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와 영광의 가능성”(12.31.2008)
전병욱 목사
파스칼은 “인간은 우주의 영광이요 우주의 모욕이다”라고 했다. 인간은 영광스런 존재도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쓰레기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제대로 기능하면, 자기 속에 있는 영광을 깨울 수 있다. 반면에 죄성이 드러나면 우주의 모욕이요 쓰레기가 된다.
죄성의 본질은 파괴본능이다. 죄성은 나를 파괴하고, 이웃을 파괴하고, 온 세상을 파괴한다. 인간만이 자기를 스스로 죽이는 존재라고 말한다. 지난 달 LA 코비나에서 산타 복장을 한 부르스라는 사람이 6명을 죽이고, 3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나중에는 스스로 총으로 자살했다고 했다. 죄성은 나와 이웃, 세상을 파괴시킨다. 사람들은 안정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오히려 파괴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돈 주고 공포 영화를 본다. 스스로 롤러 코스트를 타며 공포를 선택한다. 2005년 아칸소에 사는 21세의 여자가 스카이 다이빙을 했다. 낙하산이 펴지지 않았다. 보조낙하산도 펴지지 않아 그대로 주차장에 추락했다. 그런데 죽지 않았다. 골반 2곳, 다리 한쪽, 이빨 6개만 부러졌다. 추락 당시 뱃속에 태아가 있었는데, 무사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여성은 6주 후에 기브스를 한 채 다시 스카이 다이빙을 했다고 한다. 이것은 모험심이라기 보다는 자기 파괴본능이다. 이게 인간이다. 금융 거래를 하는 직원은 운용자금의 30% 정도 손실이 발생하면, 거래를 중단시킨다고 한다. 왜? 자기 파괴본능이 작동하면, 비이성적으로 나머지 70%도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막판의식이라는 파괴본능이 작동하면, 될 대로 되라는 식의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상태가 안 좋을 때는 어떤 결정도 내려서는 안된다. 파괴적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랑을 만나야 자기 속의 영광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것이다. 절대 사랑을 만나면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미우라 아야꼬의 “양치는 언덕”이라는 소설이 있다. 주인공은 고오스케 목사의 딸인 나오미이다. 순수한 자세로 구애하는 남자는 외면하고, 바람둥이요 술고래인 료이치와 동거한다. 이런 결혼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결국 주정하고, 의처증까지 보이는 료이치와 헤어지고, 2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는 왔으나 차마 들어가지 못한다.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서성대다가 저녁 늦게 문을 여는데 닫혀있지 않았다. 한발 들어서자 “나오미, 이제 왔니?”라는 아버지의 음성이 들린다. 아버지는 2년동안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기다리고 품어주는 이런 사랑을 만나야 치유가 일어난다. 나중에 폐병에 걸려 갈 곳없는 료이치를 받아주고, 그도 변화된다. 료이치는 다락방에서 틈만 나면 그림을 그린다. 뭘 그리냐고 물으면 나중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겠다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료이치에게 과거의 여자가 찾아온다. 그 여자의 유혹에 맞서 순수함을 지키려다가 수면제를 마시고, 죽게 된다. 료이치의 장례 이후 다락방에서 발견된 그림은 십자가의 예수님 앞에 한 사람이 다가서지 못하고 손을 내미는 모습의 그림이었다. 료이치 자신의 모습이었다. 나오미는 이 한 장의 그림으로 료이치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감동한다.
돈 많이 벌고, 성공하고, 좋은 대학 가는 것이 아름다움이 아니다. 사랑을 만나야 아름답다. 사랑에 의해서 감동받을 때, 가장 영광스런 인생이 된다. 파괴본능을 깨고, 내면의 영광을 드러내는 유일한 길은 사랑받고 사랑하는 길 외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