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골배마실성지(김대건 신부님의 정착지)

김민희 |2009.02.21 11:52
조회 60 |추천 0

 

골배마실은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과 김대건 신부의 신앙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골배마실이라는 지명은 이곳이 옛날부터 첩첩산중인데다 뱀과 전갈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라서 뱀마을,즉“배마실”이라고 부르던 동네에서 시작되는 산골짜기 안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골배마실 성지는 김대건의 소년시절의 향취가 남아 있는곳이요.성소의 꿈을 키우던 곳이다.

 

 

옛날부터 신자들에 의해 구전으로 김대건 신부의 집터가 있던 장소로 알려져 왔던 이곳은 1961년 양지 본당 5대 정원진 루가 신부에 의해 발굴이 시작되어 돌절구와 갖가지 생활도구, 즉 맷돌, 우물터, 구들장 등을 발견하면서 성지개발에 착수하게 되었다.

 

 

선대의 신앙을 이어 받은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은 모방 신부로부터 성세와 견진 성사을 받고 회장에 임명되어 전교에 힘쓰면서,*자신에 아들을 사제의 길로 인도하였다. 그 역시 1839년 기해박해로 체포돼 그해 9월16일 서소문 밖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지금 골배마실은 그 흔적이 없다.다만 김 신부가 살던 집 터만이 골프장(양지 컨트리 클럽)한쪽에 보존돼 그의 석상과 재대,김대건이 어릴적 손길이 닿았다는 늙은 고욤나무 한 그루가 다른 나무들 사이에 무심이 서있을 뿐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선교사로 오신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모방 신부님으로부터(은이 공서) 영세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충남 청양 다락골 출신 최양업 토마(성 최경환 프란치스꼬의 아들)와 충남 홍성 출신 최방제 방지거(최한지의 아들)와 함께 신학공부를 위해 1836년 12월 마카오로 떠났습니다.

 

 

현재 입구에 성지 이름을 세긴돌은 그 옛날부터 집터 밑 땅 속 깊이 잠자던 돌을 발굴하여 글을 새겨 놓았다.

 

 

-설명-

* “네 나이 이제 16살이 됐지?만으로는 15살이고 말이다.”

올해 들어 키가 부쩍 자란 지식이가 김제준은 썩 대견했다.변성기도 오고 코 밑에 수염자리도 생기고 얼굴에 여드름도 몇 개가 났다.제 동생 난식이에게 돌아가신 증조부와 종조부의 생애를 들려주기도 하는 모양이니 그런 때는 제법 가통을 이어 나갈 장남으로서의 몫을 당당하게 해내는 것 같았다.

“오늘부터는 지식이라는 이름 대신 대건으로 부르기로 하자.큰 대(大)자에 이룰 건(建)자,대건(大建).뜻을 크게 이루라는 뜻이다.김대건이라... 10살까지는 재복이,15살까지는 지식이,이제부터는 김해 김씨 문중의 큰 인물이 될 김대건이라...”

“김대건요?”

“그래,오늘 모방 신부님께서 이름을 물으시면 무어라고 대답하겠느냐?”

“김해 김씨 가문의 대건입니다,하고 대답하겠습니다,아버님”

“오냐,대답 썩 잘했다.”

(소설 김대건 한상윤의 장편소설 중에서~)

 

***

가장 아래에 있는 사진은 1/20일 찍은 사진이며

나머지는 2/14 일에 찍은 사진입니다~

밖에서 보면 좀 초라 하다 느끼다가

문을 열고들어 가면

그 느낌을 싹 사라지게하는 묘한 느낌을 주는 곳입니다.

좀 숙연해진다고 해야 되나~~

긴글 읽어 주어 감사하며

찾아가시기 전에, 읽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럼 즐거운 하루되십시요.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