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 모임에 오랜만에 나타난 A는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 다 시들어 빠진 모습으로 내내 전화기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쩜 그럴 수가 있냐? 연락하지 말랬다고 진짜 연락을 안 해?” 분위기를 보아하니 남자친구에게 또 헤어지자고 말한 모양이다. 참고로 A는 ‘헤어지자’, ‘만나지 말자’, ‘연락 말자’는 말을 수시로 내뱉는 몹쓸 습관을 가지고 있는 여자다.
글/ 젝시라이터 유혈낭자
내가 알기로 이제까지 그녀가 진심으로 헤어지고 싶어서 헤어지자고 했던 적은 없었다. 연락을 안 받을 때, 휴일에 주구장창 게임만 할 때, 사귀기만 하고 결혼 얘기 안 꺼낼 때, 싸우다가 열 받을 때 등의 상황에서 남자의 관심을 자신에게로 돌리려는 일종의 극약 처방이었달까. 하지만 “헤어지자”는 말이 여자가 바라는 효과를 가져 오는 건 연애 초기일 때, 아직 남자가 여자를 더 많이 사랑할 때, 아직 남자가 여자한테 바라는 것(?)이 있을 때 정도고 그 외 대부분 이렇다.
“헤어지는 게 그렇게 만만한가? 솔직히 얼마나 사귀는 걸 우습게 생각하면 그런 말을 해. 헤어지자는 말을 듣는 순간 정이 뚝 떨어지고 그 다음부터는 아무리 잘해도 예전 같지가 않아.” (김민석, 30)
“처음에 들었을 때는 놀래서 달랬었는데, 알고 보니 거의 습관 수준. 참다 참다 열 받아서 그렇게 헤어지고 싶으면 헤어지자고 했더니 못된 놈이라고 되레 큰소리더라고. 어쩌라고?” (최창민, 34)
“내가 아는 어떤 녀석은 한참 공들이는 여자가 툭하면 헤어지자고 해서 참고 참다가 목적 달성(자고)한 뒤에 헤어지자고 했을 때 냉큼 헤어졌었지. 니가 원하니까...라고 슬퍼하는 척 하면서.” (김동현, 26)
“헤어지자는 말 쉽게 하는 여자는 결혼해서도 이혼 얘기가 쉽게 나오겠지. 그래서 난 애초에 그런 싹수가 보이면 내 쪽에서 바로 ‘컷’이야.” (안상환, 29)
혹 떼려다 혹 붙인다?
이처럼 그녀의 야심찬(?) 계획이 목표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목표 달성은 둘째 치고 이미지 마이너스나 신뢰도 급추락이나 안 가져오면 다행이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랄까. 특히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 남자들에게는 자신이 헤어지자는 말을 쉽게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다. 게다가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남자들의 특성상 좀 더 관심을 가져달라는 당신의 의도 따위는 전혀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혹시 당신이 지금 대책 없이 일단 질러놓고 오지 않는 연락을 기다리고 있거나, 그 와중에 남자친구도 똑같이 힘든데 차마 연락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며 쓸데없는 오지랖을 펼치고 있다면 정신 차려라. 남자가 당신의 가벼운 입에서 쏟아져 나온 그 말을 무겁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미 마음을 접었을 확률이 아마 80%는 될 테니까. (당신이 이별 선언 상습범이라면 더더욱!)
아, 참고로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 모든 것이 “헤어지자”는 얘기를 먼저 하길 바라며 당신의 심사를 긁고 있던 그의 계획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당신이 헤어지고는 싶지만 나쁜 놈이 되긴 싫었던 그를 몸소 자유롭게 해주고 후회와 절망의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을 때, 그는 “나 차였어...”라며 우수에 찬 표정으로 딴 여자의 어깨에 기대 불쌍한 척 하고 있을 지도. 당신의 가벼운 입이 못된 놈에게 당신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면죄부를 줬을 지도 모른단 얘기다. 뭐 A양이 그랬단 얘기는 아니고...
요즘 20~30대에게 인기 있는 곡 1위로 꼽혔다는 다비치의 의 가사에는 일단 이처럼 입으로 저질러 놓고 혼자 우울해하고 화내며 상심에 잠긴 여자의 얘기가 나온다. 아마 이 곡이 인기가 있는 건, 바로 이런 점이 공감을 끌어냈기 때문 아닐까? 하지만 잊지 마시라. 슬프게 흘러가다가 갑자기 요란한 멜로디로 바뀌는 이 곡처럼, 당신의 헤어지잔 말이 시들했던 관계의 반전을 가져오지만은 않을 테니까.

8282 / 다비치
만나지 말잔 내 말 연락도 말란 내 말
너 진짜 그대로 할거니 그게 아닌데
이대로 끝일까봐 널 영영 잃을까봐
점점 더 마음이 불안해져 너무 슬퍼져
정이 뭔지 있다가도 그리워 너 없인 못살아
Gimme a call Baby Babe 지금 바로 전화줘
Gimme a call Baby Babe 매일 날 기다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문자라도 남겨줘
날 울리지마 노우 워우 워 wow
* 사진: 뮤직비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