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은 드러났지만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논란을 조사해온 대법원 진상조사단이 어제 ‘재판 진행·내용 관여 및 사법행정권 남용의 소지가 있다’는 결론을 내놨다. 신 대법관의 행위가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어서 허용될 수 없다는 사법행정의 한계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에 대한 징계·진퇴는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판단에 맡겼으나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퇴진은 불가피해 보인다. 미흡한 구석이 있으나 고심한 흔적은 엿보인다.
우리는 대법원이 위계 질서가 엄격한 법원 조직에서 상급자의 재판 간섭과 사법 행정권의 경계를 명확히 했다는 점을 주목한다. 조사단은 “위법한 재판을 막거나 명백한 실수를 바로잡기 위한 주의, 촉구 등의 경우가 아닌 한 재판의 내용이나 절차 진행에 대해 구체적 지시를 하거나 특정 방향이나 방법으로 직무를 처리토록 요구하는 것”으로 사법 행정권의 한계를 규정했다. 이러한 기준이 제2, 제3의 유사한 사태 재발 방지는 물론 사법 관료주의를 타개하고, 재판부의 독립권을 확고히 하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길 기대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신 대법관의 퇴진이나 부당한 압력 인정만으로 끝낼 일은 아니라고 본다. 신 대법관이 재판 진행·내용에 관여했지만 촛불 재판 등의 양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조사단의 판단은 석연치 않다. 신 대법관과 젊은 판사들의 주장을 절충한 듯한 결론이 이용훈 대법원장의 연루 의혹을 은폐하기 위한 꼬리 자르기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이 대법원장은 이 사건이 불거지자 “판사가 그 정도에 압력을 느껴서야 되겠느냐”고 밝힌 터다. 이 대법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포함해 분명한 입장을 표명해야 할 대목이다.
궁극적 해법은 실추된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가시적 개혁 조치 마련이라 하겠다. 한두 사람에 의해 자의적으로 좌지우지될 수 없는 시스템 구축이 그 요체일 것이다. 지난해 2월 신임 법관 임명식 때 이 대법원장이 밝힌 “법관의 독립은 법관에게 주어진 명예와 존엄성의 표상”이라는 언명은 말로 담보되지 않는다. 바로 이번 파동의 교훈이다. 이번 사건은 사법부의 환골탈태 계기가 돼야 한다.
2009년 3월 16일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