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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기독교는...

신미성 |2009.03.22 15:15
조회 298 |추천 2

적어도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며 사랑이 기독교의 근원(根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 사랑으로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기독교의 가장 큰 기쁨이 아닐까 싶다. 허나, 요즘 기독교는 다수의 매체들과 국민들에게 많은 질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 기독교는 스스로를 희생하여 타인에게 사랑과 믿음을 보이던 종교였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써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로마의 군병들과 유대인들을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의 숭고한 희생정신.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사랑의 정신으로 고난과 희생을 보여주신 많은 선교사들의 행적은 벌써 수십 년이 지난 지금조차 많은 이들에게 참된 사람과 올바른 정신을 깨닫게 해주며 특히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즉, “들어내지 않는 선행”을 가장 큰 덕목으로 여기며 본(本)으로 삼던 숭고한 사랑의 정신은 가히 누대에 걸쳐 내려와 많은 이들에게 새겨질 아름다운 교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부터인가 변색(變色)되고 퇴색(退色)되어 가기 시작했다.

사랑과 믿음은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가장 최고의 재산이자 덕목(德目)일 것이다. 허나, 요즘 기독교는 이 “믿음”을 사랑으로써 전파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갈(恐喝)」과 「협박(狹薄)」으로써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그것은 매우 좋지 않은 형태의 종교적 방식이다. 종교가 세속(世俗) 되고 사랑을 전해야 하는 목사가 하나의 직업으로써 자리 잡게 되면서 돈벌이의 수단이 되고, 교회를 통하여 입신양명(立身揚名)하려는 목사들과 교회를 통한 사유재산의 축척과 이기적인 욕심에만 가득하여 타인에게 강요적인 헌금의 청탁과 타인에 대한 사랑과 정의 구현을 위한 기도가 아닌, 스스로의 문제해결과 축복만을 바라며 떼를 쓰는 떼쟁이 마냥 밤낮으로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은 진정 기독교의 모습인가? 나아가 종종 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기독교의 금전적 비리는 지금껏 사랑으로 기독교를 이끌고 또 희생한 많은 선교사들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겐 절대로 잊지 못할 충격으로 다가가기에 충분하다.

가히 예수를 팔아 돈을 벌고 사람을 팔아 성을 쌓는 격이 아닌가?

또한 전도(傳道)라는 미명하에 공공장소에서의 고성방가(高聲放歌)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소란은 물론 종교는 타(他) 종교를 사랑으로써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인정하는 것을 종교 간에 가장 큰 우선이자 덕목(德目)으로 여겨야 하는데 몇몇 극성스런 일부 몰지각한 신도나 교회들은 타 종교를 무조건 미신(迷信)이란 이름으로 저 밑바닥으로 전락(顚落)시키는 것도 모자라 그들이 믿는 신을 사탄이네 마귀입네 하며 훼손하고 또한 회교(回敎)권에 가서 그들을 개종(改宗) 시킨답시고 별별 이상한 논리를 들이밀며 종교의 자유까지 억압하려드는 것도 모자라 학교시설인 단군상과 불상의 목을 자르고 절을 훼손하는 등의 행각은 가히 가관이 아닐 수 없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지하철이나 거리를 지나다닐 때 믿음을 천국의 열쇠라 주장하며 예수천국 불신지옥(豫受天國 不信地獄)이라는 잘못된 명제(命題)를 바로 잡아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아주머니 또는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직접 피켓(Picket)을 나누어 주며,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무조건 지옥에 떨어진다는, 유래 없는 극도(劇道)의 극단적인 전도 방식으로 기독교의 올바른 정신을 밑바닥부터 훼손시키고 있으니, 이는 과연 올바른 기독교의 전도 방식일까?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이고, 믿지 아니하면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논리. 언제가 불가(佛家)의 법정(法頂) 큰스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믿지 않는다 하여 당신의 자식이라 하는 인간들을 지옥 불에 던져 버리는 당신네들의 신들을 나는 당최 이해 할 수가 없다. 차라리 내가 지옥에 가서 당신네 신들에게 버림 받은 그 억울한 영혼들을 구제해야겠다.」

라는, 오히려 타 종교라 무시하고 개종해야 한다며 갖가지 입에 담지 못할 만행을 저질렀던, 기독교가 아닌 타 종교가 기독교보다 더욱 진실한 하나님의 사랑을 또한 예수님의 희생정신을 보다 더 기독교다운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또한 19세기 위대한 영혼이자 인도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인종차별을 반대하던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의 「나는 예수를 좋아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씀처럼 예수님을 닮으려 하지 않고 사랑으로 복음을 전파하려 하지 않고 협박과 강요로써 타인을 압박하는 그들의 행위는 대단히 좋지 못한 행동임에 분명하다. 간디는 말했다.

「신은 1900년 전에만 십자가를 졌던 것이 아니고 오늘도 지고 있고 또 날마다 죽으며 소생(復活)한다. 2000년 전에 죽은 역사상의 신에게만 의지해야 한다면 그것은 덧없는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역사상의 신을 말하기 보다는 오늘 살아있는 인간을 통해서 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기독교의 모습은 어떠한가? 신을 말하지 아니하며 의지하고 타인에게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과거 예수님의 사랑과 그 정신을 보여주기 위해 희생하시던 많은 선교사들의 “살아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오히려 훼손시키고 있지 않은가?

분명 기독교라 할지라도 사랑을 강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러나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어쩌면 한국의 가장 큰 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처럼 타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과 믿음을 핵심의 교리로 삼아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여 예수님의 참된 사랑과 희생정신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사랑의 종교, 기독교. 그리고 그 기독교의 모순된 모습을 다시 한 번 지적하는 법정 큰스님과 간디의 말씀은 조금씩 퇴색되고 사라져가는 기독교의 올바른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는 뜻 깊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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