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보아하니.. 안보불감증이 여전하군요.
전쟁이 그렇게 쉽게 일어나진 않지만 현실을 망각한체 전쟁은 안일어난다며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니..
너무 답답해서 몇자 적어봅니다.
어린 사람들은 잘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미 두차례의 전쟁위기를 겪었습니다.
94년 핵위기를 얘기하자면 길지만 간략하게 말하자면 92년에 비핵화 선언을 한 노태우 정권은 IAEA의 핵사찰을 받아들였고 북한 또한 자신이 주장한 주한미군기지 핵사찰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의 핵폐기와 노태우 정권의 핵부재 선언으로 IAEA의 임시 사찰을 허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북한은 핵사찰 과정에서 플루토늄의 추출량을 축소 은폐해 국제사회에서는 특별사찰을 요구하며 대북 압박의 강도를 높여나갑니다. 결국 북한은 이듬해인 93년 핵확산 금지조약인 NPT를 탈퇴해 핵시설에서 무려 8000개의 연료봉을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 클린턴의 미국은 무력수단 동원밖에는 카드가 없었습니다. 미국여론 역시 군사행동에 적극찬성하고 있을 정도로 상황이 매우 악화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자 미국군부는 한국내에서의 미국인을 모두 소개시키고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는 작전계획 5027을 점검하기에 이르렀고 최종 카운트다운에 돌입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국내에서는 연일 한국전쟁관련 보도가 나와서 시민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고 사재기 현상도 보였습니다. 현실이 급박하게 돌아가는데도 한국정부는 무기력했습니다. 김영삼씨가 전화상으로 미국에 폭격 취소하라고 온갖 쌍욕까지 다하며 막았다고는 하지만 김영삼 정부의 대응은 전쟁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영변폭격 계획을 수립하긴 했으나 북에 대한 폭격을 감행할 처지가 못되자 지미카터 전 대통령를 평양에 파견해 핵문제 해결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94년 10월 21일에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북미제네바 핵협상이 타결됩니다.
소설 같지만 우리가 실제로 겪었던 전쟁위기였습니다. 그때 저는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불안에 떨면서 방송을 보곤 했습니다. 전쟁이 안날거라구요?? 네 물론 전쟁은 쉽게 안납니다. 하지만 94년의 위기처럼 최악의 사태가 오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이런 위기는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겪었습니다. 76년에 판문점에서 미군이 북한군에게 도끼로 사살당했을때도 미국은 제7함대와 2개 전투 비행단을 급파하고 박정희 역시 전쟁도 불사하겠며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았었습니다.
헌데 전쟁위기를 2번씩이나 겪고도 우리국민은 천하태평이네요. 어린애들은 전쟁을 게임인 것처럼 생각하며 댓글을 장난스럽게 쓰고.. 어른들은 설마 전쟁나겠어??하는 생각으로 북한의 위협을 무시해버리고 안보불감증이 이렇게 심각하니 전쟁나면 민간인이건 군인이건 간에 개죽음 당하는건 불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요?? 저 역시 전쟁 일어나는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6.25를 딛고 일어선 한강의 기적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됨은 물론 우리 모두 죽으니까요. 하지만 북한이 저렇게 막나가는데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 우리의 현실이 암울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