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Islam)의 팽창은 중세사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지중해 문화권은 이제 비잔틴과 유럽 그리고 이슬람 세력의 세 문화권으로 분할되었다. 이 세 블록은 여러 측면에서 모두가 로마 제국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비잔틴 제국은 로마의 법, 행정 및 사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따르고 있었으며, 서유럽도 로마 전통의 많은 것을 유산으로 받았다. 이슬람 역시 로마 제국의 조직과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과 학문을 소화했었다. 로마 제국도 후기에 와서 동방의 문화적인 영향을 받았으나 이슬람은 보다 직접적으로 페르시아와 이집트의 동방적인 전통의 유산을 받았다.
이슬람교는 마호메트에 의하여 창시된 종교이다. 마호메트(Mahomet, 570~632)는 메카의 유명한 가문에 속했으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유한 과부에게 속한 대상(隊商)의 경영자로 일하다가 여주인과 결혼하였다. 마호메트는 40세에 천사장 가브리엘을 통하여 알라 신이 주는 계시를 받았다면서 예언자로 자처하고 이슬람의 경전 코란을 기록하였다. 코란은 마호메트가 사막에서 기도와 신비적인 경험으로 계시를 받아 영감으로 기록했다는 짧은 어록집이다. 마호메트가 한 그룹의 신자들을 거느리고 메카로부터 메디나로 피신한 622년을 이슬람교의 원년으로 기산(起算)한다. 이슬람교는 아랍의 일부 종족들이 믿던 아브라함의 종교와 유대교, 그리고 불완전하게 전해진 기독교와의 혼합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교는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예수를 뛰어난 선지자들로 구별하면서 마호메트는 가장 뛰어난 최후의 선지자로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이전의 위대한 예언자라고 말하는 마호메트는 구약의 예언자들이나 그리스도와는 달리 유능한 정략가요 탁월한 전략가였다. 그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초기에 그는 메디나의 유대인들에게서 협조를 얻었으나 그들이 더 이상 필요없게 되자 그들을 적대시하였다. 필요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습격하여 탈취하는 일도 서슴치 않고 해냈다.
이슬람이라는 말은 알라의 뜻에 ‘순종’한다는 뜻이다. 이슬람교는 단일신론(Monotheism)에 근거하며 구약 종교와 기독교를 혼합한 하나의 종파라고 할 수 있다. 경건한 무술림(Moslem = 이슬람교도)은 매일 다섯 번을 기도해야 하며, 구제를 해야 하고, 해마다 30일간 해가 뜰때부터 질 때까지 육식, 음주, 목욕, 향수, 성생활 등을 삼가야 하며, 일생에 한번은 자신이 직접 혹은 대리인이 메카를 순례해야 한다. 이슬람교의 교리는 단순하며 상벌 사상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큰 종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비와 사랑을 베풀며 선을 행하도록 가르친다. 가정 생활이 중요함을 강조하기는 하나, 한 남자가 네 사람의 아내를 가지는 것을 허용하는 점이 특이하다. 포상에 관하여 기독교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약속하며, 피안의 세계에 대한 설명도 구체적이다. 예를 들면,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소원이나 욕구에 대해서 하늘나라에서 충족함을 받는다고 한다. 거기서 술도 마시고 노름도 하며 아름다운 검은 눈을 가진 처녀들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상급(賞給)에 대한 이슬람교의 유치하리만큼 단순하고 구체적인 약속은 아랍인들이 점령한 여러 나라에 사는 수많은 백성들을 개종시키기에 충분한 매력이 되었던 것이다.
아랍인들은 이미 주전 1000년 이전부터 지중해 세계로 진출하려고 시도해 왔었는데, 이슬람이 지중해 동쪽과 남쪽 해안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그 꿈을 이룬 셈이었다. 8세기와 9세기에 이 지역에 사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마호메트가 시작한 새 신앙을 좇아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및 북아프리카에서 큰 교세를 이루었던 교회들이 급속히 붕괴되었다. 900년에 이르러서는 북아프리카의 라틴 교회는 거의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지중해의 동쪽과 남쪽 해안지역의 지성 세계는 오랫동안 바울과 필로, 유세비우스, 어거스틴의 영향하에 있었으나, 아랍인들이 여기를 점령한 이후 언어와 문화가 완전히 아랍인과 무슬림의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리하여 8세기부터 거대한 아랍 문화권이 형성되었다.
마호메트가 죽은 해인 632년부터 시작된 이슬람의 팽창은 732년 프랑스로 침공하던 아랍군이 프랑크 왕에 의하여 저지되기까지 무려 백년 동안이나 거침없이 계속되었다. 마호메트를 계승한 ‘칼리프’(Calif)는 아랍 부족들을 선동하여 비잔틴 제국을 원정하도록 하였다. 638년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으며, 그로부터 30년간에 아랍군은 시리아와 페르시아를 휩쓸고 인도의 북부 지방까지 점령하였다. 다른 군대는 이집트로 가서 알렉산드리아를 정복하고 신속히 리비아를 지나 북아프리카로 쇄도하였다. 아랍군은 이슬람교로 개종한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족(Berbers)과 유대인들의 도움을 받아 711년에 서고트족 왕을 물리치고 스페인을 점령하였다. 기독교인 제후들은 피레네 산악 지대로 쫓겨나 지내다가 10세기경부터 이베리아 반도의 실지(失地)를 회복하기 위하여 반격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잃은 땅을 완전히 회복하는 것은 15세기에 이르러서야 실현되었다.
10세기까지 스페인을 완전히 장악하고 지배하던 무술림은 12세기부터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한편 아랍군은 717년에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기 위해 대공세를 감행하였으나 무위로 끝났다. 그들은 지중해를 제패하여 시실리와 크레타를 점령하고 이번에는 해로로 공략했으나 역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리하여 콘스탄티노플은 15세기까지 살아남게 되었다. 서방의 기독교 세계는 11세기에 소위 성지 탈환을 명분으로 동방으로 십자군 원정을 나선다. 그리하여 아랍 세력과 정면으로 충돌하여 전쟁을 치르면서 아랍의 문화와도 접촉하게 되며 문물을 받아들이게 된다.
내용출처 : [기타] 자료출처 : <기독교 교회사>(김영재/이레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