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김민영 / 사진 신기수
경북 의성군 『거북고을 달빛 도서관』
“지역문화공동체로 바뀐 학교도서관”
농가의 바람은 매서웠다. 아이의 콧물도 바싹 말라 있었다. 익은 감 마냥 터진 아이의 볼이 까칠해보였다. 차디찬 철봉에 매달려 있던 아이가 장난기 어린 눈빛을 보냈다.
“친구는 없니?” “네” “혼자 놀면 심심하지 않아?” “괜찮아요.”
휭그르르르. 아이의 몸이 공처럼 말렸다.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건 도서관이었다. 아이는 “도서관에서 놀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라며 방긋 웃었다. 도서관이 열리기 2시간 전, 아이는 홀로 놀기를 자처하며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경북 의성군에 위치한 구천초등학교(교장 신승하) ‘거북고을 달빛 도서관’의 첫 인상은 고즈넉했다. 11월 중순의 찬바람이 불던 오후. 너른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의 여유로움은 서울 아이들의 분주함과 무척 달랐다. 아이는 “학교 끝나면 별로 할 일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일주일에 두 번 운영되는 이 학교 도서관은 아이에게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거북고을 달빛 도서관’이라는 독특한 이름이 눈길을 끄는 이 도서관은 올해로 개관 1주년을 맞았다. (사)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의 지원으로 만들어져 1년 째 운영 중이다. 문화혜택을 받기 어려운 지역 농민들과 아이들에게 이곳은 꿈을 키워가는 공간이다.
구천초등학교는 거북고을 달빛 도서관의 개관을 통해 큰 전환점을 맞았다. 57명의 학생과 교직원 10명이 모여 있는 작은 학교지만, 책을 통해 꿈을 키우고,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 것. 매주 두 번,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시간에 운영 되는 거북고을 달빛 도서관은 구천초교 어린이들에겐 희망의 나루터다. 취재 당일 도서관엔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많은 아이들이 모여 도서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위대한 상인의 비밀>(오그만디노 저, 문진출판)을 읽고 있던 김지훈(6학년) 군은 “다양한 책이 있어 자주 도서관에 오게 된다”며 “책을 많이 읽으면 상식이 늘어나 좋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책을 열심히 읽는다는 김 군의 눈이 새벽별처럼 빛났다. 김 군에게 도서관은 ‘희망’을 주는 공간이다. 책에 관심 가질 기회가 없었던 김 군은 도서관이 생긴 이후, 책에 비상한 관심을 갖게 됐다. 위인전, 소설을 비롯해 자연 과학 분야까지 넘나드는 다양한 독서를 즐기고 있다.
▲구천초교 5학년 최희지 양
5학년 최희지 양은 <로미오와 줄리엣> 류의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를 좋아하는 꿈 많은 소녀. 상상력을 키워주기 때문에 책을 좋아한다는 최 양은 일주일에 평균 2권 이상을 읽는 독서광. 도서관이 생긴 후엔 책 읽는 재미 때문에 노는 것이 싫어졌다는 소녀다. 최 양은 “의사가 되고 싶다”는 당찬 꿈을 밝혔다. 생명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주는 의사가 되어 이웃들을 돕고 싶다는 최 양의 손엔 <실패를 두려워 말고 1등에 도전하라>(손현석·김대환 저, 메가트렌드)가 들려있었다. 스포츠 스타 9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최 양에게 각별한 책으로 다가왔다.
“김연아 선수를 좋아해요. 책을 읽고 나니 유명해진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알 수 있었어요.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최 양은 못 다 읽은 나머지 부분을 읽고 싶다며 다시 책을 폈다.
과거 위인전을 읽어 온 세대에게 자기계발서를 읽는 요즘 아이들의 책 읽기는 다소 낯선 풍경. 세대를 거쳐 간 위인들의 이야기가 아닌, TV와 신문에 나오는 유명인들의 성공스토리를 읽는 것은 지금 아이들이 꿈을 키워가는 색다른 방식이다.
거북고을 달빛 도서관을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컴퓨터 활용 수업 때문이다. 학교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중홍(53)씨의 강의로 컴퓨터 수업을 진행 중인 것. 취재 당일 역시 강의가 한창이었다.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수강생들은 이 시간을 통해 농산물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쇼핑몰, 블로그, 커뮤니티 운영법 등을 배우고 있다. “열악한 농촌 경제를 살려보자는 뜻에서 강좌를 시작했다”는 강사 권 씨는 “농촌이야 말로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전했다.
어린이 뿐만이 아닌 어른들에게도 도서관은 배움의 터로 거듭나고 있다.
도서관의 발전을 누구보다 각별히 느끼고 이는 구천 초교 신승하 교장. 교직생활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그에게 이 도서관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는 “서울 아이들처럼 학원에 갈 형편이 못되는 우리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별로 갈 곳이 없다”며 “도서관은 아이들이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어린이 책만이 아닌, 어른들이 읽을 수 있는 책까지 구비해 줘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는 그의 눈빛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이곳 거북고을 달빛 도서관의 운영은 (사)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과 도교육청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한 겨울에도 따뜻한 환경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컴퓨터 교육까지 원활히 받게 된 것 역시 모두 그 때문이다. 신간을 읽을 수 있도록 도서구입비가 지원 되어 아이들은 다양한 책읽기를 즐길 수 있다.
봄과 가을, 농번기로 바쁜 시기를 보내는 농촌의 부모들은 아이를 돌볼 시간이 넉넉지 않다. 보낼 학원도 마땅치 않기에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낼 수밖에 없다. 집에서 컴퓨터게임, TV만 즐기던 아이들에게 도서관은 일상의 ‘혁명’을 불러 왔다. 6학년 김지훈 군은 “전에는 시간만 나면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요즘은 도서관에서 책 읽는 걸로 방과 후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교육과 더불어 보육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도서관은 일종의 지역문화공동체로 바뀌었다.
밤이 깊어지자, 부모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도서관을 나서는 아이들의 얼굴이 해맑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들은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책이 준 희망덕분이다.
출판저널 2008년 12월 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