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웬 존의 자화상 습작
'존경하는 선생님께'
안개 속에서 저는 무척 행복했습니다.
역에서 당신의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라는
마지막 말에 저는 꿈속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제가 가진 전부입니다.
선생님은 저의 사랑, 저의 재산, 저의 가족 아니
저의 모든 것입니다.
선생님께 부담드리지 않겠습니다.
제아무리 질투심에 불타고 절망감에 몸부림을
치는 한이 있더라도 짜증스럽게 하고싶지 않습니다.
사랑은 저를 양순하게 만드나 봅니다.
- 그웬 존
위에 글은 웨일즈의 여류화가 그웬 존(Gwen John)이
사랑하는 로댕(Rodin)에게 쓴 편지 내용이다.
저 유명한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을 만난 건
1904년 로댕이 63세, 그웬이 28세 때의 일이다.
그녀는 로댕의 모델이 되었고 그를 위해 여러가지로
헌신적인 봉사를 했다.(통역을 비롯해 잠자리까지)
그웬은 늙은 로댕을 열정적으로 깊이 사랑하게 되어
한동안 그와의 사랑 이외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로댕은 그녀를 성(性)에 눈뜨게 해줬다 한다. 물론
성이 전부는 아니었고, 예술가로서 위대한 대선배를
향한 존경심까지 포함해서였다)
로댕이 사망하기까지 그녀와의 관계는 지속되었지만
대놓고 사랑하기엔 그리 순탄치 않았다. 늘 그림자처럼
조용히 로댕의 처사만 기다려야 하는 입장에서 그녀는
로댕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수없이 쓰곤 했던 것이다.
(대략 2천여통의 편지를 썼다 한다)
'까미유 끌로델' 영화를 봤던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로댕의 예술가로서의 위대함은 인정해야 할 부분이지만
연인에게 대했던 비열한 면도 있던 터라 그웬에게도 어떻게
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대체 로댕에게 어떤 매력이 넘치길래 까미유나 그웬같이
재능많고 예쁜 여자들이 죽고 못사는걸까?)
그래서일까... 그웬의 그림들을 보면 기운없고 쓸쓸한
느낌들이 많이 배어있다. 깨질 듯 부서질 듯 조심스러워
보여 애처롭다.
일단 그녀의 작품들을 감상해보고 나머지 스토리를
이어가겠다.
이 소녀의 그림을 보면 마치 고야의 '옷입은 마야, 옷벗은 마야'가
생각난다. 눈이 쾡한 것이 더 서글퍼 보인다.
일본 인형
'파리의 작업실 코너' - 고즈넉해보이는 그웬의 작업실인가 보다.
그웬은 1913년에 카톨릭에 귀의한다. 귀의한 후로는 속세와의
인연은 접고 죽을 때까지 지극히 금욕적인 생활로 일관했다 한다.
그래서 수녀를 그린 작품이 많이 보인다.
첫번째 수녀 그림은 임종을 맞이하는 모습이다.
마치 오트밀과 생크림을 부은 듯한 은은하면서 차분한 색조와
절제가 그웬의 서글픈 사랑이 투영된 듯해서 마음이 아프다....
'도렐리아' 초상
그웬은 딸 둘, 아들 둘의 4남매중 둘째로 태어났다.
바로 아래 2살 터울의 남동생 어거스트 존(Augustus John)은
그녀가 미술학교에서 수업하고 있을 때부터 이미 유명한
화가로 성공해 있었다. 동생 어거스트는 부인이 2명 있었는데
둘째 부인인 도렐리아와 그웬은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그웬 존의 '자화상' 두 점
(위에 것은 1902년에 그린 것이고 아래는 1899년에 그린 것으로
나중에 그린 게 더 어려보인다. 어쨌거나 그녀의 자화상을 보면
무척 이지적으로 예쁘게 생겨서 더 안타깝다!)
그웬 존은 1876년 웨일즈의 펨브로크셔에서 태어났다.
런던에 있는 슬래이드(Slade) 스쿨에서 데생을 배우고
1904년에는 파리로 이주해 휘슬러에게 사사했다.
그로 인해 당대의 대가들인 피카소, 마티즈 등을 알게 되고
로댕과의 만남도 이무렵이었다.
로댕과의 사랑을 가슴에 묻은 채 카톨릭에 귀의한 후 조용히
금욕적인 생활을 하다가 1939년 디에페(Dieppe) 시립병원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생전에는 동생인 어거스트의 명성에 가려지고, 연인이었던
로댕의 조수이자 모델로만 알려졌던 그웬의 작품들은
이제는 당당한 한 사람의 여성 예술가로서 오히려 동생보다
더 높이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다행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린 그웬의 모습들
그웬 존의 어릴 때 모습 by Tony Morgan
슬래이드 스쿨 시절 같은 화가인 앰브로즈 매커보이(Ambrose
McEvoy)가 그린 그웬 존의 모습
남동생 어거스트 존이 그린 그웬의 초상
그웬이 인도어(indoor) 소재를 즐겨 그렸다면
남동생 어거스트는 아웃도어(outdoor) 소재를 즐겨 그렸다.
남매의 그림을 비교해보면 둘의 차이를 뚜렷이 알 수 있다.
그웬보다 먼저 유명해진 어거스트의 그림들도 몇 점 감상해보자.
(어거스트는 1961년 사망했다)
어거스트 존의 사진과 '자화상' 그림
첼리스트 '마담 수기아(Madame Suggia)'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저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위의 푸른 눈의 남성은 'Joseph Hone'의 초상이고,
오른쪽 아래는 유명한 시인 예이츠(Yeats)의 초상이다.
어거스트의 첫번째 부인 '이다(Ida)'의 초상
두 그림은 두번째 부인 '도렐리아(Dorelia)'의 모습
* 그웬과 어거스트의 작품이 함께 작년(2005년)에
유명한 영국 테이트 갤러리에서 메이저급 전시로는
처음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