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주 목적은
대중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가 가지는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생각해 본다면
때로는 그것이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이 사회가 가진 비리들을 고발하고 정의를 되찾으며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일반인들을 계몽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Changeling"이란 영화는
영화의 사회계몽적인 역할에 충실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서스펜스에서 오는 재미도 있지만 말이다. :)
때는 1928년, Los Angeles.
Christine Collins라는 싱글맘은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자
Walter라는 9살난 아들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다.
당연히 실종신고를 내고
경찰이 자신의 아들을 찾아주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하지만, 경찰이 자신의 아들을 찾았다고 했을 때
그녀는 그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 아님을
첫 대면에서 바로 알아차린다.
당연하지 않은가!
자기 자식도 못 알아보는 부모는 세상에 없다.
그녀가 경찰이 대려온 아이가
자신이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함에도
경찰은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오히려 5개월동안
아이가 힘든 일을 많이 겪은 탓에 변했을 것이고
어머니인 그녀가 알아 보지 못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그녀를 탓했다.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증거를 수집한 크리스틴은
다시 한번 경찰을 찾아가
자신의 의견을 들어주기를 요청했으나
오히려 정신병원에 보내지고 만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시민을 보호하고 돕기 위해 있는 경찰이
영장도 없이 무고한 시민을
정신병원으로 보낼 수 있는 무시무시한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권력의 속성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권력을 가진 사람이 타락할 수 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왜냐면 절대 권력을 마다할 인간은
많지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의 김정일이 죽으면서
그가 누리던 모든 특권을 주겠노라고 한다면
손사래 칠 인간이 있겠느냔 말이다.
매일 밤마다 자기가 원하는 여자를 골라가며
잠자리를 가질 수 있고,
최고급 위스키와 와인을 원하는 대로 마실 수 있으며
차고에는 페라리와 벤츠, BMW등등 고급차들이 즐비하다...
그야말로 평생을 놀고 즐기며 살 수 있는 것이다.
그 어떤 누구의 간섭과 명령도 없이 말이다.
자신의 말이 곧 법이기 때문에.
이렇듯, 인간은 보통은 이기적이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 사회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적법한 절차 하에
사회정의를 위해서
혹은 그들의 월급이 나오는 세금을 내는
시민들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힘이 없고 가난하고 배운 것이 없다는 이유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가지는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진실은 밝혀져야 하며
부당하게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궁극적인 목표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인들은 과연
그러한 민주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힘쓰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한다.
이 영화에서 Reverend Briegleb 목사가 그랬듯이
경찰의 직권 남용이나 국가기관의 정치적 부패를
폭로하고 바로잡기 위한 일을
게을리 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무관심하게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누군가가 선뜻 찬란한 민주주의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의 정책이 잘못됐다고
이미 적법한 절차로
선출된 대통령인 이명박에 대해서
"귀싸대기를 때리고 싶다"거나 "쥐명박"이라는
원색적인 욕을 해대는 것은
배운 사람으로서의 이성적인 행동도 아닐뿐더러
앞으로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먼저 자신이
평소에 바람직한 정치인을 발굴하는 데에
기여했는가를 생각해 보길 바란다.
어느 날 갑자기 똑똑하고 청렴하며 도덕적인 정치인이
쨘~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 주변의 구의원, 시의원 중에서
정말 시민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을 찾아내 지지하고 키워나가는 것과 동시에
정치인들의 정책에 귀 기울이고
비판과 지지를 보내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말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원한다면 말이다.
우리 사회가 아직 덜 민주적이라면
그건 다른 누구도 원망할 일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바로 그 변화가 되어야 함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