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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 2009년 블록버스터의 포문을 열다.

김호영 |2009.03.16 18:38
조회 73 |추천 0

 

 

왓치맨(2009, Watchmen)

 

 

감독 잭 스나이더 배우 말린 애커맨 / 빌리 크루덥 / 패트릭 윌슨 장르 액션 / 미스테리 / 블록버스터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시간 161 분 개봉 2009-03-05 국가 미국 / 영국 20자평 평점 : 7.21/10 (참여 2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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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 2009년 블록버스터의 포문을 열다.

 

 

 

‘난 타협하지 않겠어. 대종말의 위협 앞에서도.’

 

2009년을 맞아, 드디어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공습이 시작됐다.

그 선두에 서 있는 왓치맨을 시작으로

다수의 블록버스터들이 저마다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고 있다.

다른 해에 비해 작년 연말에는

블록버스터들의 숫자와 성과 모두 현저히 떨어졌었기 때문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블록버스터에 대한 갈증으로 인해 왓치맨의 기대치가 높아져 있을 것이다.

더더군다나 인상 깊은 액션 영상으로 남자 관객들을 만족시키고.

울끈불끈 화려한 근육 몸매로 여성 관객들을 매료시켰던,

‘300’을 연출한 잭 스나이더 감독이 아니던가!

물론 나도 블록버스터를 맛보고자 입맛을 다시며 극장으로 들어섰었다.

무엇보다도 극장에서 예고편을 수차례나 보아왔었는데,

영상에서 풍겨지는 다크스러움이,

작년 여름 날 설레이게 했던 ‘다크 나이트’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면서

나의 기대와 흥분을 한껏 고조시키고 있었다.

 

 

 

 

 

‘적어도 난 마스크 뒤에 숨지는 않았어’

 

결론부터 말해보자면,

이 영화는 화려한 액션과 특수효과로 담금질한 오락영화가 아니라,

사회, 정치(전쟁), 역사의 허구적 재구성을 통한 풍자극이었다.

사실 어느 정도 사회적인 이야기를 담을 것은 예상했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왓치맨이라는 것 자체가 히어로이면서도 감시자의 역할을 일임하게 된 것이 아닌가.

게다가 ‘브이 포 벤데타’의 원작자인 앨런 무어의 작품이라는 소식에

‘브이 포 벤데타’에서처럼 ‘빅 브라더(사회통제 권력으로서의 감시 체제)’나

‘판옵티콘(감시체계를 뜻하는 원형 감옥)’을 이용하여

영국을 비롯한 유럽 곳곳에서는 이미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감시에 대하여

의미심장한 표현들을 보여주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했었다.

 

 

 

‘그럼 왓치맨은 누가 감시하는가?’

 

그런 기대를 품은 이유에는 영화의 예고편에 삽입된 대사도 한몫 거들었다.

‘정치적인 살해였을까?’와 그리고 정확한 대사는 바로 위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지만,

예고편의 카피로 쓰인 ‘그들은 우리를 감시한다. 하지만 누가 그들을 감시하는가?’라는 문장은

이 영화가 감시체계를 바탕으로 전반적인 이야기를 펼쳐나갈 것이라는 나의 생각에

찬성표를 마구마구 던져주고 있었다.

어쩌면 한 발짝 앞서가서, ‘누가 그들을 감시하는가?’ 라는 대목은

시놉티콘(감시 체계를 이용한 역감시<逆監視>)의 가능성마저 제시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었다.

전적으로 이 영화는 허구를 바탕으로 한 재구성을 통해

풍자를 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내 나라에서 싸우는 게 더 재밌구만.’

‘나의 삶은 조크 그 자체다.’

 

이런 풍자극을 이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인물로 사용된 것이 바로 ‘코미디언’이다.

영화 속의 대사처럼 ‘코미디언이 되어 세상을 조롱한 것이다.'

왓치맨의 일원 중에 한명인 코미디언은 영화의 시작과 함께

의문의 사나이에게 살해를 당하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 내내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살해당한 코미디언 자신은 그 의문의 사나이가 누군지 알고 있다.)

그만큼 일찍 죽긴 했지만, 풍자극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임을 반증한다.

그리고 역사의 재구성에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바로 그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범이라는 설정이 그것이다.

거칠고, 비도덕적이며, 대통령을 암살한 히어로 코미디언.

그의 캐릭터 자체가 바로 풍자를 대변하고 있다.

 

 

 

 

‘배터리 빠는 기분이야.’

‘파란색이 너무 밝아요.’

 

왓치맨의 히어로들 가운데 유일하게 초인적 능력을 지닌 인물은 닥터 맨하튼이다.

그는 전지전능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그의 닉네임으로도 말미암아

UN을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초인적 능력에 제한은 없다.

그는 화성으로까지의 순간이동이 가능하며(경기도 화성이 아니다. 하하.),

신체의 크기와 밝기 변화도 가능하며, 자신을 여러 명 복제할 수도 있고,

모든 구성물들을 분해 재조립할 수 있다.

그런 그에게 중요한 소품이 있다.

바로 시계인데, 그가 초인적 능력을 얻게 된 것도

실험실에 두고 온 속목시계를 찾으러 가다가 갇히게 되어 발생한 것이며,

그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 시계의 분해와 조립이다.

그리고 후반부 닥터 맨하튼이 인간과 세상에 관심을 잃게 되면서

화성으로 순간 이동하여 화성에 커다랗게 세워놓은 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시계 부속품 모형이다.

이것은 바로 역사의 재구성을 뜻한다.

 

 

 

 

‘난 모든 걸 바꿀 수는 있지만, 인간의 본성은 못 바꿔.’

 

그가 실험실로 다시 시계를 찾으러 가는 순간은

역사를 다시 찾아가는 순간인 것이고,

그가 종종 시계나 부속품들을 분해 및 재조립을 시도하는 것은

이 영화의 전반에 깔린 역사의 재구성을 뜻한다.

이 역사의 재구성에 ‘코미디언’처럼 닥터 맨하튼이 직접 참여하는 부분이 있다.

미국의 뼈아픈 오점과 실패를 남겼던 베트남전을

닥터 맨하튼의 주도 아래 베트남의 일방적인 굴복과 미국의 손쉬운 승리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외에 또 다른 역사의 재구성에 놓인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국 대통령 역사상 유일하게 사임을 당했던 닉슨이

이 영화에서는 3선에 성공했다는 설정으로 나온다.

그야말로 역사의 재구성을 통해 신랄한 풍자극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풍자가 절정에 다다르면서

권력과 전쟁의 정당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자세한 얘기는 김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_ㅠㅠㅠ)

 

 

‘지옥에 떨어져버려 존! 지옥에 떨어지라구! 당신을 헌신적으로 보살폈는데 그 댓가가 이거야?’

 

아무튼 이렇게 막강한 능력을 가진 닥터 맨하튼이

인간과 세상에 점점 관심을 잃어가는 것도 큰 의미를 가진다.

선과 평화를 추구하는 듯 보이지만,

이미 인간과 세상은 하찮은 존재이며, 무관심의 대상일 뿐이다.

세상을 주무르는 소수의 권력자들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물론 시민들을 대변하는 캐릭터들도 있다.

 

 

 

 

‘난 너희들이랑 갇힌 게 아니야. 너희들이 나랑 갇힌 거지.’

 

나이트 아울과 실크 스펙터는 대다수의 시민들이 그런 것처럼

그저 방관자에 머물러있을 뿐이다.

그들이 히어로 2세에 머무는 것도 그저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불과함을 표현한다.

사실 이들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으므로,

중대한 위치에 놓아져있는 다른 캐릭터를 살펴보자.

 

 

 

 

‘당신 차례야 닥터. 뭐가 보이지?’

 

코미디언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이를 뒤쫓는 히어로가 있다.

바로 ‘로어셰크’이다.

로어셰크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 영화가 풍자하는 역사와 사회 속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캐릭터인 것이다.

 

로어셰크의 마스크는 시시각각 변하면서 데칼코마니의 형태를 띠고 있다.

복잡한 심리변화를 이입해주는 것인데,

이 복잡한 심리 변화가 비롯되는 것은 권력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부딪히는 수많은 난관이다.

방관자를 넘어서 뭔가를 바로 잡아보려 노력하는 시민연대인 셈이다.

어쩌면, 서두에서도 언급했던 ‘시놉티콘’에 가까운 인물이기도 하다.

이 부분이 도드라졌으면 좋겠지만 내 의견은 어찌됐던 간에,

로어셰크의 마지막 결말이 보여주듯이

가장 커다란 스토리 텔링은 권력과 전쟁 등이 가지는 정당성에 대한 풍자이다.

 

 

 

‘코미디언이 울 정도로 두려워한 게 대체 뭐야?’

‘인간이면 체포하겠지만, 개는 죽어야 해.’

 

아이언맨, 다크나이트 등에서 이어져 오는 현실적인 히어로들의 캐릭터가

왓치맨에 이르러서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대변하면서

더욱 현실적인 측면에 한 발짝 다가서고 있다.

게다가 거대한 블록버스터를 통해 역사와 사회를 풍자하고 있으니,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서, 심도 깊은 이야기를 조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지는 문제점은 블록버스터를 자청하고,

많은 이들에게 이 풍자를 보여주려고 한다지만,

과연 대중과 소통할 수 있겠는가? 이다.

 

 

 

 

 

‘1985년 10월 16일. 로어셰크의 일기.’

 

새로운 영상혁명을 제공한다는 이 영화의 슬로건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물론, 한 대의 카메라만으로 촬영하면서,

기존의 헐리웃 블록버스터들의 촬영 방식을 거스르며,

영상에 참신함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오프닝에서부터 이 영화의 주특기인 고속촬영기법을 이용한 슬로우 모션은

영화 ‘300’에서 보아왔던 것보다 확실히 그 질감면에서도 탁월한 것은 인정하겠다.

하지만 오프닝 내내 이 기법을 사용하면서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너무 자주 남용을 하고 있다.

거장 감독들이 영화를 만들 때에는 무엇이 되었든

그것을 꼭 필요할 때에만 적시적소에 사용을 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너무 남용하게 되면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왓치맨’은 스스로 불러온 영상적 자만심이 오히려 해가 되어,

다수의 관객으로 하여금 지루한 지루(遲漏)를 느끼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랜만에 찾아온 블록버스터에 기대를 한껏 부풀리고 극장을 찾는 관객이라면,

오락적 측면에 대한 기대는 한풀 접어두고 상영관에 들어서는

현명한 자세를 취해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별점 ★★★☆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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