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WILD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난 얼리버드가 되었다.
아침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한답시고 헬스장을 가기 때문이다.
걸어서 약 15분거리. 가볍게 조깅이라도 하자는 생각에 일부러 멀리 잡았다.
그렇게 땀을 빼고 나서 아침식사를 마친다.
그럼 곧바로 가방을 챙겨 종로에 있는 영어회화 학원으로 달려간다.
솰랴솰랴.
외국인 선생님과 수강생들과 2시간 가량을 영어로 떠든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려고 신경을 집중하다보면 조금씩 두통이 찾아온다.
하지만 나에겐 쉴틈이 없다.
곧바로 한자 학원을 가야하기 때문이다.
2급을 따면 학교에서 논문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뭐 취업할 때 가산점도 붙을테고.
점심은 잠깐 짬을 내서 여자 친구와 먹는다.
그 친구도 다른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일부러 종로에서 시간을 맞췄다.
여자 친구가 춥다고 따듯한게 먹고 싶다고 해서
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런치메뉴로 스파게티랑 파스타를 먹었다.
바람빠진 풍선마냥 부피가 줄어드는 내 지갑이 안쓰럽지만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정도 쯤이야.
다시 그녀랑 빠빠하고 나서 이젠 토익을 조지러간다.
LC는 회화에서 쇼부치면 되기 때문에 RC만 배운다.
꼭 토익을 해킹하고 말거다.
토익 스터디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어느새 난 녹초가 되어있다.
하지만 이 정도는 해야 취업에 대한 걱정이 좀 사그러든다.
적어도 나는 미래를 위해서 착착 준비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좀 까탈스럽지만 이쁜 여자친구도 있고.
집에 오면 부모님과 저녁식사를 한다.
일부러 내가 올 때까지 안드시고 기다리시다가 같이 드신다.
내가 외동아들이라는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부담스러워
그러시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그리고 내 미래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간다.
공무원을 해야한다, 취업을 하려면 대기업을 가야한다,
공부는 잘 되가냐, 우리는 너만 믿는다 등등.
어느새 까마득해진 창 밖.
나는 멍하니 책상에 앉아 달빛을 바라본다.
무언가 답답한 마음이 차오른다.
왠지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분명 오늘 나의 하루는 퍼펙트했는데도.
갑자기 몸이 꿈틀거린다.
늑대인간이라도 되려는 것인가.
차라리 그랬으면 재밌을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 머릿속에 내가 늑대가 된다면? 이라는 가정하에
앞으로 겪게 될 수많은 모험들이 펼쳐졌다.
창문을 깨고 밖으로 나가 동네 근처 산으로 숨어든다.
부모님은 실종신고를 하고 경찰들은 나를 찾는다.
나는 산과 마을을 돌아다니며
짐승을 잡아먹고 사람들을 놀래킨다.
인간이 되었을 때 어떤 소녀와 사랑에 빠지지만
다시 늑대로 변하여 나는 도망치고 만다.
그렇게 경찰의 추적 끝에 벼랑끝에 몰리고
나는 그 아래 흐르는 강물에 몸을 던진다.
캬.
그럴싸한 스토리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맛보고
몸의 깃털 하나하나가 바람을 느낀다.
햇살에 눈을 뜨고 달빛에 눈을 감는다.
아침 종달새의 지저귐이 내 단잠을 깨우고
저녁의 귀뚜라미가 내게 자장가를 불러주리.
그때였다.
"띠리리릴 띠리리릴~♪"
[10시30분 공모전 준비 온라인회의]
내 휴대폰 알람소리였다.
나는 이건 아니다 싶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지겨운 일상에
어디에서 내 자신의 보람을 찾아야 하는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내가 바라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인가?
부모님의 기대, 사회의 잣대, 주변의 시선 같은 것들에
내 자아가 맞춰지고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한 번 뿐인 내 삶
틀을 벗어나서 자유롭게 지내고 싶다.
여기까지 미친 내 생각은 놀랍게도 곧바로 실행으로 옮겨졌다.
늘 꿈꿔왔던 나의 이상향인 알래스카.
가자, 그곳으로!
방학동안 만큼은 내 자신을 위해서 쓰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나 혼자만을 위한 여행을 떠나자.
그렇게 나는 달빛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공모전 모임의 조장이 마음에 안들어서인지,
그 날 회화에서 실수를 한게 쪽팔려서인지
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사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작정 여행을 떠난 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짓이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더 대담해질 수 있었다.
차비도 아끼기 위해서 지나가는 차를 얻어탔다.
역시 행색이 초라한 나를 보고 다들 그냥 지나쳐버렸다.
출발하기 전에 지페를 다 태워버린 것이 약간 후회가 된다.
하지만 내 스스로의 힘으로 떠나고 싶었다.
부모님의 어떠한 도움없이.
예상대로 부모님은 나를 찾기 위해서 안해본 것이 없다고 하셨다.
휴대폰 등 일체의 통신장비를 버리고 갔기에
나에게 연락을 취할 방도는 없었다.
나는 편지를 딱 한 통 보냈다.
걱정하지말라고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하지만 받는 사람은 우리 부모님이 아니라
집에 있는 나에게였다.
나는 그 사이에 여러 친구들을 만들었다.
자유로운 히피 커플, 할아버지 친구 등 그들과의 시간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안겨주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금 고지서, 두뇌를 잠식하는 미드, 피식거리도 안되는 동영상들,
여자친구의 가슴, OMR카드와 컴퓨터 사인펜, 부모님의 눈물,
모니터에 비춰진 나의 멍한 표정, 점점 줄어드는 통장의 잔고.
이러한 것들을 벗어나
살면서 보지못하고 겪지 못할뻔 했던 것들에 대하여 알아갔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고
자연을 만났고
내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났고
인생의 선배를 만났고
값진 노동의 댓가도 만났으며
아름다운 그녀도 만났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알래스카로 가는 과정일뿐
그속에 안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정말 바라고 원하던 것이 있을 그곳.
그게 비록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알래스카를 향해서 가야만 했다.
하지만 가는 길이 너무 복잡하고 애매하여
나는 불법으로 강을 가로지르기로 했다.
바로 카누를 타고서 말이다.
내가 이렇게 과감해질 수 있었을까?
그렇게 경찰을 따돌리며
강을 헤치고 죽음의 폭포라고 알려진 곳을 통과하였다.
그러한 과정속에서 내게 도움을 준 이들 또한
잊지 못할 것이다.
비록 혼자서 떠난 여행이지만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그럴수록 더욱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원하게 되었다.
그렇게 점점 알래스카는 가까워져 갔고
나는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과연 옳은지 틀린지
확실히 구분이 가지는 않았지만
만약 이대로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평생 낙오자라는 기분에 사로잡혀서 살 것만 같았다.
가끔 힘이들고 지칠때마다 가족과 여자친구가 떠올랐지만
자연속에서 마주하는 새로운 내 자신과
나의 일상은 그들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고 어느새 전혀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나의 여행 기간은 예상보다 엄청 길어져버렸다.
하지만 시계도, 휴대폰도 없는 나는
오늘이 몇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날씨와 바람과 나무를 보며 예측을 하였다.
그렇게 하여 나는 간신히 내가 그토록 바라던 땅
알래스카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알래스카는 너무 추웠다.
고요 그 자체였다.
그것은 또한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처음으로 도장을 찍으며
그렇게 자연속으로 한 발자국씩 들어갔다.
과연 내가 무엇을 얻으려고 하였고
또 이번 여행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는지
그것은 내 자신만이 알 것이다.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무엇에 도움이 될지.
적어도 부모님과 사회가 원하는 경험에는 속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온전히 내가 원한 경험들이고
나만의 시간이였다.
가끔은 헷갈린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옳은 것인지.
알래스카에 도착하고 나서
내가 아직 불완전한 인간이란걸 알게되었다.
혼자서 잘난 척하며 여기저기 누비고 다녔지만
한편으론 어리석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목적없는 여행의 결말이란 이런걸까.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여행을 계속 다녀야 하는걸까 아니면 다시
일상 속 반복되는 마라톤을 해야하는걸까.
이러한 물음은 앞으로도 내 인생에 계속 주어질 것이다.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 물음을 던져보아도
결국은 자신의 몫이란 메아리만 들려올 뿐이다.
여전히 미완성체인 나는
오늘도 자연속으로
한 발자국씩 내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