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을 기다리고 있던 그날은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날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들은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행하실 것이다, 라고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분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대면해온 하나님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분이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만나온 하나님은 우리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으시는 분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일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꽉 붙들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분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믿고 신뢰해야 할 대상은 그분입니다. 그분의 방법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나 무정하게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한 사람들로 인해 분개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그들에게 분개하고 있는 걸까요? 사실 우리는 하나님께 화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사람이 아닌 주님의 주권적인 손길과 상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행하십니까? 하나님은 정말 이런 분이십니까?"
이런 질문도 아닙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 응답해주지 않으시는 거죠?"
이런 질문 또한 아닙니다.
"왜 하나님은 저에게, 저의 자녀들에게, 아내에게, 남편에게, 가족들에게 이런 불행을 허락하십니까?
"어떻게 이렇게 불공평하실 수 있나요?"
그분의 나라 앞에서 우리가 만나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당신은 도저히 이해할 숭 벗는 하나님을 다르겠습니까?
"당신의 기대대로 행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따르겠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도저히 겨녀내기 힘든 무언가를 허락해두셨습니다. 그 짐은 분명 무척이나 무거울것이빈다. 그분이 정말 이렇게 행하실 줄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답해야 할 질문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기대대로 행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분을 계속 따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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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실이 비었습니다. 대장님."
"머지 않아 그 방도 차게 될 거다. 새로운 죄수가 온다는 전갈을 방금 받았거든."
"그 사람의 죄목은 무엇입니까?"
"글쎄, 나도 모륵겠지만, 요한만큼이나 무고한 사람일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법이지"
병사는 어린애같이 투덜거렸습니다.
"그런 죄수들은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우리가 데리고 있는 1호실의 죄수는 불공평하다며 불평하고, 사람에 대해, 상황에 대해 불평하지요. 2호실의 죄수는 하나님께서 자기한테 하신 일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
"새로운 죄수가 도착했습니다."
계단 꼭대기에서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밧줄을 가져와."
프로테우스가 간수에게 말했습니다.
"죄수를 저 진흙 구덩이로 내려보내."
이 죄수는 누구일까요? 이제 3호실에 갇히게 된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3호실 문 옆에 기록될 이름은 무엇일까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 죄수가 이곳에 온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피할 수 없으며 어쩔 수 없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주권에 따른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 죄수의 이름은? 여기서 꼭 그것을 물을 필요는 없지만, 답하자면, 바로 당신, 당신이 그 3호실의 죄수입니다!
"나를 인해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