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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 Metheny, "The Way Up"

위준호 |2009.03.06 19:23
조회 62 |추천 0

 

컨템포러리 재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팻 메쓰니(Pat Metheny)의 음악을 소화한다는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의 음악은, 연주자들에게도 매우 고난도의 자세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청취자들에게도 메쓰니만의 컨텍스트를 충분히 숙지할 것을 요구한다.

사실, 재즈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자칭 재즈 매니아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말은 일단 ‘느껴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서양 클래식 위주 음악 교육이 일방적으로 전달해 온 전통적인 화성양식과 악곡전개는 잠시 접어두고, 그저 오늘 하루의 느낌, 내 삶의 기분, 음악을 듣고 있는 공간, 시간, 함께하는 사람들 등의 것들에 모든 것을 맡겨보라는 것이 아마 그 애매하기만 한 ‘느껴보라’는 이야기의 골자인 듯 하다. 그런데, 어디 그 ‘느껴보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던가. 언제나 그렇듯, 마음을 연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어떤 음악을 듣던 간에 느낌이 배제된 청취가 있을 리 만무하다. 우리의 느낌이라는 것이 결국은 익숙함과 경험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클래식은 정형화 되어 이성적인 음악이고 재즈는 자유로운 느낌과 본능의 음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그래서 유치하다. 이런 이분법은 앞서 언급하였던 ‘느낌의 재즈’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일종의 초보적인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클래식도 우리의 일상생활에 ‘느낌’의 풍성함을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침 새벽녘 강변북로를 기분 좋게 드라이브 할 무렵,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이 꽤 ‘쿨’ 하게 와 닿는다는 사실은 들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느낌의 문제이다. 결국 ‘느낌’이란, 경험에 근거하는 셈이다. 따라서, 앞서 이야기 한 것 처럼 메쓰니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이 느끼는 아리송함 내지 난해함의 기분은 사실 메쓰니 음악에 대한 경험의 부재에서 나오는 낯선 기분이라고 요약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에 속하는 것 같다. 호기심에 CD를 구입했다가 맞닥뜨린 쇼스타코비치(Shostakovich)의 난해한 화성에 크게 난감해 하면서도 그 기이한 매력에 휩싸여 며칠을 끼고 살았던 지난 경험이 바탕이 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키스 자렛(Keith Jarrett)의 추상적 즉흥연주와 같은 맥락의 기타 연주라고 스스로 범주화시켜서 그런지, 아니면 이런걸 좀 알아줘야 된다는 호기심 섞인 얄팍한 허영심 때문에 그런건지, 메쓰니의 몽환적 분위기는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졌고, 왠지 내가 그 음악을 알아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묘한 책임감과 동료애가 발동했다. 실례로, 가장 최근에 나온 앨범 “The Way Up”을 구매할 때 내가 느낀 그 망설임 없음, 내지는 주저하지 않음의 느낌은 참 대단한 것이다. MP3 플레이어 하나를 사기 위해서 무려 6개월을 ‘시장조사’ 하였던 나의 전력을 비교할 때, 새로 나왔다는 태그 하나만을 보고 즉시 구입한 나의 그 통렬한 행위는 마치 내가 A형 혈액형을 극복하고 B형이나 O형이 된 것만 같은 묘한 성취감을 갖게 만들었다.

그의 음악은 지극히 사색적이고 개인적인 동시에, 또한 도시적 군중의 심리를 자극한다. 혼자 들을땐 굉장한 Personal Boundary—이것을 대치할 우리말이 뭔지 모르겠다—를 생성하게 만들면서도, 그를 아는 사람들끼리 만날 땐 대단한 결속감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The Way Up”은, 그런 측면에서 메쓰니 특유의 에너지를 가졌다. 한 시간이 넘는 전체 4개의 트랙이 사실상 하나의 테마를 연주하고 있고, 그 경계는 모호하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지는 듯 하면 사실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다. 느린 템포의 여유와 공백이 어느덧 감정을 휘몰아치고, 그것에 달음박질치는 듯 하면 다시 여백으로 돌아간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색의 공간이 갑자기 세상 한복판으로 내몰아지고, 그렇게 내몰린 공간은 다시 나의 것으로 회귀한다.

불후의 명반이라고 감히 평가하긴 아직 이르다. 하지만 한동안 컨템포러리라는 이름에 몸을 숨기는 듯 한 인상을 받았던, 다소 난잡하다고 여겨졌던 일련의 앨범들을 뒤로하고, 그는 다시 그 젊은 시절 그 자신으로 돌아온 것 같다. 퇴근길에 즐겨 듣는 Letter from Home이나 Last Train Home 만큼 멜로디가 확연하게 부각되는 음악은 아니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느껴야’ 할 것 같다.

그냥 틀어 놓아라. 그러면 다가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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