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시상식은 멀었다.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현지시간으로 2009년 2월 22일 저녁에 열린다. 그 전날에 개최되는 인디 영화제 시상식 말고는 이제 오스카 이전에 남은 건 영국아카데미시상식이다. 2월 8일에 열리는 이 시상식에서는 대니 보일 감독의 <빈민가의 백만장자 The Slumdog Millionaire>가 다수 수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 오스카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이 13개 부문에 후보 지명됨으로써 과연 몇 개의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느냐가 관심사가 되었다. 국내에서도 곧 개봉하는데 개봉일은 시상식 이전이다. <빈민가의 백만장자>도 제 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10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는데, 몇 부문에서는 '벤자민 버튼'과 경합을 벌인다. 작품, 감독, 각색, 촬영, 편집, 음악, 음향 총 7개 부문에서 둘 중 어느 영화가 수상할 것인지가 궁금하다. '벤자민 버튼'은 이외에 남우주연, 여우조연, 미술, 의상, 분장, 시각효과 부문에 '백만장자'는 주제가, 음향편집 부문에 후보 지명 되었다. 사실 '백만장자'는 9개 부문 후보지명이지만, 주제가상에서 두 곡이 노미네이트 되는 바람에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벤자민 버튼'에서 벤자민 버튼 역을 맡은 브래드 피트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수 있을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더불어 안젤리나 졸리도 <체인질링 Changeling>으로 여우주연상에 후보 지명 되었는데 브란젤리나 커플이 주연상을 동반 수상 여부도 이목을 끈다. 브래드 피트의 강력한 견제 세력으로는 망가져 돌아와 더 아름다운 미키 루크 아저씨가 있다.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의 <레슬러 The Wrestler>로 각종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쓸어가시더니만 오스카에까지 이름을 들이댔다. 브래드 피트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12 Monkeys>(1995)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적은 있지만 아카데미에서는 같은 영화로 후보지명된 것 말고는 인연이 없다. 골든 글로브에서는 <바벨>, <가을의 전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후보 지명된 바 있다.
남들과 거꾸로 나이를 먹어도 보통 인간의 삶을 살도록 강요받는 벤자민 버튼, 그의 삶과 인도 빈민가에서 자란 18세 소년의 삶을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편은 작가의 상상력의 극치를, 다른 한 편은 인도의 현실을 보여준다. 인생에서 얻을 것은 다 얻지만, 자신의 나이 때문에 주변에서 고통받은 사람들이 생기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벤자민의 아내가 되는 힐데가르드다. 영화에서는 어떤 캐릭터로 이름을 바꾸었는지도 궁금한데, 벤자민이 50세 때 만나 결혼한 힐데가르드는 20대의 아가씨로, 소설에서는 인생의 원숙기에 든 남자가 좋다고 하여 50대의 벤자민을 받아들인다. 그의 외모는 50대지만, 인간의 나이로는 20살에 불과했다. 살면서 점점 젊어지는 남편을 보며 자신의 노화를 한탄하고 질투까지 느끼는 힐데가르드다.
핀처 감독이 소설을 어떻게 각색해 스크린에 옮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에서 벤자민 버튼의 아내가 되는 힐데가르드 역을 케이트 블란쳇이 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벤자민 버튼'은 영화로는 아직 보지 못했다. 일단 원작인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은 다 읽었는데 영화를 검색해 보니 소설과 주변 인물들의 이름이 적잖이 달라 어떻게 각색했길래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166분의 러닝타임, 1.33:1의 미국치고는 드문 화면비의 영화. 아카데미가 미국의 편이냐는 질문을 이 글의 제목으로 택한 건 아카데미 이전에 열리는 주요 시상식의 결과를 인터넷 무비 데이터베이스 닷 컴(http://www.imdb.com) 에서 신속히 업데이트 해주고 있는데, 의외로 '벤자민 버튼'이 관객과 평자들의 호평 속에도 시상식의 외면을 받아서이다. 위 웹사이트는 좀 대중적이고 토마토의 신선도로 영화를 평가하는 썩은 토마토 닷 컴(http://www.rottentomatoes.com)은 좀 더 전문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 곳에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평점은 그리 높지 않다.
[잡지에 게재되었던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나중에 다른 단편들과 함께 책으로 묶여 나오는데, 국내에서는 출판사 문학동네가 이것을 번역하여 책으로 냈다.]
미국 각 평론가협회의 시상 결과들을 봐도 '벤자민 버튼'은 작품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딱 한 군데에서만 감독상을 받아갔을 뿐이다. 문제는 해외가 아니라 미국 내 평론가들이 개최하는 시상식의 결과가 그랬다는 거다. 대니 보일의 '백만장자'는 오스카 이전에 열린 꽤 많은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을 받아갔다. '아카데미로 가는 길'이라고 해서 각종 시상식이 오스카 이전에 열리고 아카데미 시상식이 이 행사들의 대미를 장식한다. 전 날 열리는 인디 영화제는 좀 다른 성격이라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벤자민 버튼'이 뒤통수를 맞은 건 골든 글로브 때부터인데 그것이 쭈욱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오스카가 미국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의 여부가 아카데미를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놓을 수도 있을 지경이다. 보지도 않은 영화를 폄훼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사실을 말할 뿐. 이러저러한 시상식에서 '벤자민 버튼'의 발목을 잡은 것은 '백만장자'다. 인도 뭄바이 슬럼가의 한 소년이 사상 최대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에서 우승하면서 이 소년의 과거사가 펼쳐지고 행운은 내면에서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비카스 스와루프의 <Q&A>가 바로 <빈민가의 백만장자>의 원작인데, 영화 역시 소설과는 주요 캐릭터 이름들이 데이터베이스를 찾아보니 다르다.
소년이 퀴즈쇼에 출연한 이유는 복수와 구원 때문이다. 소설은 그런데 영화는 모르겠다. 잡지 기사를 보니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것에 집중했다고 한다. 소설에서 람이 사랑하는 여자 니타는 몸을 판다. 람 모하마드 토마스라는 특이한 이름의 소년은 고아로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다. 돈이 필요해 퀴즈쇼에 출연했다고 표면상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진정한 목적은 따로 있다. 짧은 생이지만 거기서 얻어낸 것들을 통해 퀴즈의 정답을 맞추는 소년이라....
웬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가.
소설을 읽고도 퀴즈쇼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감이 안 잡혔는데 영화 스틸을 보니 그제서야 아~~!!! 했다. 그러니까 마봉춘 방송국에서 임성훈 아저씨가 진행하던 퀴즈쇼 그런 무대를 생각하면 되겠다. 한 문제 한 문제 맞출 때마다 상금이 올라가는. 영화제목은 '백만장자'라고 했는데 소설에서는 최종단계의 문제까지 다 맞추면 10억 루피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아름다운 여인이 소년이 상금을 타 구원코자 하는 여인이다. 아니 그걸 것 같다. Freida Pinto 라는 이 배우는 영화출연 경력이라곤 이번에 출연한 '백만장자' 딸랑 한 편이지만 실제로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인도 뭄바이 지역 방송국의 TV쇼 진행자다. 영화에서는 라티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소설의 니타가 영화에서는 라티카가 되지 않았나 한다. 소설의 남자주인공 이름은 람 모하마드 토머스인데 영화 속 캐릭터는 자말 말릭인 것 같다.
소년의 구원의 대상인 소녀는 위 사진처럼 나오지는 않는다. 위 사진은 영화의 스틸이 아니라 그녀의 이름을 검색해서 얻은 이미지다. 땡큐~~~^^ 구글~~
스틸을 보니 좀 파리하고 말라 보이게 나오는 듯하다.
소설의 국내 출간은 좀 되었지만, 영화의 개봉은 아직 미정라고 연초에는 그랬다가 영화가 각종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작품상을 쏵 쓸어가니 3월로 급하게 개봉일자가 잡혔다. 애초에는 이 영화가 돈도 안 될 것 같았나?
브란젤리나 커플이 주연상을 동반 수상할지도 궁금하다라고 했는데 사실 '벤자민 버튼'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분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캐스팅을 보니 연령대별로 벤자민 버튼을 연기한 배우들이 있더라고. 하기사 <양들의 침묵>에서 하니발 렉터 역의 앤소니 홉킨스 경은 30분도 안 나왔다고 하지 아마. 대략 15분 정도 얼굴 비추고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믿지 못할 일화도 있으니. 아...이 양반께서 연기한 캐릭터에 다들 경악해서 상을 안 줄 수가 없었대나 뭐래나. 미국에서 영화사상 최고의 악당 조사를 하면 수위를 놓치지 않는 캐릭터가 앤소니 홉킨스 경의 하니발 렉터라니 말 다했다. 166분의 러닝타임 중 브래드 피트의 출연분량이 얼마나 되는지, 적더라도 얼마나 인상 깊게 연기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보수적인 아카데미가 돌아온 노병(?) 미키 루크를 반기지 않는다면 수상할 가능성도 있는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빈민가의 백만장자>가 다수 부문에서 후보 지명된 가운데, 그 밖에 <프로스트/닉슨>이라든가 <밀크>도 몇 개 부문에 이름을 올려 놓았다. 이번 아카데미에 후보지명된 영화들 중 대부분이 국내 개봉하지 않은 영화들이라 전망은 힘들지만, 이 두 영화의 파워도 무시해서는 안 될 듯하다. 아카데미 단골손님 론 하워드의 <프로스트/닉슨>과 구스 반 산트의 <밀크> 중 그래도 <밀크>에 주목하고 싶은데, 생존했던 게이 국회의원 하비 우유, 아니 하비 밀크를 조명한 이 영화에 각 영화제들은 심심찮게 남우주연상을 숀 펜이라는 성깔파 배우에게 갖다 바친 바 있다. 특히나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사랑하더만. <레슬러>의 미키 루크와 숀 펜이 상을 먹은 비율을 보면 대략 6:4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숀 펜이 오스카 트로피에 우유를 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남우주연상은 숀 펜, 브래드 피트, 미키 루크 중 한 명이 수상할 거라고 예상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악당하니까 이 분이 떠오른다. 고인이 된 히스 레저. 이번 오스카에서 <다크 나이트>의 조커 역으로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살아서는 주연이요, 죽어서는 조연이라. 제이크 질렌할과 공연했던 <브로크백 마운틴>(일명 척추골절산)로 살아 생전에 남우주연상 후보에, 죽어서는 <다크 나이트>로 조연상 후보에.
공로상 등을 제외하고 고인이 수상한 경우는 피터 핀치가 시드니 루멧 감독의 <네트워크>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 유일하다. 후보지명과 수상 모두 고인이 된 후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나는 히스 레저도 보다는 <트로픽 썬더>로 역시 조연상 후보에 오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주목해 보는데, 스물일곱의 나이에 <채플린>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뒤 이후 노미네이트 된 건 이번이 두 번째로 대략 15년의 간극이 있다. 그가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을 때 상을 받아간 분은 한 성격하신다는 알 파치노가 되겠다. 가브리엘 앤워와 췄던 탱고가 기억에 남는 <여인의 향기>로 당시 상을 받아가셨다. 그해 그는 <글렌게리 글렌로스>로 조연상후보로도 이름을 올렸는데, 주조연상을 싹 쓸어가지는 못했다. 요새 이 분은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는 역만 하는 것 같아 캐안습 ㅜ.ㅜ
결론을 내자면, 다수 후보 지명된 군소 영화들도 있지만, 최다 부문 지명된 영화들만 놓고 보자면 이번 아카데미는 데이빗 핀처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대니 보일의 <빈민가의 백만장자> 간의 대결이라는 것, 브란젤리나 커플의 동반수상은 가능할지, 그리고 각종 시상식에서 '벤자민 버튼'은 호평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았는데, 아카데미는 버림받는 제 자식을 구원해 줄 것인지 아니면 대세에 따라 자존심 상해도 이 영국산 영화를 밀어줄 것인지가 궁금하다. 조심스레 전망하자면 작품상과 감독상은 두 영화가 양분해가지 않을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