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엄마는 자주 집을 비우셨다.
아버지를 피해 길게는 한두달, 짧게는 사나흘 씩 집에 없었고
영영 아버지로 부터 도망가지 못하고
끝내는 두 자식이 눈에 밟혀
당신 스스로 지옥 같던 집으로 돌아오시곤 했던.
엄마 손길이 필요했을 초등학교 1,2학년 참 어렸던 그 때,
난 오히려 엄마가 영영 돌아오지 않기를, 멀리 도망가 살기를 바랬다.
오면 또 맞으니까. 그럼 난 또 무서운 곳에 살게 될테니까.
맞는 엄마를 보는 것보다 차라리 엄마가 집에 없는 것이 덜 무섭고
그나마 견딜만 했던 것 같다.
엄마가 없는 동안 제대로 끼니를 챙길 리 만무했다.
그래도 자식을 굶길 수는 없었는지,
아빠는 집앞 기사 식당에 월계산을 약속하고
밥을 대놓고 먹기로 했던 모양이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이제 갓 초등학교 1,2학년된 작은 아이가
기사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허름한 식당의 높은 식탁에 앉아
뜨거운 순두부찌개 하나를 놓고 밥을 먹었다.
아저씨들로 북적대는 기사식당에
어린 아이 하나가 혼자 앉아 밥을 먹는다는게
얼마나 뻘쭘한 일인지..
분명 그때도 창피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은데,
그런 기억 보다는 그 순두부 찌개가 굉장히 맛있었다는
기억만 난다.
그 식당에서 먹었던 순두부 찌개는 내 유일한 끼니였었다.
분명 초등학교 1,2학년 어린 아이가 먹기에는 맵고 뜨겁고
입맛에 안맞는 음식이었을텐데도
따끈한 공기밥에 국물 한숟가락 호호 불어먹었던 순두부 찌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아마 그 식당에서 밥을 먹은게 채 한달도 되지 않았을 거다.
길어야 2,3주 정도.
엄마가 다시 돌아오셨기 때문인지,
아버지가 월계산을 못했기 때문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때 먹었던 순두부 찌개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매일 순두부 찌개만 먹었는데도 질리기는 커녕,
먹을 때마다 행복했던 것 같다.
유독 혼자 밥을 먹게 될 때면 순두부 찌개가 생각이 난다.
그러고 보니, 지난달 혼자 여행을 갔던 때에도
사흘 동안 먹은게 죄 순두부 찌개였다.
출발하던 날 기차역 앞 식당에서,
여행 첫날의 식사도, 둘째날의 식사도 모두 다.
아저씨들 북적대는 식당에서
작은 아이 혼자 덩그라니 앉아 밥을 먹는 창피함이나
혼자라는 외로움도 잊고
허겁지겁 밥을 먹을 만큼
기가 막히게 맛있었던 기억..
어쩌면 순두부 찌개는 나에게 하나의 위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창피함도 잊을 만큼, 외로움도 잊을 만큼,
언제 밥상이 날아갈지 모를 불안감도 잊은 채
맛있게, 배불리 한끼를 먹는 즐거움과 행복..
그래서인지 유독 혼자일 때,
집이 아닌 곳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할 때면
입맛이 없어도 순두부 찌개는 먹고 싶어진다.
혼자 먹어도 창피하지 않을 것 같고
혼자 먹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어쩐지 그리운 맛..
아쉽게도 그때 그 식당에서 맛보았던 순두부 찌개의 맛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다.
흔한 기사식당의 흔한 순두부 찌개였음에도,
그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조미료와 재료를 써서 만든
순두부 찌개일텐데도 말이다.
아마도 내가 그때처럼 외롭지 않고
그때처럼 불안하지 않고
그때처럼 슬프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가 먹었던 순두부 찌개에는
그런 내 아픈 마음들이 첨가되었던건 아닐까.
그래서 그런 맛이 났던건 아닐까..
오늘 어린이 재단에서 전화가 왔다.
2년 넘게 결연을 맺었던 예린이의 후원 아동이
더이상 후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단다.
그 아이의 형편이 나아져서인지,
아니면 재단 심사 자격에 들지 못해서인지
자세한 사정을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담당자는 결연후원에 문제가 많은 것 같아 권하기가 그렇다면서
새 결연 아동을 맺어주는 대신, 다른 후원 프로그램을 몇가지 추천해주었다.
담당자가 언급한 프로그램 중 결식아동 지원이란 말을 들었을 때
더 들을 것도 없이 바로 신청했다.
결식(缺食)이 아니라
결심(缺心)일지도 모른다.
먹을 것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채워줄, 또다른 마음이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허름한 기사식당 한켠에서
뜨거운 순두부 찌개를 앞에 놓고
부지런히 숟가락을 움직이던
갓 여덟,아홉살난 어린 내가
공기밥의 따뜻한 기운에 위로 받고,
찌개의 더운 김에 훈훈해졌던 것처럼
마음을 덥혀줄 따뜻한 기운이 더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한끼 식사에 잠시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면..
따뜻한 밥한술에 잠시나마 몸이 풀어지고 든든해진다면..
순두부 찌개..
지금 생각하면 참 슬픈 음식인데,
여지껏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먹었던 음식으로 기억할 수 있었던 건
그때 내가 느꼈던 잠시의 위안 때문인 듯 하다.
그 누군가에게도,
슬픈 음식이 아닌
참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이 되기를..
그 누군가의 숟가락에
내 마음 듬뿍 얹어지기를..
