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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의 '달리기'를 중심으로 살펴본 문학감상의 자세

이해황 |2009.02.14 00:55
조회 168 |추천 0

0.

학생들이 문학, 특히 현대시에 대해서 하는 고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시를 글자 그대로 읽어내려갈 수 있는 눈은 있지만

도저히 자신은 자습서 등에 있는 ‘해설’처럼 ‘감상’하지는 못하겠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래서 이런 고민을 풀어주겠다는 많은 시 해석법 강의가 있기는 하지만

과연 강의를 다 들었을 때 처음의 고민이 해결되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래서 ‘기술자 문학 개론’에서는 문학 작품 자체에 접근하는 ‘자세’ 위주로 다룰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부터 작가의 것이 아닌 독자의 몫이다”입니다.

제목은 좀 무시무시하지만 그 내용만큼은 말랑말랑할 것을 약속드리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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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부터 작가의 것이 아닌 독자의 몫이다




수험생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도 직접 조사해본 건 아니라서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 - = ;;;

S.E.S.의 ‘달리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음악을 듣고 싶은 분이 있다면 http://cafe.daum.net/Orz-KIN/40VS/48 여기를 클릭하세요. 원본글입니다. ^^)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 수 없죠 어치피 시작해 버린 것을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 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설 순 없으니

단 한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에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 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버린 것을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 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설 순 없으니




이유도 없이 가끔은 눈물나게 억울하겠죠

일등 아닌 보통들에겐 박수조차 남의 일인 걸

단 한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에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It`s good enough for me bye bye bye bye







수험생이라면 노래의 모든 구절이 심금을 울릴 것입니다.

저도 수험생일 때 이 노래 들으며 참 많은 위안을 받았고, 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아마 다음과 같이 감정이입되어서 노래를 받아들였겠죠.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네! 공부하느라 완전 힘들어요. 문제는 안 풀리고 짜증나 죽겠어요. ㅠ_ㅠ

할 수 없죠 어치피 시작해 버린 것을: 그러게요. 고3/재수/삼수 벌써 시작해버렸어요. 우엉.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공부하는 거 너무 힘들어요. 흙

할 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설 순 없으니: 그럼요. 대학은 가야죠.




이유도 없이 가끔은 눈물나게 억울하겠죠: 모의고사 못 쳤다고 부모님/선생님이 구박했어요

일등 아닌 보통들에겐 박수조차 남의 일인 걸: 평범한 나에게도 응원을 해주세요.




단 한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수능까지만 참으면 된다!

끝난 뒤에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대학생만 되면 수업은 자체종강하고 만날 놀러다녀야지~







이 멋진 가사의 만든 사람은 박창학 씨입니다.

모 여고 문학 선생님 출신이라서 그런지 수험생의 애환을 아주 잘 알고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시죠? ^^






근데 안타깝게도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S.E.S.의 달리기는 윤상 씨의 원곡 ‘달리기’를 리메이크한 노래입니다.






원곡에서는 S.E.S.의 발랄함 따위는 전혀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저 우중충한 우울함만이 느껴지실 것입니다.




약간은 충격적이시겠지만 예전에 윤상 씨가 라디오에서

왜 S.E.S.가 달리기를 리메이크했는지 모르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노래는 자살을 앞 둔 사람의 상황을 이야기한 것이기 때문이라면서요.




허걱!!!!!!!!!!!!!!!!!!!!!!!!!!!!!!!!!!!!!!!!!!!!!




자살을 앞둔 사람의 노래라고 해도 의미가 쏙쏙 통한다는 것을 순간 느끼셨을 것입니다.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세상 사는 게 힘들죠?

할 수 없죠 어치피 시작해 버린 것을: 세상에 태어나버린 거 뭐 어쩌겠어요.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참 힘든 일이 많죠

할 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설 순 없으니: 죽지 못해서 사는 거죠 뭐.




이유도 없이 가끔은 눈물나게 억울하겠죠: 살다보면 참 억울한 일 많아요.

일등 아닌 보통들에겐 박수조차 남의 일인 걸: 내게도 관심을 가져주세요.




단 한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죽으면 더 이상 이 고통도 없을 거예요.

끝난 뒤에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죽으면 영원히 쉴 수 있죠.




It`s good enough for me bye bye bye bye: 안녕...













끄얽... 뭐 이런 노래를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난감하지만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니. _-_);;







지금까지의 생각해오던 것과 너무나도 다른 해석에서 오는 충격에서 어서 벗어나시고,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유익한 결론을 하나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이제 S.E.S.의 달리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작사가의 의도가 자살이었으니, 우리는 이제 이 노래를 듣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S.E.S.의 발랄함을 느끼며 수험생활의 위안을 계속 얻어도 되는 것일까요?




정답은... (두구두구두구두구!!!!!)




듣는 사람 마음대로라는 것입니다.

수험생을 위로해주는 노래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들으면 됩니다.

작곡가 무엇을 의도했든, 우리에게 어떤 감상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부터 해석은 작가의 것이 아닌 온전히 수용자의 몫이 되기 때문입니다.







2.

이제 이 이야기를 익숙한 현대시에 연결시켜 보겠습니다.




먼저 김춘수 님의 ‘꽃’입니다.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자습서나 강의에서 실존이니 뭐니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시로 배웠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제가 수능 언어영역을 잘 모를 때 아무 생각없이 어떤 문제집을 풀다

신동집 님의 ‘오렌지’와 같이 나온 한 세트의 문제들을 죄다 틀렸던 기억이 납니다. 하하.




정말 그날 얼마나 우울했는지 모릅니다. 뭔 소리를 하는지 알지도 못하겠고, 문제를 풀어보니까 다 틀렸고,

해설 보니까 뭔가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하고 있고... 기술이라도 배워야 하나 고민했죠. _-_);




(실은 그렇게 고민하거나 우울해할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말이죠. ^^)




근데 놀랍게도 정말 예~전에 이 시는 연예인들이 좋아하는 시 1위로 뽑힌 적이 있습니다.

‘꽃’을 낭만적인 연애시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죠. 마치 다음과 같이요~







오~ 댜기(자기)~

기술자




댜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나는 다만

한 명의 여학생에 지나지 않았어요.




댜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댜기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어요.




<중략>




우리들은 모두

사랑받는 무엇이 되고 싶다.

댜기는 나에게 나는 댜기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님은 연예인 애송시 1위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이 시는 언어문제와 실존문제에 대해 쓴 철학적인 시라고 했지만

작가의 손을 떠난 이상 작품의 해석은 독자의 몫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춘수 님의 ‘꽃’은 또 굉장히 재미있는 사연이 있는 시이기도 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대표작이자 한국인의 영원한 애송시로 꼽히는 시 ‘꽃’의 일부다. 지난해 겨울 타계한 시인이 생존했을 때 이 시가 뜻하지 않게 오용된 적이 있다. 북한에서 남파한 간첩이 남한의 한 대학교수가 시 ‘꽃’을 읊으면서 접선에 성공했다. 나중에 간첩 수사 사건 보도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시인은 공개석상에서 “북한에서 나를 부르주아 반동분자로 여길 텐데, 내 시를 이용하다니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시가 시인의 손을 떠나면, 그 시의 해석은 독자의 몫이고 권리에 속한다. 시 ‘꽃’을 자세히 살펴보면, 생면부지의 공작원들에게는 더 없이 적절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처럼 한 공작원이 상대방의 암호명을 불러주었더니, ‘그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듯이 접선 상대자가 꽃처럼 아름다운 둥지로 다가왔다는 것이 아닌가.

좋은 시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읊을 수 있다. 좋은 시는 이념과 종교의 차이를 넘어서 무궁한 해석의 자유를 허용한다. 좋은 시는 오용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널리 애용된다.

- 조선일보, <시인들의 봄 - 박해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한 공작원이 상대방의 암호명을 불러주었더니,

그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접선 상대자가 꽃처럼 아름다운 둥지로 다가왔다




참 기가 막힌 해석이죠? ^^













3.

김수영 님의 ‘풀’이라는 시에 대해서 살펴보죠.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담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많은 경우 이 시에서 ‘풀’을 민중으로 배우지만 민중이라고 확정지은 해설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한때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았던 MBC 느낌표 - 책을 읽읍시다 코너에 선정되었던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신경림 시인이 “3년 여에 걸쳐 한국 현대시사를 빛낸 22명의 시인들의 자취를 찾아 나섰다. 생가와 시비, 살았던 곳 등 시인들의 삶의 족적을 들여다보고 삶의 족적과 시의 긴밀한 관련을 파헤쳤다”라고 하는 이 책의 끝에 보면 김수영 님의 풀에 대한 낯선 해석이 등장합니다.







이 시의 풀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민중을 연역한다면 그것은, 역시 이 시의 풀에서 60년대말 박정희의 영구집권을 노리는 삼선개헌을 둘러싸고 기회주의적인 지식인들이 보인 행태를 연역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자의 자유다.

-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337쪽)




풀이 바람이 불기도 전에 더 빨리 눞고, 울고, 먼저 일어나는 것을 기회주의적 지식인과 같다고 본 것입니다.




오세영 교수님(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전 한국시인협회 회장)은 이 작품을 민중도, 기회주의적 지식인도 아니고 ‘절망에 이른 존재가 사랑의 단비를 통해 소생하는 이야기’라며 ‘인생론적 가치의 중요성을 언급한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 오세영(2002), 현대시 연구에 대한 성찰, 시와시학사.










4.

우앙... 뭔가 더 복잡한가요?

아마 “이런 다양한 해석들을 다 알아야만 해?”라는 의문이 생겼다면 마음이 복잡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석이 수용자에 따라 열려있다는 것은 자습서의 해설을 달달달 안 공부 안 하고,

자기 나름대로 읽어도 큰 문제가 없다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해석이냐가 아니라 해석한 내용이 내적 일관성을 잘 갖고 있느냐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아주 중요한 글 두 편을 소개합니다. 제게 많은 깨달음을 열어주신 마광수 님의 글입니다.




시를 해석할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문맥의 순리’를 쫓아가는 태도이다. 그런데도 지금껏 많은 비평가들은 작가의 생애에 맞춰서 시의 문맥을 억지로 조작하려고 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절망이든 희망이든 우리가 처한 상황을 직시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막연한 낙관주의는 필요치 않다.

- 마광수 문학론집 <삐딱하게 보기>에서 발췌







덧: KBS 개그콘서트 - 봉숭아학당에서 박성광 씨가 마 교수라는 인물로 웃음을 주기도 했는데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님이신 마광수 교수님을 패러디한 것이죠. 누가 뭐라든 생각의 힘은 참 대단하신 분입니다.




관련 기사가 있어서 하나 소개합니다.

[뉴시스] 마광수 교수, 박성광 몹시 불쾌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3&aid=0002271104







그리고 수능 출제위원장을 두 번이나 역임하신 김대행 교수님이 쓰신 ‘문학이란 무엇인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 책을 찾아서 읽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수능용으로 이 책을 응용할 수 있는 학생도 있겠지만

그것을 떠나서 교양서적으로도 매우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




작품은 언제나 그대로 있을 뿐이지만, 읽는 사람은 자신의 체험과 삼라만상을 이해하는 눈으로 그 글을 읽으면서 자기 나름의 새로운 발견을 이룩한다.

<중략>

독자가 이렇듯이 문학 작품을 읽어 스스로 그 작품의 의미를 찾오하는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앞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 언어 자체가 지닌 다의성과 삼라만상이 지닌 다의성,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해석의 다양성에 기인한다. 토정비결이 그것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다 자신에게 들어맞는다고 생각하게 하듯이

- 김대행(1992),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사상사.










5.

이렇게 해석의 방향이 열려있다면 도대체 수능 언어영역 ‘시험’에서 현대시를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 것일까요?

일단 지금까지 우리가 읽었던 것을 기억해본다면 50만명 이상이 치는 시험에서 특정 해석을 미리 확정지어 놓고서

이에 대한 질문을 하는 건 힘들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엄청난 이의제기가 올라오겠죠!

(근데 사설 모의고사나 문제집 중에서는 해석을 한 가지로 미리 확정지어 놓고서 문제를 내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그래서 수능 언어영역은 특정한 해석의 방향을 요구할 때에는 <보기>를 학생들에게 던져줍니다.

2009학년도 수능 문제를 하나 제시합니다. 이 문제를 통해서 수능 언어영역은 과연 어떤 시험인지 깊이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2009학년도 수능 언어영역 31번


(가)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한용운, '님의 침묵' -


<보기>를 바탕으로 ⓐ를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 기>
'님의 침묵'에서 ‘노래’와 ‘침묵’은 화자와 ‘님’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되는 시어이다. 한용운은 시 ?반비례?에서 “당신이 노래를 부르지 아니하는 때에 당신의 노랫가락은 역력히 들립니다그려 / 당신의 소리는 침묵이에요”라고 했다. 침묵이라는 부재의 상태에서 ‘님’의 실재를 본 것이다. 화자는 ‘님’을 향해 ‘노래’를 부르는데, 시 ?나의 노래?에서 “나의 노래가 산과 들을 지나서 멀리 계신 님에게 들리는 줄”을 안다고 했다. 이는 화자가 자신의 노래에 ‘님’과 근원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①노래가 제 곡조를 못 이긴다는 것은 ‘님’이 침묵하는 상황을 화자가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이야.
②노래가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돈다는 것은 화자가 부재 속에 실재하는 ‘님’과 깊이 교감한다는 뜻이야.
③‘나의 노래’가 산과 들을 지나서 멀리 나아간다고 한 데서 ‘사랑의 노래’가 자연 친화적임을 알 수 있어.
④침묵을 휩싸고 도는 노래가 ‘사랑의 노래’라는 것은 침묵이 끝나야 사랑이 비로소 시작되리라는 것을 말하고 있어.
⑤침묵하는 ‘님’에게서 노랫가락을 역력히 듣는다는 데서 ‘사랑의 노래’가 화자의 노래가 아니라 ‘님’의 노래임을 알 수 있어.


- 글은 출처를 표시하면 얼마든지 퍼가셔도 좋습니다. ^^
- 상업적 이용을 하는 것을 금합니다.

 

출처: http://cafe.daum.net/Orz-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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