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
"...어?"
"좋아한다구, 너."
피식-
그래 이놈의 정윤호야. 넌 그떄 그저 비죽 웃고 말았겠지만 나는 말야....
꼼지락 꼼지락... 아우 좀 가만있어봐!!
...자꾸 이상하게 심장이 꼼지락대면서 간지러워죽겠단말야. 나 그 날 이후로 한숨도 못잤어, 알아? 다 정윤호 너 때문이야.
"여, 이쁜아."
9년이다. 이 녀석과 알게 되어 친구 먹고 이제 직업을 '동방신기'라는 이름하에 함께하게된, 아니 앞으로도 평생 하게 될...
이 입에 발린 말이라고 남자인 나에게 단 한번도 '김재중' 이라고 불러주지 않고 이쁜아 라고 부르는 대놓고 얼굴에 적어도 처판때기 세장이상을 깔아주신 정윤호와의 인연이 바로 9년째,
"이제 이쁜아 말고 다르게 좀 부르면 안되냐. 내 본명보다 더 지겹다 지겨워."
"왜, 너도 그 호칭 맘에 들잖아."
푸 -!!
그가 늘상 건네주던 분홍색 복숭아음료를 그대로 뱉을 뻔했다. 음료를 뱉지 못한 대신 사레가 들려 쿨럭 대자. 저 사레발생의 주원인 바이러스인 정윤호가 혀를 끌끌 차며 등을 두들겨준다. 눈물이 찔끔 나오려고 하는 눈을 최대한 치켜뜨고 그를 올려다 쨰려보지만, 이 새x 상판떄기는 로보트 태권브이로 만들었나, 깡통주전자로봇으로 만들었나.., 보이지 않는 철판들이 한가득.
그저 입 꼬리를 올린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너 저번에 학교 찾아가던 그 프로..뭐더라, 아무튼 거기서 인형한테 이쁜이라 불렀잖아. 난 그래서 네가 그 호칭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천하에 몹쓸 이 정윤호란 작자는 방송과 현실을 구분 못한다. 이러다가 나중에 공사구분 못한다고 욕 들어먹는 거 아닌가 몰라. 이쁜아는 무슨 얼어죽을, 내가 삼류영화 대사 읊는것도 아니고 진짜 이쁜아이쁜아 거리면서 다닐 것 같냐. 난 너랑 달라서 삼류영화 따위는 안 찍는다고 이 나쁜 철판때기야.
"........ 그래도난 너 이쁜이라 부를래."
제발 삼류영화는 너 혼자 찍어줄래.
*
"으항항항항항!! 야 좀 가만있어봐!! 으항항항!!"
젠장.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스케쥴에 찌들었다가 모처럼 일찍 끝나는 덕분에 집에서 좀 쉬려했더니, 이 동갑내기둘이서 아주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골이 때리고 얼이 빠진다. 도대체 왜 갑작스레 이런 붐이 붙었는지 모르겠으나...,
"야, 김준수. 제대로 하고 있는거 맞아?!!"
"당연하지이! 으항항항항항!! 야야 가만히 있어!!"
그래..., 그 오이 마사지 붐이 분 것 까진 이해하는데 그걸 왜 애 눈에다가 붙여주는거냐 준수야. 길쭉하고 비스듬하게 썬 오이를 유천의 두 눈두덩에 얹더니 후레시맨이 어쩌니 저쩌니하며 자기혼자 깔깔깔 웃어줘음 좋겠는데..
"크하하하하하하하핫!"
박유천 넌 왜 웃는데.
내 침대를 떡하니 차지하고서 후레시맨 놀이를 하고 있는 둘을 내버려두고 거실로 나오는 내내 머리가 띵하게 울리는 기분에 이마를 짚었다.
아 진짜 저 시끄러운 동갑내기들, 언젠가 수선집에 맡겨놓고 입을 재봉틀로 드르륵 봉해버리던가 해야지.
쇼파에서 오이를 물다 지쳐 잠든 창민을 잠시 어이없게 바라보다가 발을 떼어 윤호희 방으로 향한다.
리더이니 뭐니 하는 말도 안되는 철판 열장짜리 억지를 부려가며 얻게 된 독방에서 그는 과연 갑작스레 이 숙소에 붐이 불어버린 오이를 가지고 무얼 하고 있으려나.
아, 내가 너무 심심했나,
이제 별의 별 기대까지 다 드는구나 하고 잠깐 생각하며 그의 방문을 열고 빼꼼히 머리를 집어넣는다.
"............."
사락. 책장 넘기는 소리. 오호, 정윤호 너....,
"큭큭큭..."
..만화책 읽는구나.
그놈이 만화책 지겹지도 않은가, 늘 똑같은 표지의 책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그의 손데 들려있는 것을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언젠가 저 만화에 나오는 대사를 내 앞에서 줄줄 읊어대는 그를 보고 경악을 했던 적도 있었다.
같은 책을 몇 번 읽었냐고 물으니 정확하게 167번이라고 말하는 그 모습조차도 잊을 수가 없다.
난 지금 진심으로 그에게 묻고 싶어졌다.
똑같은 책 168번쨰 읽는데도 그게 그렇게 웃기냐고.
"어? 이쁜아 왔냐."
만화책 광신도의 인사가 그리 달갑지많은 않아 약간 미간을 찌푸리며 방에 발을 들이고 문을 닫았다.
아까는 정말 구멍이라도 날듯 레이저 뿜는 눈빛으로 만화책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번엔 들어와 그저 서있기만 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시선을 받는건 차라리 덜한데, 한사람 앞에서 시선을 받자니 왠지 민망해지는 기분.
그가 앉으라고 침대를 두어번 퉁퉁 두들기고 나서야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걸어가 그가 다리를 뻗어 벽에 기대 앉아있던 침대의 끝에 살짝 걸터앉을 수 있었다.
"이쁜아."
"어."
"...너 오늘 진짜이쁘다."
"야!!!"
............ 정말 입에 염산이라도 부어주고 싶은걸 간신이 참는다.
그동안 9년이란 세월이 허송세월이 아닌지라 분명히 이쁘다는 말 같은 남자로서, 김재중의 친구로서, 김재중이 싫어하는걸 알면서도 불구하고 별멍창작에 이어 이제 이쁘다고 칭찬까지 손수해주시니.... 내 주먹이 이렇게 우는 거 아니겠냐고!
"이쁜아. 오이마사지 해줄게 누워라."
역시 이만화책광신도도 못 피해갈 오이 붐이었는지 그가 앉아있던 옆에 놓여있는 접시엔 가득 몸이 채 썰려 불쌍한 몸으로 뉘여 있는 오이들의 속살들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 뭔가 야하다.
뭐? 김재중 밤금 뭐라 생각한거야, 야하다고? 오이속살가지고..
참나, 갑작스런 내 자신에 어이가 없어서 그저 피식 웃으며 더 이상 야한 생각하는 김재중이 되고 싶지 않아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했다.
하지만 내 엉덩이가 채 5센티도 떨어지기도 전에.
"....아!"
갑작스레 목덜미슷 덥썩 잡아 내리눌러 잡아당기는 손길에 난 그대로 침대위에 눕는 꼴이 되어버렸다. 내가 침대에 눕혀지게 만든 솔길 원인의 제공자인 만화책 광신도가 오이가 썰린 접시를 레스토랑 웨이터마냥 받쳐든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입술 위에 점이.....................,
...야하다.
미쳤어!! 나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는거야.
내속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변태호로 김재중이 깨어나는 것 같은 기분에 팔을 아둥바둥대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내 이마를 벌렁 깐 채 큰 손바닥으로 꾹 누르며 오이를 하나씩 볼에 얹어가는 그 덕분에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김재중 미쳤어, 완전 쪽팔려.
누가 내 속마음을 읽어낸 것 마냥 쪽팔리는 마음에 얼굴이 빨개졌다.
"야, 이쁜아."
"응."
"너 얼굴 빨개."
알아, 그렇게 자각시켜주지 않아도 안다고 이 못된새x야.
흥,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아니, 피하려고 했다.
그 뒤에 그의 말만 없었다면 정말.
다음 편을 기대하시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