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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도 영혼은 귀족이 되자

김형석 |2009.02.16 10:50
조회 103 |추천 0
위기에도 영혼은 귀족이 되자
 
김형석/거제문화예술회관 관장
 
우리도 어렵지만 위축되지 말고 미래에 투자하자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냉전이 화해 무드로 바뀌고 소련이 개방되자 모스크바에 발레를 배우러 다녀온 예술대학 후배가 20년 전에 얘기한 일화이다. 볼쇼이극장에서 그동안 동경했던 볼쇼이발레단 공연을 관람하기위해 클래식 분위기의 웅장한 극장의 객석에 앉아 감동에 젖을 준비를 하는데 옆자리의 우아하게 차려입은 귀부인이 인사를 했단다. 러시아로 유학을 온지 몇 달 밖에 되지않은 후배는 이런 상류사회 분위기의 마담과는 교류한 적이 없어 누구인지 의문에 쌓였다. 공연이 시작되고도 의문의 귀부인에 대한 생각에 잠겨있던 후배는 한참 후에야 대학 기숙사 옆 시장의 생선가게 아주머니를 떠올렸단다. 당시 발레 공연관람료가 물가에 비해 싼 편이 아니고, 재학 중인 러시아 대학교수의 월급이 한화로 100,000원 정도 할 어려운 시절이라 단골집 생선가게 아주머니라는 생각은 못했다고 한다.
 
32_good4452.jpg'호두까기 인형' 발레공연
 
평소에는 생선의 배를 따는 비린내 나는 삶을 살지만 하루라도 공연장 예절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의상으로 도도한 귀족처럼 문화적 일탈을 하는 그 여유가 마냥 부러웠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예술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아 ‘문화가 생활’이 되어있는 러시아의 문화적 저력과 자부심이 배어있는 국민들을 보고, 작금의 공산권 붕괴 혼란과 경제 파탄을 극복하고 언젠가는 제정러시아의 시대 같은 위상과 영광을 회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고 했었다.
 
21세기 문화경쟁시대를 선도하는 국가의 든든한 '창조형 인재' 양성을
미국 발 금융 위기로 전 세계가 경제 비상상황에 처한 프랑스는 2008년 문화 분야는 호황을 누렸다고 보도했다. 특히 경제 위기에 대한 체감지수가 높아진 하반기에도 박물관, 미술관, 오페라, 록·샹송 콘서트, 연극 공연장 등 문화계는 더 호황이었다고 전했다. 프랑스 언론의 여론조사 보도를 보면 이번 경제위기로 하이테크 제품 구매, 외식비, 여행휴가비는 소비를 50%로 줄이는 반면 문화비용은 평소와 비슷하게 유지할 것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프랑스 국민들의 성숙된 문화수준도 있지만 정부의 문화시책도 그 영향이 클 것이다.
 
dsc_0195_good4452.jpg세계 3대 미술관인 루브르박물관
 
연간 4백만 명의 입장객을 예상해서 지어진 입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방문객 수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상태라는 루브르박물관은 작년 830만 명으로 세계미술관 중 관람객 1위이다. 영국의 경우 국립박물관, 미술관은 무료로 입장하는 반면 유료로 받던 프랑스 정부는 올해  4월부터 25세 이하 관람객에 대해선 루브르와 전국의 미술관, 박물관 입장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젊은 시절 예술교육의 중요성 때문이다. 그렇다고 루브르 박물관이 경영이 흑자라서 그러는 것은 아니며 루브르 박물관의 연간 운영비용은 3,400억 원이나 된다. 프랑스 정부는 지금까지 시행하던 18세 이하 무료에서, 25세 이하로 무료입장을 변경할 경우 연간 2,500만 유로(450억 원) 이상의 입장료 수입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전국 문화공간에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국제공연예술기관협회(ISPA) 자료를 보면 현대 공연장 건축의 다섯 가지 트렌드를 제시한다. 첫째, 예술공간과 상업공간을 함께 수용하면서 운영재원을 충당하는 경향이다. 둘째, 공연장과 전시공간이 동시에 갖추어져 있다. 셋째, 다양한 형태의 극장들을 공연, 행사 등 성격에 맞게 유연하게 변화시키면서 운영한다. 넷째, 공연장의 음향, 무대장비도 이에 맞추어 적절하게 변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마지막으로, 예술교육을 위한 공간을 필수적으로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해외 문화공간 운영 성공사례를 보더라도 최근의 공연장들은 공연 관람과 예술교육의 비중을 50% 정도로 유지하며 운영하는 추세이며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전시공간도 문화예술 향유를 위한 저변확대에 노력하고 있다. 문화선진국들은 어릴 때부터 예술교육을 기초로 하여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고 ‘창의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등 다양한 문화 정책을 실행하여 21세기 문화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국가의 든든한 창조형 인재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자갈치아지매, 아구찜할매, 대구탕아제의 일탈을 기다리며
위기일수록 기본을 다져야 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투자한 문화공간들이 앞장 서야 한다.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메세나운동도 위축될 것이고 기업이나 개인이 설립한 공연, 전시장 보다 상업성이 아닌 공공성에 치중할 명분과 여유가 많기 때문이다. 115개 회원단체를 가진 전국문예회관연합회은 그동안 일부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문화예술이 '모두를 위한 예술' (Arts for Everyone)로 다가가도록 시행하던 복권기금예술사업을 지원금이 축소되자 예술교육 분야는 전액 삭감하고 지방 공연지원사업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전체를 대상으로 문화예술 향수권을 확대시키고, 문화예술의 창의적 기반을 확산하기 위해 문화예술이 소외계층과 소외지역, 또는 문화사각지대에서 국민과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던 취지가 무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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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21세기로 항해하는 범선의 형상, 거제문화예술회관

전국 250개 지방자치단체 중에  수백억 원이 드는 문화예술회관은 짓고 있는 시,군,구까지 합하면 150여 곳이 넘는다고 한다. 거대한 문예회관의 위용이나 숫자가 아니라 시민들에게 다가갈 내용이 중요하다. 하드웨어 보다 소프트웨어 투자에 나서자. 지역민들에게 지성과 감성, 영혼의 양식으로 배를 불리는 우리나라의 문화공간들이 제 갈 길을 가서 부산 자갈치아지매, 마산 아구찜할매, 거제 대구탕아제들도 문화가 삶의 일부가 되는 날이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날이 아닐까? 고난의 겨울이 시작되는데 배 부른 이야기한다고 할지 몰라도 위기가 기회라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죽으면 썩을 몸, 육체의 배나 채우거나 외모나 꾸미지 말고 정신의 양식도 먹으며 글로벌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강건한 영혼을 만들자. 우리도 어렵지만 위축되지 말고 희망의 봄날을 생각하며 미래에도 투자하자. 지방자치제가 꽃 핀지 언제인데 지방에서라도 먼저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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