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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간 2개 대륙 여행 - 이태리 로마 5월 9일 저녁 ~ 11일 <07년 3월22일~ 5월22일>

마늘 |2009.03.11 22:31
조회 158 |추천 0

 

 

 

 

 

 

 

 

-9일 저녁-

 

 

 

 

 

 

 

숙소에서 잠시 쉽니다.

밤이 됩니다.

체력이 조금 회복됩니다.

로마의 밤거리를 향해 문을 엽니다. 

 

 

성베드로 대성당이 보입니다.

야경이 좋습니다.

거리도 아름답습니다.

성 베드로 성당은 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건립하기 시작했습니다.

1615년 교황 파울루스 5세 때 완성되었습니다.

삼랑식 라틴 십자형 평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성골함을 덮고 있는 주제단 바로 위의 십자형 교차부에 돔이 올려져 있습니다.

현재 교황의 교회로 쓰이고 있습니다.

중요한 순례지입니다.

교회를 짓겠다는 구상은 구성베드로 대성당의 황폐한 모습을 보고 자극받은 교황 니콜라우스 5세(1447~55 재위)가 처음 생각해냈습니다. 당시 구성베드로 대성당의 벽은 몹시 기울어 있었습니다. 프레스코도 먼지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니콜라우스는 1452년 베르나르도 로셀리노에게 구 성베드로 대성당 서쪽에 새로운 앱스를 지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니콜라우스가 죽자 공사는 중단되었다. 1470년 파울루스 2세는 이 기획을 줄리아노 다 상갈로에게 맡겼다
1506년 4월 18일 율리우스 2세가 새 바실리카를 위한 초석을 놓았습니다. 건물은 도나토 브라만테가 설계한 평면에 따라 그리스 십자형 평면으로 건립하기로 합니다. 1514년 브라만테가 죽은 뒤 레오 10세가 브라만테의 후계자로 임명한 라파엘로, 프라 조콘도, 줄리아노 다 상갈로는 원래의 그리스 십자형 평면을 수정해 기둥으로 구분된 삼랑식 라틴 십자형 평면으로 바꿉니다. 1520년 라파엘로가 죽은 뒤 후임 건축가로 대안토니오 다 상갈로와 발다사레 페루치, 안드레아 산소비노가 임명됩니다. 1527년 로마가 함락당한 뒤 파울루스 3세(1534~49 재위)는 이 공사를 소안토니오 다 상갈로에게 맡깁니다. 상갈로는 다시 브라만테의 설계를 답습합니다. 새 바실리카를 지을 공간과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구 바실리카의 동쪽 부분 사이에 분리벽을 설치합니다. 상갈로는 1546년 죽습니다. 이 후 파울루스 3세는 앞서 율리우스 3세와 피우스 4세 때에도 수석 건축가로 일했던 노령의 미켈란젤로에게 다시 일을 맡깁니다. 미켈란젤로가 죽은 1564년 당시에는 거대한 돔을 받칠 드럼(원통형 구조물)이 사실상 완성됩니다. 그의 후임자는 피로 리고리오와 자코모 다 비뇰라입니다. 그뒤 그레고리우스 13세(1572~85 재위)의 위촉으로 자코모 델라 포르타가 공사를 진행합니다. 미켈란젤로가 변경했던 돔 설계는 식스투스 5세(1585~90 재위)의 고집으로 마침내 완성됩니다. 그레고리우스 14세(1590~91 재위)의 명령으로 돔 위에 랜턴(채광창)이 세워졌습니다. 클레멘스 8세(1592~1605 재위)는 구성베드로 대성당의 앱스를 헐고나서 칼릭스투스 2세의 제단 위에 새로이 높은 제단을 세웁니다. 파울루스 5세(1605~21 재위)는 동쪽으로 네이브를 확장시켜 라틴 십자형으로 변형시킨 카를로 마데르노의 계획안을 채택합니다. 이에 따라 길이 187m에 이르는 주 구조물이 완성됩니다. 마데르노는 또한 이 바실리카의 정면을 완성합니다. 정면 양쪽 끝에 캠퍼닐(종루)을 받치기 위한 여분의 베이를 덧붙입니다. 마데르노는 2개의 캠퍼닐을 설계했으나 하나만 지어집니다. 다른 하나는 1637년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설계한 다른 모양으로 세워집니다. 베르니니는 알렉산데르 7세(1655~67 재위)의 위촉을 받고 콜로네이드[柱廊]로 둘러싸인 타원형의 광장을 설계해 바실리카의 진입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바실리카의 내부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의 걸작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가운데 유명한 것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Pietà〉, 베르니니가 만든 주제단 위의 천개, 교차부에 있는 성 롱기누스 조상(彫像), 우르바누스 8세의 묘, 앱스에 있는 청동제의 성베드로 주교 등입니다. 성베드로 대성당은 1989년까지 그리스도교 교회로서는 가장 큰 교회였으나 같은 해 코트디부아르의 야무수크로에 더 큰 바실리카가 새로 지어집니다.
이곳을 짓기 위해 로마 교회는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후에 종교 개혁을 불러오는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테베레강 천사의다리가 보입니다.

조명이 좋습니다.

뒤쪽으로는 천사의 성이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서 나보나 광장 쪽으로 향합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습니다.

로마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해야합니다.

카메라를 제외하고 큰돈은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입니다.

<da quinto gelateria>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태리의 아이스크림은 맛있기로 유명합니다.

 

 

가지수가 상당히 많습니다.

적당히 맛있어보이는 아이스크림은 손가락으로 찍어서 주문합니다.

금방 만들어서 내어줍니다.

바빠서 그런지 점원이 그리 친절하지는 않습니다.

 

 

요거트와 쿠키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이 나옵니다.

<da quinto gelateria>는 축구선수 totti가 다닌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맛있게 먹습니다.

힘이 납니다.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은 테베레 강과 코르소 거리 사이에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서있습니다.

앞에는 동전 바구니가 있습니다.

정말 움직이지 않습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타이도 연출이 잘 되어 있습니다.

광장의 역사는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일대는 1세기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만든 황제 도미티아누스 경기장이 있던 곳입니다.

경기장의 관중석 계단이 있던 그 자리에 오늘날 광장을 빙 둘러 감싸고 있는 건물들이 세워졌습니다.

이 경기장은 모형 해상전투, 대중을 위한 놀이 등의 행사가 거행되던 일종의 매머드 스포츠 복합시설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이것이 파괴되어 흔적이 거의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중세기 동안에는 민중들의 축제행사가 이곳에서 계속 열렸습니다.

19세기에도 떠돌이 광대들이 무더운 8월의 휴일에 우스갯거리를 들고 나와 대중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현재의 직사각형 형태로 광장이 건축된 것은 17~18세기의 일입니다.

그 뒤로 변형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는 지롤라모 라이날디에게 명령하여 팜필리 궁전을 재건축합니다.

그때까지 버려졌던 광장을 재정비하게 됩니다.

교황은 성녀 아녜스가 순교했던 그 자리에 성 아녜스 성당도 짓도록 합니다.

중세 때에도 이미 이 경기장 성벽 위에 첫 번째 성당이 세워졌다가 나중에 파괴되었습니다.

그 잔해 위에 건축가 보로미니가 새 성당을 건축하였습니다.

나보나 광장에는 바로크풍의 분수가 셋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광장 가운데 자리잡은 4대 강 분수(Fontana dei Quattro Fiumi)입니다.

베르니니가 설계한 것입니다.

네 사람의 비유적 형상은 나일 강, 갠지스 강, 다뉴브 강, 리오 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광장은 시끄럽습니다.

아이들도 많습니다.

이것 저것 많이 팝니다.

사람사는 냄새가 납니다.

나보나광장을 지나 판테온으로 향합니다.

  

  미켈란젤로가 '천사의 설계'라고 극찬한 고대 로마 건축의 백미 판테온이 보입니다. 원래는 평범한 고전적 신전으로 지어진 곳입니다. 박공 지붕을 씌운 4각형 평면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4면에 콜로네이드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18~128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완전히 재건되었습니다. 3세기초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와 카라칼라 황제 때 부분적으로 개축되었습니다. 콘크리트 구조에 벽돌을 덧댄 원형 평면의 건물입니다. 벽 위에 거대한 콘크리트 돔을 올렸습니다. 세베루스나 카라칼라가 아그리파의 원래 건물에서 떼어낸 것으로 보이는 코린트식 기둥의 정면 현관은 3각형 박공이 있는 경사 지붕을 받치고 있습니다. 카라칼라와 아그리파는 고등학교 입시때 징그럽게 그렸습니다. 입시때는 비너스가 나왔습니다. 현관 아래쪽에는 높이 7m의 거대한 청동문 2짝이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대형문 중에 최초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판테온은 그 규모, 구조 및 설계가 매우 특이합니다.

지름이 약 43.3m이고 기단으로부터의 높이가 21.6m에 이르는 돔은 근대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는 가장 큽니다.

돔 안쪽을 받치는 벽돌 아치는 가장 아랫부분을 제외하고는 외부에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정확한 공사방법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2가지 요소가 이 건물을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콘크리트에 쓰인 모르타르의 뛰어난 질, 세심한 골재 선택과 분류가 바로 그것입니다.

건물의 기초 부분과 벽의 아래쪽에는 무거운 현무암을, 그 위에는 벽돌과 응회암(화산회로 형성된 암석)을, 그리고 돔의 가운데 부분에는 부석 중에서도 가장 가벼운 것을 각각 사용했습니다.

그밖에도 밖에서 보았을 때 원통형 외벽 위쪽의 1/3 부분은 안에서 본 돔의 아래쪽 부분과 일치합니다.

내부의 벽돌 아치와 함께 추력을 억제하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원통형 벽 자체는 벽 내부에 위아래로 연결된 벽돌 아치와 벽기둥으로 보강되며 두께는 6.1m에 달합니다.

현관의 설계는 평범하나 건물의 본체는 혁명적입니다.

판테온은 웅장합니다.

잠시 역사속에 들어갑니다. 로마는 할 말이 많은 도시입니다. 콜론나 광장쪽으로 향합니다.  

 

도시자체가 박물관입니다.

역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도 뭉클해집니다.

로마에서는 뭉클할 일이 참 많습니다.

휴지를 꼭 지참하고 다닙니다.

 

 

콜론나 광장입니다.

트레비 분수가 보입니다.

여기저기 샾들도 보입니다.

야경이 좋습니다.

 

 

트레비 분수는 후기 바로크 예술의 걸작입니다.

교황 클레멘스 12세의 명을 받아 N. 살비(1639~1751)가 설계했습니다.

1732년에 착수하여 1762년에 완성했습니다.

분수는 반인반수의 해신 트리톤이 이끄는 전차 위에 해신 넵투누스가 서 있는 모습입니다.

트레비(삼거리)란 이름은 분수의 앞에 있는 광장이 3갈래 길이 모이는 곳이어서 붙은 이름입니다.

뒤돌아서서 이 분수에 동전을 던져넣으면 로마를 다시 방문할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다시한번 로마에 방문하길 바라며 동전을 던져 넣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많이 걸었습니다.

피곤합니다.

늦지 않게 숙소로 들어옵니다.

 

 

 

 

 

 

 

-10일-

 

 

 

 

 

늦게 일어납니다.

배가 고픕니다.

어제 밤에 갔던 나보나광장에서 식사를 하기로 합니다.

서둘러 움직입니다. 

 

 

적당한 레스토랑을 찾습니다.

날씨가 덥습니다.

일단 맥주를 주문합니다.

 

 

생맥주가 나옵니다.

시원합니다.

역시 점심에 마시는 맥주는 좋습니다.

 

 

샐러드가 나옵니다.

배가 많이 고픕니다.

사진의 포커스가 나갑니다.

맥주와 함께 맛있게 먹습니다.

 

 

나보나광장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레스토랑에도 사람들이 많습니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립니다.

광장에 있는 사람들도 구경합니다.

 

 

봉골레가 나옵니다.

이태리의 레스토랑은 어딜 가도 맛있습니다.

기본 이상은 하는것 같습니다.

 

 

크림파스타도 나옵니다.

치즈가루가 듬뿍 올려져 있습니다.

역시 맛은 좋습니다.

배가 부릅니다.

밤이라 자세히 못봤던 판테온 광장으로 향합니다.

 

 

낮에는 안에 들어갈수 있습니다.

입장료는 없습니다.

 

 

판테온은 어마어마한 구형 공간이 돔 중앙에 있는 지름 8.2m의 '눈', 즉 오쿨루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에 의해서만 채광되고 있습니다.

이는 외부보다는 내부를 더 중요시한 고대의 몇몇 거대 건축물 중 최초의 예라고 합니다.

소박한 외관과는 달리 건물 내부는 알록달록한 대리석으로 입혀져 있습니다.

벽에 우묵한 곳이 모두 7군데 있습니다.

이 앞을 가리는 1쌍의 기둥은 그 수수해보이는 크기가 거대한 원형 홀의 규모를 짐작하게 해줍니다.

천장의 4각형 정간은 세베루스 때 새겨진 것으로 보이며 청동제 장미 장식과 몰딩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판테온은 609년에 산타마리아로톤다, 또는 순교자 교회로 봉헌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천장의 청동제 장미장식과 몰딩을 비롯한 청동 장식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고 없어졌습니다. 후기 르네상스에 스투코로 장식한 프리즈가 내부 돔 바로 아래에 덧붙여졌습니다. 이를 제외하면 건물은 아직도 원래 모습을 완전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신기합니다. 로마인들의 건축술에 감탄합니다.  

 

테베레 강은 지저분 합니다.

강이라고 할만큼 크지는 않습니다.

아펜니노토스코에밀리아노 산맥의 주요봉우리인 푸마이올로 산 사면에서 발원하여 405㎞를 흐르는 강입니다.

경관이 수려한 일련의 골짜기와 넓은 계곡을 통해 대체로 남쪽 방향으로 구불구불 흘러 로마 시를 거친 후 오스티아안티카 근처에서 지중해의 티레니아 해로 유입됩니다.

주요지류는 키아스키오·네스토레·팔리아·네라·아니에네 강입니다.

로마 아래에서 삼각주로 들어가며 지류들로 갈라집니다.

주요지류는 피우마라 강입니다.

북쪽에서는 피우미치노 강이 갈라져 나옵니다.

몇몇 고대 작가들은 하얀 강물 때문에 '알불라'라고 불리던 원래 이름이 이 강에서 익사한 알바롱가(로마 남쪽 알바노 호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왕인 티베리누스의 이름을 따서 티베리스로 개칭되었다고 주장했다고 전해집니다.

바티칸으로 향합니다.

도보로 이동합니다.

멀지 않은 거리입니다.

 

 

바티칸 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넓습니다.

관광객들도 많습니다.

역대 로마 교황의 거주지였던 바티칸 궁전을 박물관으로 개조했습니다. 16세기 초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이 곳을 세계 권위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유명 예술가들을 초대해 건축과 장식을 맡겼습니다. 덕분에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 등 대가의 흔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볼 것이 많아 즐거운 곳입니다. 자세히 보려면 하루 이상이 걸립니다. 적당하게 둘러보기로 합니다.

 

 

시내에 위치하는 바티칸 시국에 위치해 있습니다. 역대 교황이 수집한 귀하고 값비싼 물품을 소장 전시하는 세계 최대급의 미술관입니다. 이탈리아어식 관명은 단수형의 Museo가 아니라 복수형인 Musei로 되어 있습니다. 공식 관명은 ‘교황의 기념물 박물관 갤러리(Monumenti, Musei e Gallerie Pontificie/영:Pontifical Monuments, Museums and Galleries)’라고 합니다.  무리하지 않게 봅니다. 로마는 역사공부를 하고 다시 오기로 합니다. 머리가 역사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부하가 걸립니다.

 

 

시내의 이곳저곳을 가볍게 다닙니다.

로마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다음날은 오스트리아를 갑니다.

무리하지 않습니다.

 

 

 

 

 

 

 

-11일-

 

 

 

 

 

 

4시비행기입니다.

아침에 일어납니다.

조찬을 하고 테르미니 역 주변을 관광합니다.

점심때 짐을 싸거 기차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합니다.

 

 

역 근처에서 피자를 한조각 먹습니다.

로마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이 좋습니다.

 

 

기차를 탑니다.

깨끗합니다.

끝까지 소매치기에 대한 긴장은 늦추지 않습니다.

시간에 맞추어 공항에 도착합니다.

출국수속을 마칩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푹 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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