를 놓친다.

 

수갑을 열쇠를 수갑 무의식 바로 앞에 둠으로써

 

현실의 오다기리 죠의 안일함이 나타나고

 

또한 그러한 오다기리 죠에서 풀려난 무의식은

 

결국 다시 옛 사람을 찾아가게 된다.

 

여기서 모든 걸 굽어보고 있는 부처의 모습이 의미 심장하다.

 

김기덕감독의 영화에는 왠지 불교적인 상징이 곳곳에 숨어있다.

 

 

억압되 있던 무의식은 결국 떠난 옛사랑을 죽여버린다.

 

여기서 영화는 결국 현실의 오다기리 죠 자신이

 

사랑을 죽이는 것으로 묘사된다.

 

즉, 영화에서는 이나영이 옛 애인을 죽인 것으로 나오지만,

 

꿈을 통해 본 내면에서는 오다기리 죠가 떠난 사랑을

 

죽임으로써 미결의 감정을 끝내려 한다.

 

경찰들이 들이 닥치고 오다기리 죠는

 

"제가 죽였어요. 전부 제가 한일입니다!" 라고 외친다.

 

 

>

 

과연 잊혀지지 않는 감정들을 어떻게 해결할까.... 하며

 

내심 기대하며 봤는데.. 결국은 사랑을 죽임으로 결론을 내다니..

 

조금 슬프고 안타깝기도 했지만,

 

어쩌면 이게 현실의 현실일 지도 모른다.

 

지나간 옛 기억을 지우는 것은 어쩌면

 

극단적으로 기억을 죽임으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 보니 얼마전에 내가

 

게시판에 끄적인 그림과도 비슷한 내용이길래

 

순가 좀 찌릿 하기도 했는데..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하겠다면

 

내면에서 그 감정에 대상을 죽임으로써

 

잊지 못할 감정을 해결하려고 한 점에서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 어떻게 되는 건 아니지만

 

내면에서는 "내가 좋아했던 그 사람은 죽었다. 지금 있는 사람은

 

내가 바라던 그 사람이 아니다." 라고 자기 암시하며

 

풀수 없는 감정을 그냥 죽여 버리고자 하는 것이다.

 

뭐, 암튼, 해석이야 개인에 따라 다른 것이니....넘어가고

 

 

>

 

 

영화의 결말은 오다기리 죠의 자학하는 모습으로 도배된다.

 

결국 현실의 오다기리 죠는 내면의 자신을 이기지 못한

 

혹은 (이나영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자지않기위해 (혹은 자신을 자책하며) 자학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감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해버리고 만다.

 

자살하기 직전 이나영을 찾아가 말한다.

 

"미칠것 같아. 지옥같아."

 

"아직도 남은 꿈이 있나요? 무슨 꿈이든 원망하지 않을 께요"

 

-오다기리는 이나영 목의 나비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죽으면 꿈도 사라져. 죽는거랑 자는 것은 틀려"

 

-

 

결국 무의식과 의식의 결합은 죽음으로 이뤄질 것임을 암시하고

 

떠나는 오다기리에게 이나영은 말한다.

 

"사랑해요. 잘가요"

 

 

그리고 죽은 오다기리 죠에게

 

장자의 호접몽에서 처럼

 

이나영 즉, 무의식이자 꿈이 나비 그자체 되어 오다기리 죠

 

현실이자 외면의 세계에 날아가 손에 내려 앉는다.

 

 

결국 그들은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내면과 외면은

 

죽은 후에야 수갑없이 하나가 될 수 있다.

 

 

 

 

 

///

 

영화의 장치들...

 

항상 그렇지만 김기덕 영화는 장치와 설정 상징의 난무다.

 

그리고 그런걸 숨기거나 돌려 이야기하지않고

 

그냥 깔끔하게 딱 깨놓고 드러내 놓는다.

 

(내 스타일이다.ㅋ)

 

영화내내 오다기리 죠는 일본어를 이나영은 한국어를 쓴다.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의식과 무의식 내면과 외면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결국 내면과 외면의 세계는 서로 다른 나라 말을 하고있는

 

설정이라니!! 굉장한 김기덕감독의 센스다.

 

그리고 오다기리 죠가 죽어서 떠 올리는

'심우도'의  기우귀가(騎牛歸家).

 

 

심우도(십우도)는 도교의 팔우도에서 유래된 것으로

 

소와 동자승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도가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 중 6번째 그림의 기위귀가는 동자승이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여유롭게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아무런 장애가없는 자유무애의 단계를 나타낸다.

 

즉, 오다기리 죠는

 

눈을 감고 기우귀가를 회상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죽음으로써 그 결지에 올랐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자유무애의 경지는 곧

 

내면과 외면 무의식의 자아와 의식의 자아가 일치되는 것이며

 

이는 곳 이나영과 다시 합쳐질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들이 절(파주 고령산 보광사를 찾아

 

종과 목어를 치고 돌을 쌓고... 불가적인 상징 등을 통해

 

해탈과 깨달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의식의 무의식이 항상 찾아 가는 그곳의 이름은

 

'樂古齋' 악고재 이다 즐길 '락',  옛 '고'..

 

옛 것을 즐기는 집이란 곳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다니엘 헤니의 집으로 나오고

 

또 우리 결혼했어요의 화요비 환희 커플의 게스트 하우스로

 

유명해진 북촌 한옥마을의 게스트 하우스란다.

 

 

 

 

락고재 혹은 낙고재, 악고재 樂古齋

 

말 그대로 옛 것을 즐기는 집에는

 

무의식이 옛 사랑의 기억을 만나기 위해 찾는 곳이다.

 

장소가 옛 기억 그 자체를 의미한다.

 

 

/

 

음.... 이나영이 보고싶어서 봤는데,

 

오다기리 죠가 이렇게 잘생겼나...하고

 

오다기리 죠 김현중 좀 닮지 않았나?

 

잘생기면 다 그렇게 그 모습으로 대동단결인가?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ㅋ

 

암튼 다 쓰고 보니 완전 스포일런데,

 

뭐 보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테니..

 

각자 보는 사람의 해석이 있겠지....

 

아무튼 오랜만에 완전 집중해서 본영화

 

김기덕 감독의 표현력도 업그레이되고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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