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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않는 사람과의 교제, 그리고 결혼

김정수 |2009.03.03 17:02
조회 677 |추천 1


믿지않는 사람과의 교제, 그리고 결혼

1. 글을 들어가면서..

2. 같이 멍에를 매지 말라는 말씀에 대해~

3. 믿지 않는 자와 교제를 하지 말 것인가?

4. 그럼 결혼은 어떻게 할까요 ?

5. 믿지 않는 상대와 헤어질 때~

6. 글을 맺으면서

 


1.글을 들어가면서

 


샬롬^^

주만남을 운영하면서 믿지 않는 형제, 자매들과의 문제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헤어짐과 만남의 문제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는 잘 모릅니다. 서쪽에 떨어지는 해의 그림자 가득한 노을을 보고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크리스챤 결혼에 관련된 사역을 하면서 벽에 부딪치는 것은 한국적 상황에서 남녀의 성비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미션스쿨을 다닌 적은 있지만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자매를 만났습니다. 결혼 후 2년 정도 힘들었지만 물론 지금은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결혼대상자로 구체적 요건을 적용시켜 기도한 적도 있지만 전 지금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사역자로서 자매에게 사모가 되길 원하지 않고 한 가정의 아내와 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에 만족한다는 제 자신을 바라보면서도 흐뭇한 마음이 생깁니다.


오늘은 믿지 않는 자와의 교제에 관한 내용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 멍애를 같이 매지 말라는 말의 뜻?

 



여기서 불신자들은 바울의 대적자 일수도 있지만 세상의 믿지 않는 자와 복음의 순수성을 저해하는 세력이라는 해석이 타당성을 가집니다. '멍에'는 믿음의 순수성을 저해하는 불신자와의 결혼(고전 7:39), 우상숭배(고전 10:14), 도덕적 타락(고전6:8),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11:4) 등과 밀접한 관련을 갖습니다. 바울은 본 절을 통해 신앙과 윤리적인 면에 있어서 성도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 '불법'은 불신자와 적그리스도의 특징입니다.(롬 6:19;살후 2:3, 7). 반면에 '의'디카이오쉬네)는 신자와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바울은 의를 윤리적인 면에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는 그리스도로 인한 칭의(의롭다고 선포됨)를 그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럼 멍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멍에는 사전적 의미로 ①마소의 목에 얹어 수레나 쟁기를 끌게 하는 둥그렇게 구부러진 막대. ②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을 비유하여 일컫는 말입니다. 영화나 화보에서 소 두마리가 끄는 수레나 쟁기질 하는 장면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장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는 말은 믿지 않는 자와 교제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보다 정확한 해석은 믿는 않는 자와 같이 경영(오이코니아)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경영이라는 말은 빌립보서나 에베소서에서 하나님의 경영을 말할 때와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즉 같이 Manage(영어를 써서 죄송~ 한글 보다 뜻이 더 가까워서요)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회사로 말하자면 동업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가정으로 말하면 결혼하지 말라는 말이겠죠?

간단히 말하면 같이 계획하고 삶을 비전을 가지고 공동의 삶을 이끌어가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순수성이 훼손될 것을 우려한 생각입니다. 이는 저자의 의도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럼 결혼이 아닌 믿지 않는 자와의 교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3. 믿지 않는 자와 교제를 하지 말 것인가?

 


성경(바울)은 믿지 않는 자와 사귀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부연설명하기를 믿지 않는 자와 관계를 끊으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설명하는 것도 같이 경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특히 삶의 부수적인 면은 같이 할 수 있겠지만 삶의 중심되는 것은 같이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교제와 관계해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믿지 않는 사람과의 이성교제는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무방하다 할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이 불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분은 가능하면 신앙이 좋은 사람과 교제하면 더 좋을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믿지 않는 자와의 교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결혼을 약속해서는 안됩니다.

남녀간의 이성교제는 사랑이라는 매개체가 전제됩니다. 주만남 상담코너를 통해 여러번 설명한바 있지만 크리스챤의 사랑은 감정적 사랑이 아닌 인격적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연습이 안 된 분은 성경에서 말하는 인격적 사랑을 할 자격이 아직 미비 된 것입니다. 인격적 사랑은 지식과 감정과 의지가 조화된 사랑이 입니다. 감정(친밀감)은 가장 쉽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입니다. 하지만 실제 삶이 동반되는 감정은 친밀감을 형성하는 노력과 지식 없이는 진정한 사랑이 되지 않고 깨어집니다. 이혼률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혼하자마다 3개월 안에 또는 3년안에 이혼하는 커플의 문제가 여기 있습니다. 너무 사랑했기에 이혼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상대의 성장과정의 아픔과 기쁨의 모든 것을 알아가고 비젼을 공유하는 것이 지식적 사랑입니다. 서로 보고 싶고 같이 있고 싶고 느끼고 싶은 마음은 감정적 사랑입니다. 언약과 신뢰 속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고 노력하는 것이 의지적 사랑입니다.

믿지 않는 자와의 교제는 이러한 사랑의 원리를 적용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크리스챤이 가져야할 사랑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 신이기에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데 이 커뮤니케이션의 통로가 사랑입니다. 믿지 않는 형제, 자매에게 크리스챤의 사랑 원리를 공유하고 설명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의지적 사랑은 하나님과 인간의 입장에서는 언약적 사랑, 말씀과 믿음에 근거한 사랑입니다.

믿지 않는 이성이 인격적인 사랑을 함께 하지 못한다면 이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래적 상황에서 감정은 쉽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적인 열정적 사랑은 같이 삶을 나눌 경우 3개월에서 10개월이 그 한계라는 것이 연구결과 밝혀져 있습니다. 오늘의 진실이 내일의 거짖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진정한 의미인 인격적 사랑을 하길,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길 바라고 계십니다.

 


4. 그럼 결혼은 어떻게 할까요 ?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것이라고 전 단정합니다.

물론 믿지 않는 이성을 전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헤어진 후 믿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영원한 현재 속에 거하시듯 우리는 우리가 가진 시간인 현재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우리에게 없는 시간입니다, 미래는 신의 영역이므로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현재 나의 믿음과 나의 선택을 보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의 선택을 귀중히 여기십니다.

믿는 사람과 결혼해서 전도하는 것이 훨씬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성경에서 이혼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믿지 않는 자일 경우 할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경우도 가능하면 이혼하지 말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러면 너무나 사랑하는데 어떻게 해야하나요? 이런 질문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자신의 사랑의 잣대를 다시 한번 살펴보고 진정 사랑하는 가를 인격적 사랑의 원리에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사랑해서 꼭 결혼해야 한다면 결혼하십시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분명 멀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는 인격적 사랑을 하는 관계이므로 하나님과 진정한 사랑의 관계에 있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며 구원의 문제는 사랑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꼭 결혼하게 되었다면 자신의 구원과 배우자의 구원을 두고 기도하고 정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빛과 어두움(신앙적면에서)은 같이 할 수 없습니다.


교제를 통해서도 변화되지 않는 다면 헤어지십시오. 하지만 헤어질 때 명실할 것이 있습니다.

 


5. 믿지 않는 상대와 헤어질 때 ~

 


믿지 않는 자와 교제를 시작했다면 최대한 인격적 사랑을 통해 주님을 알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강요를 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약속과 맹세 보다는 현재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다짐대로 모든 것이 다 된다면 이 세상에 불행한 사람은 하나도 없어야 합니다.

불가피하게 결혼을 심각하게 고려해야할 당시에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다면 교제의 단절을 조심스럽게 말해야합니다. 이 때 고려해야할 점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이성과 헤어지면 상대방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교회에 대해 적대적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전도하다보면 이렇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전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믿는 않는 사람과 교제하는 것은 이후 많은 문제를 가지게 되는데 결혼하게 되면 가정생활이 쉽지 않고 헤어지더라도 상대에게 많은 상처가 됩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과 헤어질 때는 신앙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헤어진 상대가 주님을 더 믿기 힘든 상황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것으로부터 가치관도 나오고 성격도 나옵니다. 헤어질 때는 영적인 것에서 나온 실제적인 것들이 사유가 되야 합니다.

말같이 현실이 쉽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상황과 상대방과의 관계, 적당한 시기를 고려해 어떻게 상대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고 차후 하나님을 믿게 할 것인가를 연구해야합니다.

 


6. 글을 맺으면서

 


제가 제안하는 것은 연애결혼보다 중매결혼(소개)입니다. 특히 연륜이 있는 분들이 소개해주는 것을 더욱 권장합니다. 실지로 연애결혼은 중매결혼보다 이혼율이 높습니다. 이는 감정적 사랑에 의존하는 관계가 되고 인격적 사랑을 할 여유를 놓치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언약적 사랑인 지적사랑과 의지적 사랑이 결여되기 쉽습니다. 의지적 사랑은 헌신을 바탕으로 하지만 연애는 이 부분을 형성하는 시기를 놓치기 쉽습니다. 이 헌신은 또 서로를 잘 알고 서로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정의을 요구합니다. 성경도 중매를 바람직한 결혼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특히 연애결혼에서 쉽게 형성되는 성교와 동거는 이혼률을 급진시키며 다른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했을 때도 결혼생활에 충실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통계로 나와 있습니다.


믿음의 형제 자매는 가능하면 처음부터 믿음의 배우자를 찾는 것이 바른 방향입니다. 신앙이 바로 서지 못한 사람이 안 믿는 사람과 교제 하는 것에 대해 포용적 성향이지만 오히려 예수 안에 신앙이 바로 선 사람만이 믿지 않는 사람과 교제를 해야 합니다. 이 경우 하나님의 인격적 사랑을 믿지 않는 상대와 공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상대에게는 하나님의 인격적 사랑을 둘의 사랑의 관계에서 보여 줘야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보여 줘야합니다.

마지막으로 믿지 않는 상대와 결혼은 피해야 합니다. 교제는 할 수 있겠지만 결혼은 안됩니다. 결혼하기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헤어질 때는 신앙이 사유가 되지 않도록 지혜를 짜 보세요. 헤어진 믿지 않는 상대가 차후에도 예수님의 사랑을 발견할 여지를 주세요. 현재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당하는 고통은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에 영광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잠시 고자되는 것은 믿음의 결혼이 자신의 것으로 주어질 때 더욱 아름답습니다. 나이와 상황보다는 주님의 말씀을 상고하는 형제 자매는 주님이 가슴으로 기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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