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서부터인지 잘 모르겠는데 연애가 끊겼다. 말 그대로 끊겼다.
스무살 근처해서 처음 연애를 시작해 제법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스물 다섯이 넘어가면서 연애와 담을 쌓기 시작한 것 같다. 설사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도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 결국 찝찝하게 헤어지거나 뭔가 엄청 나쁜 남자로 남는다. 그럴수록 나이는 쌓여가고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마음을 접고 있다. 좋은 사람, 언젠가는 만나겠지. 이 곳에 있는 한국여자라고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 밖에 없다. 썩 괜찮은 사람도 없거니와 전부 나이가 어리다. 그것도 스무살이거나 스물 한 살 정도의 갓 이십대가 된 아이들이다. 나이를 시시콜콜 따져가며 연애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아무래도 나이차가 많이 나면 여자쪽에서 꺼려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여자아이들과 만나면 무슨 말을 해도 굉장히 어색해하는 것이 느껴져 기분이 좀 상할 때도 있고, 혹시나 전화가 온다하더라도 뭔가를 부탁하는 전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나도 요즘 사람이지만 요즘 여자아이들과는 어떻게 소통해야할지 좀 막막하다. 그나마 그 또래 남자아이들이라면 같은 남자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곧 잘 이야기도 하고 웃곤 하는데, 여자아이들은 좀 어렵다(내가 어려운게 아니라 여자아이들이 어려워하는 것 같다). 잡아 먹기라도 하나. 오히려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들은 주로 일본, 미국 여자아이들. 애초에 이 쪽 사람들은 나이를 묻지도 않는다. 그저 이야기해보고 코드가 맞으면 친구가 된다. 내 나이가 스물일곱이라는 것을 내가 밝히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을 정도.(아직 내 나이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우리나라 여자를 제외한 여자들은 나이에 대해서 굉장히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주변만 보더라도 여덟살, 아홉살 차이가 나는 국제커플들이 부기지수, 말 그대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때로는 한국여자들로부터 이런 변을 듣는다. 왜 한국남자들은 어린 여자만 밝히는가, ... 대답은 실로 간단하다. 예쁘고 순수하니까. 집이 있니 없니, 차가 있니 없니, 키는 크니 작니, 뭐하는 사람이니, 구구절절 설명 안해도 되니까. 사실 나의 경우에는 미국여성이 이상적이다. 외모? 외모는 솔직히 한국여자가 가장 예쁘다.(좀 볼륨없는 것 빼면 하하) 가장 좋은 점은 '솔직'하고 '직설적'이라는 것. 쓸데없는 말로 남자를 교란시키거나, 거짓말로 남자를 기만하지 않으며 독립심이 강하다. 사소한 일로 남자에게 매달리지 않지만 도움을 받으면 진심으로 감사해한다. 남자와 여자가 아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느낄 수 있달까. 수업 시간에 결혼과 연애에 관해 토론을 한 적이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같은 팀에 한국 여성이 둘이나 있어 나름대로 내 의견을 피력했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뭐, 거의 이지메 수준으로 공격 당했다. 아니, 그럴 거면 군대동기랑 살지 왜 여자를 찾느냐, 여자가 못하는 일 남자가 좀 도와줄 수 있는거 아니냐, 남자는 여자를 이해해줘야지 등... 생각해보니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그런데 만약 그런 논리라면 미국여자는 무슨 나메크성인이란 말인가. 얘네는 심지어 남자랑 같이 삽질도 하는데 -_-; 내가 바라는 여성상이 너무 시대를 앞서나가는 건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건 여자가 아니라 남자... 그만두자.
내가 바라는 건 단순히 물리적인 관계를 떠나 정신적으로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는 관계다. 물리적인 것? 차, 돈, 집, 섹스, 생각하고 계산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나는 단순히 힘들 때 서로에게 기댈 수있는 관계, 나아가 서로에게 충고할 수 있고 도움이 필요할 때 다른 누구도 줄 수 없는 도움을 원할 뿐이다. 일방적으로 기대거나 기댐당하는 그런 건 연애가 아니다. 그건 노예다. 연애의 목적은 결혼이 아니다. 굳이 돈을 따질 필요도 없고 나이를 따질 필요도 없다. '나 너무 싸게 넘어가는 거 아니에염?' 스타벅스컵은 좀 내려놓고, 웃기지 마라, 이게 무슨 M&A도 아니고 연애같은 지극히 사적인 관계에 굳이 물질적 잣대를 들이대는 멍청한 짓을 꼭 해야 하는가, 결혼이라면 또 모를까. 시대는 변하고 있다. 연애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만약 연애의 주류(注流)가 이런 식이라면 애초에 나는 그 흐름에 끼어들 자격이 없는 모양이다. 세상의 반은 여자라지만 왜 이다지도 내가 원하는 사람은 찾기가 힘든 모양인지 모르겠다. 그냥 기다리련다. 언젠간 나타나는 늦은 밤의 심야좌석 버스처럼, 그도 어스른 공기 헤치며 나타나 주었으면 좋겠다. 조급하지 않게, 안개비에 젖어드는 셔츠깃처럼 그렇게 만났으면 좋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