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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무궁화꽃 동두천의 어린이 [2009.01.13.화 - 동두천 "동두천초등학교"]

김선우 |2009.01.18 10:37
조회 336 |추천 0

★ 우리는 무궁화꽃, 동두천의 어린이 ★

2009.01.13.화 - 동두천 "동두천초등학교"

  

▲ 위성으로 본 동두천초등학교 위치.

 

 

작년 어느 때인가부터 출신 학교를 찾아가 보고 싶은 맘이 들었다. ------------------------------------------- PROLOGUE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맞 장구를 쳐준 세영이와 함께 출신 학교를 찾아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때 아님 또 언제 가보겠는가...

약속한 날에 사진기를 챙겨들고 세영이와 함께 제일 먼저 동두천 초등학교를 찾았다.

세영이 집이 동두천 초등학교 후문 쪽이라 일단 세영이를 픽업했다.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 한번 오기가 이렇게 힘이 들던지...

학교 교문이 다가올수록 입가에 미소만 자꾸 번진다.

그렇지 않아도 몇일 전부터 졸업 앨범을 들쳐가며 옛 추억에 혼자 많이 웃었었는데...

그런데다 초등학교때 친구 녀석들과 연락이 닿는다 했더니만...

이렇게 학교를 가볼려고 그랬었나 보다

 

 

---------------------------------------------------------------------------------- ISSUE

◀ 동두천 초등학교 후문.

 

 초등학생 시절 봐왔던 후문과는 전혀 달랐다.

그때는 말이 후문이지 절대 후문으로 출입을 할수가 없었음에 상막하기조차 했던걸로 기억한다.

후문뒤에 살던 친구녀석 집에 가려면 정문을 돌아 한참을 돌아가거나 담장을 넘던가 개구멍을 이용했던 기억만 나는데...

아무튼 항상 오픈되 있는것도 신기했고, 깔끔하게 후문임을 보여주는것도 보기 좋았다.

 

 

◀ 본관과 별관을 이어주는 육교.

 

아크릴과 철제로 되어 있는 구조물이였다.

내가 다닐땐 저런건 상상도 못했다.

교무실이나 양호실 갈일 말곤 건물을 오갈일이 없었으니깐...

요즘 애들 너무 편하게 학교 다니는건 아닌가 모르겠다.

 

 

    ▲좌측 입구에서 본 본관.                                   ▲ 우측 입구에서 본 본관.

 

학교 모습이 페인트 칠외에는 정말 변한게 하나도 없다.

그렇게 웅장하게 보였던 모습이 아담해 보인다는거 외엔...

그땐 모든게 왜 그렇게 크게만 보였을까?

내가 작았던걸까?

지금도 작은데...

에휴...

 

 

    ▲ 본관 1층 복도.                          ▲ 본관 2층 복도.

 

마루 바닥이였었는데 시멘트 바닥으로 바뀌었다.

마루 바닥일땐 걸어다닐때마다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요란했었는데...

그때 생각이 난다.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대청소때 두손 다 들어가는 손걸레로 선생님이 주걱으로 왁스를 두드리며 떨어 트려주면 구구단 외우면서 했었는데...

청소 다하면 반장이 선생님을 모시고와 검사받기도 하고...

이런게 다 추억꺼리인데...

그러줄 알았으면 더 추억이 될껄 예상하며 더 많은 추억을 만들수 있었을텐데...

지금에서 후회하면 뭐하겠지만서도...

 

 

◀ 본관 계단.

 

계단을 보고 있으니까 6학년 3층교실 사용할때가 생각이 난다.

수업을 마치고 함께 내려오다가 장난으로 주연이를 밀었는데 계단에서 구르게 한적이 있었다.

착한애였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그 녀석은 그때일을 생각하고 있을까?

이글 올리고 이녀석 싸이 한번 찾아다녀 봐야겠다.

아니!

전교생을 다 뒤져가며 찾아봐야지...

 

 

 

     ▲ 본관 계단 난간.                         ▲ 미끄럼 방지턱.

 

3층까지 구경을 하고 내려오는데 내 눈에 띄는것이 있었다.

계단 난간마다 하트모양으로 볼록 나온 이것!

아래층으로 내려갈때 미끄럼을 타는걸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 놨었다.

이게 그때 그모양 그데로 있을줄이야...

지금 사진을 보면서 글을 쓰는 지금도 다시 웃을수 밖에 없다.

이 사진을 보고 있을 초등학교 동창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생각나냐고...

 

 

◀ 본관 3층 6학년 4반. ①

 

     ▲ 6학년 4반 교실뒤에서 본 교실내부. ②                  ▲ 6학년 4반 교실뒤에 걸려있는 학생들 작품. ③

    ▲ 칠판 상단 좌측에 있는 "단원, 학습목표". ④            ▲ 시간표. ⑤

◀ 주간학습안내문. ⑥

 

① 교실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방학때인지 문이 다 잠겨있었다.

그렇다고 교무실 찾아가 문열어달라고 하기엔 빈손인게 너무 죄송하고...

그렇게 창안으로 보이는 교실을 둘러보다 운좋게 문열린 교실을 찾았다.

6학년때 5반이였던지라 5반을 가보고 싶었지만, 4반까지 줄어있었다.

뉴스로만 보던 현실을 오늘로서야 비로서 온몸으로 느껴졌다.

 

② 태극기 옆에 항상 달려있던 "급훈"이 없다.

없어진건가?

아님 새학기를 맞이하기 위해 정리를 한걸까?

또 대형TV가 눈에 띈다.

우리때는 작은 TV가 천장에 앵글로 짜여진 틀에 갇혀 매달려 있었는데...

 

⑤ 시간표에 적힌 한과목을 보며 정말 오래생각했다.

"재량"수업이라...

재량을 뽐내는 수업인가?

 

⑥ 주간학습안내문에 토요일이 없다.

어찌됬던 나는 시대를 정말 잘못 타고 난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시대를 잘못 타고 난듯해서 한탄하고 있던 중이였는데...

 

 

◀ 화장실.

 

그때나 지금이나 화장실은 변함이 없다.

변한게 있다면 남자 여자를 간막이로나마 구분해 놨다는거...

우리때는 선생님 화장실이나 남자, 여자 구분이 없이 사용했었는데...

뜬금없는 소리지만 지금 애들 노는거 보면 PC방도 없던 그때가 오히려 뛰어다니며 놀수 있기는 최고였던 듯하다.

지금 애들 노는것 만큼은 절대 부럽지 않다.

 

 

◀ 본교 3층 창밖에서 본 국기계양대와 별관.

 

6학년 5반당시 교실옆엔 교실반만한 교실이 있었다.

남는 교과서와 시험지, 그리고 선생님들이 쉴수 있게 테이블과 의자들...

우리반이 그 교실을 담당하고 있어서 청소도 참 많이 했었는데...

그 교실을 청소하다 김수정과 싸우다 남,녀 편갈라 크게 싸운기억도 난다.

왜 싸웠는지는 생각도 나지 않지만...

20년가까이 지난 세월동안 크게 변한건 없었다.

커버린 내 모습외엔...

 

6학년하니깐 담임선생님이 생각이 난다.

옆반 남자담임과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하셨었다.

어쩐지 체육수업을 바꿔서라도 같이 함동체육을 하더니만...

그렇게 결혼할라고 그러셨었나보다.

졸업을 하고 중학교에 들어갔을땐 선생님은 옆학교 생연초등학교로 전근을 가셨었다.

몇명이 모여 생연초등학교로 찾아가 많이 만났었는데 요즘에도 잘 계실까?

 

 

◀ 방송실.

 

1층 교무실옆에 있던 방송실이 2층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때 송수정과 나란히 학교소식을 전했었는데...

아나운서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방송실로 달려가 면접까지 봤었었다.

누가 추천해서도 아닌 내가 자발적으로...

운좋게도 합격되어 일주일에 한번씩 학교소식을 전교생들에게 TV로 녹화중계했었다는...

그래서 그랬나?

6학년 졸업할때 생긴 SBS방송국에서 일하겠다고 다짐도 했었다.

 

 

◀ 첨성대 축소물.

 

본관 옆에 있던 식물학습장이 없다.

대신 조그만하게 만들어진 첨성대가 있었다.

식물학습장에서 놀던 생각도 많이 났었는데...

왜 없어졌지?

 

 

◀ 본관앞에 세워진 실내화 걸이대.

 

가물가물 하지만 6학년때는 우리도 저런게 잇었던거 같다.

그전엔 없어서 운동회 연습으로 운동장에 모일때면 실내화가방을 앞 화단에 흩어놓고 연습을 했었다.

그러다 연습이 끝나고 자기 실내화가방을 찾는데 참 오래걸렸었지...

여자애들은 여자케릭터가 그려진 가방을, 남자애들은 로봇케릭터가 그려진 가방을...

학교앞 문방구에서 산터라 특색없이 그가방이 그가방이였다.

 

그때 실내화가방을 누구와 바뀌었는데 그녀석이 안돌려줘서 큰누나를 동원해 학교, 학원, 그녀석네 집까지 쫓아가며 악착같이 받았었었다.

그녀석 얼굴은 생각나는데 6년동안 한번도 같은반 된적이 없던터라 이름도 모른다.

참고로 우리 큰누나가 내친구녀석들 엄마와 동창인 경우도 있다.

 

 

    ▲ 본관 중앙입구에서 본 우측화단.         ▲ 본관 중앙입구에서 본 좌측화단.

 

본관은 언덕위에 있다.

운동장과 본교 사이에 언덕에 있던 화단.

저기서 야외청소 담당하게 되면 그렇게 뛰어다니며 놀았었는데...

 

 

   ▲ 조회대.

 

조회를 설때면 저기 올라가 상을 받는게 소원이였다.

아주 안받은건 아니지만 가끔 미술로 승부를 건 기억이 난다.

그래도 동아일보 주최대회에 나가 상좀 탔지 아마...

근데 그 흔하디 흔한 개근상은 왜 못받은걸까?

 

 

   ▲ 별관 앞에 세워진 기념비.                ▲ 본관 좌측에 세워진  "스승의 은혜" 동상.

◀ 본관 우측에 세워진 "세종대왕" 동상.

 

학교에 보면 동상으로 이루어진 괴소문이 참 많았다.

우리 학교도 예외는 아니였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순신장군"동상과 "유관순열사"동상때문에 무섭기까지 했었다.

밤 12시만 되면 "이순신장군"동상과 "유관순열사"동상이 깨어나 싸운다지?

왜 싸우는지도 몰랐지만 정말 누구하나 거짓말이라고 자신있게 말하진 못했었다.

그만큼 그때 우린 너무 순수했다는거...

그나저나 3학년때 백년만에 찾아오신 홍콩할매는 100년후 또다시 학교 화장실을 찾으실라나?

하하하~~

 

 

                                               ▲ 별관. ▲

 

여기서 1학년부터 4학년까지 공부를 했었다.

정확히 말하면 2학년때까지 이자리에 있던 2층짜리 건물에서 공부하다가 허물고 신축한후 3학년과 4학년을 보냈다.

이 건물을 보니 옛생각이 절로나네.

 

생각하기 싫은 1학년담임은 아마 돌아가셨겠지?

그때 당시에도 할아버지셨는데...

금품이나 밝히시고 정말 선생으로써는 자격이 없으셨던 분이셨었다.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때 자전거를 타시면서 지나가는 모습은 많이 봤었지만 이젠 볼수 없는 선생님.

 

또 3학년때가 생각이 난다.

담임으로 배정받고 얼마지나지 않아 전근을 가셨다.

그렇게 정말 선생님 보내면서 운건 처음이였었는데...

그리고 새로 오신 담임선생님...

우리가 말 안듣자 오시자마자 단체기합을 주셨다.

그런후 혼자 우셨었다.

그모습에 어린나이에 반해 보낸 선생님을 금방 잊을수 있었었다.

푸하하하~~

 

5학년 담임선생님도 생각이나네.

내가 좋아한 선생님중에 한분이셨다.

전학교과정을 마치고 롯데월드에 가이드로 취직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학교 안내를 맡게 되었는데 따라오신 학부모중에 5학년 담임선생님이랑 너무 닮은분이 계었었다.

나중에 헤어지기전에 물어보니 아니란다.

허무했지만 안내를 하는 내내 담임선생님을 생각하며 맘 졸였던 시간이였었다.

 

 

                                               ▲ 강당. ▲

 

별관옆에 새로운 건물이 있다.

안을 들여다 보니 강당이였다.

그때는 본관 우측에 있던 2층건물 절반을 강당으로 개조해서 사용했었는데...

지금은 허물고 없어졌지만...

 

6학년때 우리 초등학교에서 첨으로 합창단이 창단되었다.

신청자를 받아 테스트를 거쳐 나또한 입단했었다.

최성우와 김수정과 함께...

그런데 우리는 강당에서 연습중 연습도 게으르게하고, 틈만나면 창문넘어 도망갔었던 기억밖엔 나질않는다.

나중에 합창대회 나갈때 우리만 유니폼을 안줬다.

일찌감치 명단에서 제외됬었다는...

ㅋㅋㅋ

 

 

◀ 야외 학습장.

 

위치는 그데로인데 뭔가 많이 변했다.

시멘트로 급조해 만든 의자는 없고, 잘 짜여진 나무의자에다 테이블까지 놓여져있다.

그땐 한번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다보면 송충이한테 습격을 많이 받아서 기피장소중에 하나였는데...

그옆에 푸세식화장실은 얼마나 냄새가 많이 났었는지 근처도 가고 싶지 않았었다.

다행이 지금은 푸세식 화장실의 모습은 없었다.

  

 

◀ 축구부 숙소.

 

그 야외학습장에 있던 냄시나는 푸세식 화장실자리에 축구부 숙소가 세워졌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있던데...

그래도 여기서 "축구국가대표 선수 김두현"이 탄생했다.

수원에 있다가 자기 이익만을 위해 타구단으로 떠나서 욕을 좀 먹지만...

 

 

◀ 미끄럼틀.

 

이 미끄럼틀 덕분에 내 코가 높이 솟아 오를수 있었다.

유전인지라 낮은코였었는데 저기서 머리로 떨어진후 코수술을 받았었었다.

덕분에 우리집에서 코가 제일높다.

덕분에 지금의 나의 잘난 외모의 비결이기도 하다.

ㅎㅎㅎ

 

 

◀ 동두천 초등학교 본관 전경.

   ▲ 동두천 초등학교 별관 전경.                              ▲ 옛 교실건물 터.

 

동두천에서 제일 크고 제일 유명했던 동두천 초등학교.

아직도 국민학교의 명칭이 더 익숙하다.

지금은 새로운 초등학교가 많이 생겨 낡고 오래된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학교의 명예는 역사가 말해준다.

정말 외관상으론 정말 변한게 없다.

적어진 학생수나 새롭게 변한 시설물들을 빼곤 다 그위치, 그곳에 서있다.

삼면이 다 교실건물로 차있었던 웅장함은 아쉽지만...

 

 

◀ 교문앞에 놓여진 화단.

 

이 화단은 존재했다.

나무가 근데 바뀌었다.

옛날엔 크리스마스 트리같은 정말 큰 나무였었는데...

그 나무에도 전설이 존재했었다.

아주 먼 옛날 이 학교터에 용이 한마리 살았다.

그런데 어느인간과 싸우다 꼬리가 잘려 남겨지고 용을 달아났단다.

그때 놓여진 나무가 용꼬리란다.

일명 용꼬리나무라 불려졌던 나무는 용이 다시 와서 찾아갔나보다.

...

 

 

   ▲ 동두천 초등학교 교문 현판.              ▲ 동두천 초등학교 교문.

 

이곳을 지날때면 들어가자마자 국기를 바라보며 경례를 항상 했었는데...

지금은 안하겠지?

하긴 학생들 방과후에 청소시킨다고 서울강남 일부학부모들은 인권위원회에 정식으로 신고를 했단다.

이러니 요즘애들이 자기밖에 모르고 싸가지가 없는거다.

애들은 애들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 "지혜의 등대".                          ▲ 지혜의 등대 "도서관".

 

교문밖에 있다.

시내를 가끔 지나가다보고 이건 뭘까 생각했었는데 도서관이였다.

그러고보니 우리땐 도서관 하나 존재하질 않았는데...

그냥 각자 한권씩 가져오는 학급문고가 전부였을뿐...

 

 

간만에 찾아온 학교에서 정말 많은 추억들을 떠올려 봤다. ------------------------------------------------- EPILOGUE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들어서서 삼삼오오 주말에 모여 학교 교문앞에 있던 수돗가에서 물풍선을 터트리며 놀았었던 그 수돗가는 없었다.

교실마다 걸려있던 선생님 사진을 봤지만 내기억속에 선생님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들 어디가신걸까?

방학때가 아닌 평상시에 찾아왔었으면 한두명은 봤을법한데 아쉽다.

 

갑자기 싸이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이 싸이가 아니였다면 과연 초등학교 동창들과 연락을 할수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이사진과 글을쓰면서 다시금 친구라는 사람들이 나에게 얼마나 갑어치가 있는지 몰랐었던 나에게 알려주는것 같다.

어제 한번 다같이 만나 옛추억을 떠올리며 술한잔 기울일수 있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 BONUS 1

◀ 동두천 초등학교 교문 좌측상가.

 

여기에 문구점하나와 즉석떡볶이집이 있었다.

지금은 문구점도 즉석떡볶이집도 없지만...

즉석떡볶이 정말 맛있었다.

기본 500원에 1000원어치만 먹어도 정말 푸짐했었는데...

아는 사람없나?

 

 

◀ 동두천 초등학교 좌측상가.

 

화이트 문구가 길건너편에서 좌측으로 옮겼다.

이름은 그데로인데 주인도 그데로일까?

아무튼 낯익은 간판을 보니 기분이 좋다.

사실 여기 당골은 아니였다는...

 

 

◀ 동두천 초등학교 횡단보도.

 

예원이는 기억하고 있을까?

몰려 다같이 신호를 기다리는데 장산삼아 뒤에서 밀었다.

빨간불이여서 하마터먼 큰일날뻔 한일도 있었는데...

 

 

◀ 동두천 초등학교 건너편 상가.

 

분식집과 문구점으로 나름 번화가였다는...

지금도 동두천 초등학교 좌우보다는 영업을 하는곳이 많았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동두천 시내로 가늘 길이 하나 있다.

그땐 나름 동두천 초등학교주변에선 로데오거리였는데...

떡볶이 100원에 갯수 세어서 준 집도 기억이 난다.

그맛을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 BONUS 2

▲ 동두천 초등학교 교가.

 

동두천 초등학교 교가가 3절까지 있는줄 몰랐다.

아직까지 1절은 내 입에서 흥얼거리고 완벽하게 외웠다고 자부했는데 3절이라니...

사실 2절까지 있을꺼라 생각했었다.

나처럼 1절이라도 완벽하게 외울수 있는 친구들이 있을까?

10년전에 동창회때 교가를 외울수 있는건 나뿐이였는데...

자랑모드...

 

 

------------------------------------------------------------------------------------------ THANKS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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